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메르스 대응 지침'에는 2미터 이내·같은 공간에 머문 경우 등으로 확대
보건당국, 밀접접촉자 수 계속 변동...초기 밀접접촉자 관리가 방역 성패 좌우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한 대학병원의 메르스 환자 격리병동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모습.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한 대학병원의 메르스 환자 격리병동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모습.

 [라포르시안] 국내에서 3년 만에 다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했다. 2015년의 메르스 사태 악몽을 떠올리며 보건당국과 의료계 모두 초비상 상태에 들어갔다.

10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쿠웨이트 방문 후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를 거쳐 입국한 61세 남성이 메르스 의심증상으로 국가지정격리병상에 격리됐고, 메르스 검사 결과 양성으로 확인돼 현재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의심환자 신고 접수 후 인천공항검역소, 서울시 등과 함께 항공기 탑승객 등 환자의 접촉자 조사를 실시했다.

메르스 초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밀접접촉자 관리를 위해 질병관리본부와 서울시는 항공기, 방문 의료기관 등을 대상으로 접촉자를 파악하고 있으며, 서울시 등 지자체가 접촉자에 대한 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한 밀접접촉자 수에 계속 변동이 오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보건당국은 당초 지난 8일 메르스 확진환자의 밀접접촉자 수가 항공기 승무원과 출입국심사과 직원, 삼성서울병원 의료진 등 총 20명으로 파악했다가 지난 9일에는 뒤늦게 이 환자를 태운 리무진형 택시기사 1명과 입국 당시 환자가 탑승했던 휠체어를 민 도우미 등 2명을 추가해 22명이라고 집계했다.

10일에는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 밀접접촉자 1명을 명단에서 제외하고 일상접촉자로 분류했다. 이 접촉자는 당초 메르스 확진자와 함께 비즈니스석에 탔다고 항공사에서 통보했으나 실제로는 이코노미석에 탑승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건당국의 밀접접촉자 분류 기준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대응 지침'에 따르면 확진환자 또는 의심환자와 유증상기에 접촉한 자를 의미하며 그 분류기준은 적절한 개인보호구(마스크, 장갑, 고글 또는 안면보호구, 가운)를 착용하지 않고 ▲환자와 2미터 이내에 머문 경우 ▲같은 방 또는 공간에 머문 경우 ▲환자의 호흡기 분비물과 직접 접촉한 경우에 밀접접촉자로 분류한다.

같은 방 또는 공간에 머문 경우에는 의료기관 내 응급실, 진료실, 처치실, 검사실, 중환자실, 병실, 병동 등의 폐쇄된 공간이나 버스, 기차, 항공기 등의 교통수단과 고시원, 기숙사, 요양시설 등의 거주시설 공간, 식당, 체육관, 찜질방 등 공용시설 등의 공간에 확진환자와 의심환자와 머물렀을 때 밀접접촉자료 분류한다.

3년 전 메르스 사태 때 보건당국이 밀접접촉자 분류 기준을 안일하게 적용해 메르스 유행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방역당국은 초기 역학조사에서 감염 가능성이 높은 밀접 접촉자 판단 기준을 '확진 또는 의심환자와 신체 접촉을 한 사람 혹은 환자가 증상이 있는 동안 2m 이내 공간에 1시간 이상 함께 머문 사람'으로 한정했다. 

이런 분류기준을 적용해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메르스 첫 환자와 동일 병실에 입원환 환자와 의료진만 격리토록 조치했다. 그러나 방역당국의 예상과 다르게 당시 여섯 번째 메르스 환자는 첫 환자와 동일병실에 입원하지 않았지만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좁은 방역망을 뚫고 많은 메르스 감염자가 빠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당시 보건당국이 마련한 메르스 대응지침 중 '2m, 1시간 이상'이라는 밀접접촉자 기준이 어디에도 그 근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대한감염학회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기록을 백서 형태로 발간한 작년에 발간한 '메르스 연대기'를 통해  "'2m, 1시간 접촉' 기준은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메르스 지침을 참고한 것이라고 알려졌는데 WHO의 지침에 메르스에 관한 거리, 시간 기준이 실제로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스와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적용됐던 밀접 접촉의 기준'3feet'를 넓게 봐서 2m 기준 설저의 근거로 삼은 것 같다"고 추론했다.

특히 미국 CDC의 밀접 접촉자 분류 기준과 질병관리본부가 마련한 메르스 대응지침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다.

백서에 따르면 미국 CDC의 밀접 접촉자 분류 기준은 '감염자와 2m 이내 또는(or) 같은 방에 머무른 경우였으나 한국의 지침은 '2m 이내 공간에(and) 1시간 이상'으로 한정하면서 격리조치 대상이 되는 밀접접촉자 폭이 대폭 줄었다.

백서는 "이러한 기준의 설정은 보건당국의 치명적인 실수, 근거없는 확신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며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에서 생긴 구멍은 잘못 제정된 지침의 문제와 함께 이를 경직되고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는 밀접접촉자 기준을 보다 확대해서 촘촘한 방역망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는 CCTV를 통해 확진환자의 휠체어 도우미를 뒤늦게 민접접촉자로 분류했고, 확진환자를 태운 공항 리무진택시가 이후에 다른 승객을 태웠는지 여부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태이다.

천병철 고려대학교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시 밀접접촉자의 정의와 관리방안'이라는 논문을 통해 "만약 방역당국이 2014년 세계보건기구의 메르스 환례 정의만 제대로 알고 있었어도 초기 유행에서 접촉자의 범위를 제대로 설정했을 것이며 유행을 확대시키는 방역의 실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밀접접촉자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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