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의한정협의체서 '의료일원화 합의문안' 검토...의·한방 아닌 국민건강 관점서 바라봐야

동아일보 1977년 8월 24일자에 게재된 의료일원화 관련 기사.
동아일보 1977년 8월 24일자에 게재된 의료일원화 관련 기사.

[라포르시안] 의학과 한의학으로 이원화된 의료공급체계와 제도를 일원화하는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의료일원화 논의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의료계와 한의계 간 감정싸움으로 전락하고, 양측의 갈등만 심화시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 보건복지부가 참여하는 의·한·정협의체에서 오는 2030년까지 의료일원화를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합의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구체적인 합의안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의료일원화라는 사안의 민감성과 폭발성을 의식해서인지 의협이나 복지부 모두 합의문안의 내용을 쉬쉬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합의안 내용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지난 2015년 11월 작성된 '국민의료 향상을 위한 의료현안 협의체 의료일원화 추진 제안문(안)'이다.

당시에도 복지부와 의협, 한의협 등이 참여하는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의료일원화를 논의하고 구체적인 합의문안을 작성한 바 있다.

의료현안 협의체은 의료일원화 합의문안을 통해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한의학회와 보건복지부는 국민의료 향상과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의 정립, 의료분야 백년대계를 위해 의료일원화 추진 기본 원칙과 의료일원화 세부 추진 원칙에 합의하고, 의료일원화 추진의 제반사항 논의와 구체적인 실행방안 마련 등을 위해 4개 단체가 참여하는 의료일원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15년 12월 4일부터 가동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의료일원화 추진시 ▲의대와 한의대 교육과정 통합 ▲의사와 한의사 면허를 통합하되 기존 면허자(의사, 한의사)는 현 면허제도 유지 ▲의료일원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25년까지 의료일원화 완수 등을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일원화를 위한 세부 추진 원칙으로 ▲의료일원화가 공동선언 되는 순간 한의과 대학 신입생 모집 중지하고, 의대와 한의대 교육과정 통합작업 착수 ▲의료일원화 완료 때까지 의사와 한의사는 업무영역 침범 중단 ▲향후 어떤 상황에서도 의료이원화제도 부활 논의 금지 등을 마련했다.

다만 복지부의 의협, 한의협은 의료일원화를 완성하는 시기,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을 놓고 의견차이를 보였다.

복지부는 오는 2030년까지 의료일원화를 완료한다는 의견을, 의협은 2025년까지 의료일원화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의협은 협진, 통합의료 등의 방식으로 교류 협력을 강화해 점진적으로 오는 2045년까지 의료통합을 도모하자는 입장이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의사의 한방의료 진료행위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 등도 포함한다. 교차 진료행위 및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필요한 경우 별도의 심의기구를 두고 이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의협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원칙적으로 제한 없는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의협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은 절대 불가하며 한방의료를 흡수해 통합하는 형태의 의료일원화를 고수했다.

결국 의료현안 협의체의 합의문안은 의료계 내부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고, 당시 추무진 의협 회장의 사퇴 촉구로 이어지면서 논의가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한의협은 2015년 1월 14일 프레스센터에서 '정부의 규제 기요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가 초음파·CT·MRI 등 모든 의료기기를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의협은 2015년 1월 14일 프레스센터에서 '정부의 규제 기요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가 초음파·CT·MRI 등 모든 의료기기를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당시 의료일원화 논의는 순수하게 국민건강을 위한 측면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기요틴 정책 추진을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는 의구심도 컸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한꺼번에 단두대(guillotine)에 올려놓고 척결하는 '규제기요틴'을 밀어붙였고, 그 과정에서 경제단체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을 규제기요틴 추진 과제로 건의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면 '한방산업 활성화 및 양한방 협진을 통해 의료서비스 품질이 제고될 것'이라는 기대효과를 앞세워 규제완화를 추진했고, 당시 복지부는 의료일원화를 논의하면서 규제기요틴 과제였던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를 포함시켰다. 

그러다 보니 3년 전 의료현안 협의체를 통한 의료일원화 논의는 의료계와 한의계 간 갈등의 골만 깊게 하고 흐지부지됐다. 이번에도 의한정 협의체에서 의료일원화 합의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벌써부터 논란이 커질 조짐이다.

의사-한의사 모두 의료일원화 필요성엔 공감대 

사실 의료일원화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온 묵고 묵은 사안이다.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 한의사면허를 제도화 한 이후부터 지속해서 의료일원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의협은 1987년에도 의료일원화를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와 한의협에 공식적으로 제안한 바 있으며, 특히 1992년에는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의-한방 협진을 기반으로 한 일원화 체계를 모색하는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의료계 쪽에서는 의학교육과정 통합을 통한 의료일원화를 모색하거나 관련 정책토론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의사와 한의사들은 의료일원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기존에 의사와 한의사를 대상으로 벌인 의료일원화 관련 조사를 보면 찬반 의견이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의협은 지난 2013년 회원을 대상으로 ‘의료일원화, 한방 건강보험 체계 개편,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견해’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총 1,229명 참여)를 보면 의사와 한의사로 이원화한 학제와 면허제도를 통합하는 ’의료일원화’에 대해서 '찬성한다'(47.1%)과 의견과 '반대한다'(43.9%)는 의견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한국한의학연구원도 2009년 펴낸 '2008년 한방 의료이용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의료일원화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의원에 근무하는 한의사를 상대로 '한ㆍ양방의료 일원화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7.6%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한방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들은 의료일원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았다. 같은 질문에 한방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 중 41.3%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런 점을 근거로 추측해 보면 의사와 한의사 직역 양쪽에서 의료일원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의료계와 한의계에서 의료일원화 관련 논의가 제대로 진전되지 못하는 건 일원화를 추진하는 목적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의학이 주체로 나서 한의학을 통합하는 방식의 일원화를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다. 한의계는 의학과 한의학이 대등한 입장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관점에서 의료와 한방의 협진을 활성화하는 쪽으로의 일원화를 모색하다보니 논의의 진전이 힘든 상황이다.

의한방 이원화 체계 고착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다. 의료와 한방의료로 이원화된 의료체계 속에서 의료서비스 선택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으며,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피해를 겪기도 한다.

의료와 한방의료 중복 이용에 따른 불필요한 의료비 발생을 초래한다. 의료와 한방 양 쪽이 상호 배타적인 관계인 탓에 환자가 동일한 질환이나 건강문제를 놓고 의료와 한방의료를 중복으로 이용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이원화된 의료체계 속에서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이 계속 증폭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비용도 점점 커지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을 놓고 의료계와 한의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관련 시위와 집회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의사와 한의사의 밥그릇 싸움을 떠나 국민의 건강권 강화를 위해서도 의료일원화 논의가 발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국민의 의·한방 의료선택에 대한 혼란과 적절한 치료시기 상실 우려, 중복 의료 이용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증가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의료일원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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