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병동 90세 환자 "진주의료원서 태어나 마지막 여생도 여기서 보내고 있다"
경남도청 보건당담 공무원 "공공병원 폐업 부당" 반발하며 사표

“홍준표씨가 도지사가 되면 잘 하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난 선거에서 그를 도지사로 찍은 내 손등을 찍어 버리고 싶다.”

진주의료원의 휴업 예고 마지막 날인 지난 3월 30일, 진주의료원을 찾은 자원봉사자는 격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경남도가 지난 2월 26일 지역거점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한지 한 달여가 훌쩍 지났다. 기자는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휴업 예고를 한 마지막 날인 지난 30일 의료원을 찾았다.

진주의료원이 위치한 곳은 신도시로 조성 중인 지역이라 주위는 썰렁했고, 그나마 경남도의 휴폐업 예고 이후에는 병원을 찾는 환자도 거의 없었다. 

진주의료원 노조 박석용 지부장은 “오늘이 휴업 예고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아직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다”며 “진주 시민들과 경남도민들이 도와주면 진주의료원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함께한 조합원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노조는 이날도 진주의료원에서 산청 5일장이 서는 곳까지 이동해 주민들에게 유인물을 배포하고 지역 노인을 위한 혈압․당뇨검진 부스를 만들어 무료로 검진을 해주는 등 진주의료원 폐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박 지부장은 “도청에서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후에는 조합원들이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오늘은 오전 선전전을 마치면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산청에서의 선전전을 마치고 다시 찾은 진주의료원. 병원 로비에 붙어있는 ‘진주의료원 최우수 응급의료기관 선정’ 이라는 푯말이 무색할 정도로 병원 안은 텅 비어있었다.

실제로 이날 오전부터 오후 5시까지 병원을 둘러보는 동안 외래환자는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1~2층 외래 진료실은 환자 대기실이 무색할 정도였다. 간호사와 빈 의자만이 텅 빈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1층과 연결된 응급실도 간호사 한 명만 접수창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3층 수술실과 중환자실은 전등마저 꺼져 있는 상태였고 그나마 입원 병동인 5~6층에 올라와서야 입원환자와 간호사들을 볼 수 있었다. 

노인요양병동에 입원해 있는 올해 90세의 환자는 "진주의료원 폐업이 결정이 날 때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진주의료원이 먼저 문을 닫을지, 아니면 내가 먼저 죽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죽기 전에 의료원이 폐업한다면 나는 절대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내가 태어난 곳도 진주의료원이고 마지막 여생도 의료원에서 보내고 있다. 진주의 자랑이자 역사의 증인인 의료원을 없앤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말했다.

다른 보호자는 환자에게 직접 다른 곳으로 전원하라는 전화가 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남편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는 ‘의료원이 곧 폐업을 할 것이니 다른 병원으로 빨리 옮겨가세요’라고 말 하길래 절대 옮기지 않겠다고 말하고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의료원이 곧 폐업할 예정이니 다른 병원으로 옮겨 피해를 최소화 해달라는 우편물이 집으로 왔다며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는 보호자도 있었다.    

작년에 문을 연 호스피스 병동은 단 두 명의 환자만이 남아 있었다. 경남도의 폐업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6명의 입원환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2명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한다.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의사들이 퇴사하면 남은 환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경남도는 지난 3월 21일 진주의료원장 직무대행 명의로 오는 4월 21일자로 의료진에게 계약혜지를 통보한 바 있다.  이 간호사는 “아직까지 진료는 가정의학과장 의사선생님이 봐 주고 있다. 다행히 4월 21일까지 남아계신다고 했다”며 “하지만 다른 의사선생님들은 4월 첫 주가 되면 다들 퇴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9일에 마취과장님이 퇴사해 남은 의사는 공보의까지 15명이다. 퇴원이나 전원하지 않고 남은 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남도에서 주장하는 폐업 논리에 따르자면 호스피스 병동 역시 운영되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진주의료원 한 관계자는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면 연간 5억여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돼 의료원에서도 반대했었다. 하지만 도에서 운영하라고 지시해 겨우 병상을 만들고 열었더니 재정 지원이 없었다. 그래놓고 이제와 적자를 이유로 의료원을 폐쇄하겠다고 말한다. 도의 논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다는 보호자는 진주의료원 폐업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 보호자는 “어머니가 암에 걸리신 후 병원을 찾아 서울에서 경상대병원까지 내려왔다. 암 병동 옆에 호스피스 병실을 따로 운영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그곳에서도 항암치료의 목적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다고 쫓겨난 후 수소문 끝에 진주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곳에 온지 한 달쯤 되던 어느 날 갑자기 의료원이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금 어머니의 상태와 경제적 여건으로는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수 없다. 경제적 논리로 의료원의 문을 닫는다면 우리 같은 저소득층은 어디로 가야 마음 편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건가”라고 반문했다.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과정에서 경남도의 보건행정 담당 과장이 퇴사한 사실도 알려졌다.

진주의료원 노조에 따르면 홍준표 도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밝힌 이후 도청 보건담당 공무원이 반발해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지부장은 “홍준표 도지사가 폐업 방침을 밝히고 얼마 되지 않은 2월 말 도에서 보건행정을 담당하던 공무원이 도지사의 정책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공공병원을 경영 논리를 들어 폐업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년을 5년 정도 남겨두고 양심에 따라 30년간 몸담은 공직을 떠난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퇴사한 전 경남도 보건행정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직접 퇴사 이유를 듣기 위해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이 과정에서 그를 잘 알고 있는 경남도의회 의원과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그 도의원은 "비록 경남도청을 떠났지만 자신이 30년간 몸담았던 조직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런 가운데 경남도는 휴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청 복지노인정책과 윤환길 주무관은 “휴업을 진행할지 안할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아마 주말 중에 진주의료원장 직무대행과의 회의를 통해서 앞으로 일정이 나올 것 같다”며 “만일 휴업을 하게 되면 진료행위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외래환자 진료는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