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수술 '비도덕적 진료행위' 처벌에 의료계·여성계 거센 반발...복지부 '낙태 실태조사'도 편향성 논란

2017년 9월 2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가 열렸다. 사진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2017년 9월 2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가 열렸다. 사진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라포르시안] 지난 8월 말로 예상됐던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선고가 미뤄지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인 혼란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보건복지부가 불법 낙태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구분하고 해당 의료행위를 한 의사에게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을 시행하면서 의료계와 여성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여기에 복지부가 조만간 착수할 예정인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가 낙태 반대 쪽으로 편향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여성계의 반발은 더 거세졌다. 

앞서 복지부는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 파악 및 낙태죄 폐지 찬반 논의와 관련해 낙태 실태조사를 실시키로 하고 지난 3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연구기관으로 선정했다.

보사연은 15~44세 사이 가임기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와 낙태를 경험한 여성 20명 대상의 심층면접을 통해 낙태죄찬반 논의와 관련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실태조사의 주요 연구내용은 ▲가임기 여성의 2017년 인공임신중절 현황, 사유, 경험 등 실태조사 ▲인공임신중절 조사 결과 분석 및 주요 지표 과거 조사결과와 비교분석 ▲인공임신중절 여성의 심리적·신체적 경험 심층분석 및 쟁점사항에 대한 인식 조사 ▲인공임신중절 관련 전문가 그룹의 인식, 제도개선 방안 등이다.

그러나 복지부가 실태조사를 위해 작성한 설문문항이 낙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여성의 건강권에 대한 조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 1월 공고한 실태조사 제안요성서를 보면 연구 목적으로 ‘인공임신중절 예방 및 제도개선 정책 제언’을 기본방향으로 잡았다.

실제로 한겨레가 입수해 보도한 복지부의 낙태 실태조사 설문지를 보면 ‘인공임신중절 허용시 사회변화’를 묻는 항목 4개 문항 중 3개에 '낙태 증가', '성문화 문란', '생명 경시'’ 등 부정효과를 나열해 놓았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지난 3일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현재 설문조사 항목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의료계와 여성계, 종교계, 법조계 등의 의견을 최종 수렴하고 있다"며 "보도된 설문문항을 포함해 이번 설문조사 문항에 대한 전반적인 문구수정 및 최종 조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했다.

여성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여성의 인권 차원에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여성단체와 진보적 보건의료단체 등 16개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헌법재판소에는 낙태죄의 위헌성에 대한 결정이 기약 없이 멈춰있다"며 "낙태죄 폐지에 대한 요구는 여성이 이 사회에서 시민으로 시민권과 건강권,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정당함에 근거하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는 책임지고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낙태죄 폐지는 시대적 과제이다.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찍으면서, 한 사회의 재생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오롯이 전가해 왔던 역사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며 "여성들을 처벌함으로써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 장애나 질병, 연령, 이주, 가족 상태, 경제적 상황 등 다양한 조건이 출산 여부에 제약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여건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의료계는 산부인과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낙태수술 처벌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의 산부인과의사는 정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인공임신중절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한다. 이에 대한 모든 혼란과 책임은 복지부에 있음을 명확히 밝힌다"고 했다.

낙태수술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오히려 임신중절수술의 음성화를 조장해 더 큰 사회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죄 처벌에 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은 현실과 괴리가 있고, 헌법재판소에서 낙태 위헌 여부에 대한 헙법소원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니 당장의 입법미비 해결에 노력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복지부는 일방적으로 낙태를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하고, 선의를 행하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내지 처분대상자로 치부했다"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한 직역에 적당히 책임을 미루고 있어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대개협은 “복지부는 당장 책임감 있게 현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고 현명한 해결책 및 진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며 "산부인과 진료실의 환자와 의사간의 혼란을 막아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라고 촉구했다.

반면 산부인과 의사단체가 낙태수술 중단을 선언한 것은 여성의 입장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자세라는 지적도 나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인공임신중절은 그 기한이 지연될수록 모체의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으며, 시의적절하게 안전한 방법으로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따라서 의료기관과 의료인의 낙태수술 중단으로 복지부 개정안에 대응하는 것은 여성들 입장에선 퇴행적인 조치가 가중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진정 복지부의 개정안을 바꿔내고자 한다면 이 개정안을 통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여성들의 입장에 공감하는 자세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임신중지에 대한 법과 정책, 여성에게 보다 귀 기울여야"

한편 헌재에는 작년 2월 8일 접수된 '형법 제269조 제1항' 등의 위헌소원 사건이 계류 중이다.

지난 2012년 8월 낙태 시술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지 6년 만에 제기된 낙태죄 위헌 헌법소원의 쟁점은 부녀의 낙태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조항(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의사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의사낙태죄 조항(제270조 제1항)이 각각 임부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자기낙태죄 조항은 여성이 임신·출산을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시기 등을 결정할 자유를 제한해 여성의 자기운명결정권을 침해하고, 임신 초기에 안전한 임신중절 수술을 받지 못하게 해 임부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며 "또한 일반인에 의한 낙태는 의사에 의한 낙태보다 더 위험하고 불법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의사에 의한 낙태를 가중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반되고, 의사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24일 열린 공개변론에서는 찬반 양측은 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놓고 첨예한 공방을 벌였다.

청구인 측은 “태아는 그 생존과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하므로 태아가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로서 동등한 수준의 생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낙태 처벌이 낙태를 근절하는 효과는 없고,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반면 법무부 등 낙태죄 합법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은 성장상태와 무관하게 보호돼야 할 중대한 기본권이며 현행법상 낙태를 일부 허용하는 등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지나치게 제한되지 않고 있다”며 “낙태를 어느 범위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할 것인지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입법으로 풀어야 할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교수·연구자들이 지난 8월 16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교수·연구자들이 지난 8월 16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30여명은 지난달 18일 헌재에 낙태죄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임신중지의 허용은 무분별한 임신과 임신중지를 가져올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 사유"라며 "이미 여러 수치가 보여주듯이, 여성들의 임신중지율이 낮은 국가군은 임신중지를 금지한 국가들이 아니라 대다수 임신중지를 허용한 국가군이다. 이들 국가는 임신중지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성평등한 성관계와 양육 시스템을 마련한 국가들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수십 년간의 보건학적 데이터를 통해 인공임신중절이 합법화되었을 때 낙태 시술 과정에서의 감염과 모성사망률이 큰 폭으로 줄어 여성의 전반적인 건강이 향상됐으며, 현실적인 성교육과 피임문화 조성으로 낙태가 감소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낙태죄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낙태죄가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들은 "대부분의 임신중지가 불법인지라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료진과 병원, 그리고 당사자들 모두 이를 비밀로 해 왔으며, 임부에게 최소한의 건강조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심지어 불법적 시술 과정 또는 불법 약물 복용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고도 적절한 의료를 제공 받지 못하는 여성도 많다"며 "낙태죄가 성차별적 해악을 초래해온 만큼 임신중지에 대한 법과 정책은 여성에게 보다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헌재가 8월 말로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선고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미뤄졌다.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9월 19일자로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낙태죄 선고가 연내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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