신기술 우선허용·사후규제, 기업실증특례 등 '가습기 살균제 사건' 초래할 수 있어
"지역전략산업 육성 명분으로 보건의료 분야 규제완화 가능"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 20일 국회 정문 앞에서 규제프리 지역특화특구법 날치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 20일 국회 정문 앞에서 규제프리 지역특화특구법 날치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라포르시안] 국회를 통과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안'(이하 규제자유특구법)이 사회공공서비스 민영화 법안이라며 시민사회단체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앞서 국회는 지난 20일 본회의를 열고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김경수 전 의원과 추경호 의원, 김성호, 홍일표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4건의 '지역특화발전특구에관한 규제특례법안'을 통합·조정한 대안이다.

법안의 골자는 지역의 혁신적이고 전략적인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기존 시군구의 지역특화발전특구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규제자유특구제도'를 시·도 단위를 대상으로 추가 도입했다. 규제자유특구 내에서 추진되는 지역의 혁신성장사업 또는 지역전략산업에 대해 혁신적인 규제특례를 부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지자체 조례를 통해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규정 등의 논란이 됐던 보건의료 분야 독소조항은 빠졌다. 

그러나 시민단체 쪽에서는 규제자유특구법 자체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악법이라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규제자유특구법 그 자체가 보건의료 분야에서 얼마든지 기업을 위한 규제완화 조치를 취할 수 있게끔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규제프리존법·서비스산업발전법 폐기와 생명안전 보호를 위한 공동행동'은 21일 공동성명을 내고 "박근혜-최순실-대기업 간 뇌물거래의 상징인 핵심 청부법안 ‘규제프리존법’이 문재인 정부에서 통과됐다"고 비난했다.

이들 단체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도 안철수의 규제프리존법 찬성 입장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정권 계승자임을 드러낸 것'이라며 반대했었다"며 "하지만 정권을 잡은 후에는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규제완화를 외치며 이 법을 부활시킨 것"이라고 성토했다. <관련 기사: 규제프리존법 찬성하면 '이명박근혜 계승자'라 비난한게 누구였나?>

규제자유특구법 4조의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신기술의 무분별한 사용을 부추겨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자유특구법 4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발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혁신사업 또는 전략산업등을 허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다만 신기술을 활용하는 사업이 국민의 생명․안전에 위해가 되거나 환경을 현저히 저해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들 단체는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안전에 위해가 되거나 환경을 현저히 저해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문구는 선언적 조항에 불과하고 ‘생명·안전 위협’이라는 판단이 자의적으로 내려질 수 있어 실효성이 없다"고 거듭 지적했다.

‘임시 허가’와 ‘실증을 위한 특례’ 규정도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규제자유특구법 상 '임시 허가'는 혁신사업 또는 전략산업등에 대한 허가 등의 근거가 되는 법령에 기준·규격·요건 등이 없거나 법령에 따른 기준·규격·요건 등을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은 경우 안전성 측면에서 검증되면 일정한 기간 동안 임시로 허가하는 것을 말한다.

'실증 특례'는 다른 법령의 규정에 의해 각종 허가ㆍ승인 등을 신청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근거가 되는 법령에 기준·규격·요건 등이 없을 경우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시험·검증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규정이다.

이런 규정이 적용되면 기업의 돈벌이를 위한 규제완화를 가속화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국민 건강에 재앙과도 같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관련 기사: ‘규제프리존 특별법’ 뜯어봤더니…가습기 살균제만큼 위험한 법>

이들 단체는 "두 규정은 국가가 맡아야 할 기업 제품의 안전성 검증을 포기하고 우선 국민들이 사용하게 한 후 사후 규정을 만들겠다는 가장 심각한 조항"이라며 "기업 돈벌이를 위해 국민을 유해 물질에 노출시키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이 조항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라돈침대 사건, 독성 생리대 사건 등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재앙을 일으킬 법안"이라고 우려했다. 

규제자유특구에서 지역전략산업에 대한 무한대의 규제 완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법안에는 ‘민간기업은 시도지사에게 규제자유특구(규제프리존)을 제안할 수 있고 시·도지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이들 단체는 "민간기업이 원하기만 하면 특정 지역에서 특정 산업에 대해 고삐 풀린 무규제 제품생산과 돈벌이가 가능해지는 것"이라며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면 임시 허가, 실증을 위한 특례,각종 규제 특례를 적용받으며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지 출처: 2015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규제프리존 도입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방안' 자료 중에서.
이미지 출처: 2015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규제프리존 도입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방안' 자료 중에서.

특히 이 법안에서 보건의료 분야 관련 규정을 삭제했지만 지역전략산업으로 보건의료 관련 산업·사업이 지정되면 관련 규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법안의 부칙 3조에 따르면 ‘2015년 12월에 박근혜 정부가 선정한 지역전략산업’을 계승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지정된 대로 강원도에는 스마트헬스케어(원격의료) 규제가 완화되고, 충북과 대전에는 줄기세포 유전자치료 등의 바이오의약 산업을, 대구에는 사물인터넷(loT) 기반 웰니스산업 등을 지역전략산업으로 지정한 바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와 공동행동은 "박근혜 정권이 기업들에게 뇌물을 받고 기업과 산업, 지역을 연결해 규제프리존 전략산업으로 지정한 적폐가 계승된다"며 "따라서 이 법은 보건의료를 상업화하고 환자의 생명과 안전도 위협할 법안이며,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돼야 하는 의약품이 규제완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기업 돈벌이를 부추기는 것인지 반문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와 여당은 박근혜 ‘창조경제’와 명칭만 다른 ‘혁신성장’이란 이름의 사회공공부문 민영화·규제완화 정책 일반을 중단하고 규제자유특구법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파괴하고 이를 경제성장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문재인 정권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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