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1일 두 차례 도민토론회 열어...충분한 정보 제공 통해 책임감 있는 결론 도출해야

[라포르시안] 제주도는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도입되는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놓고 벌써 수년째 도내 시민단체와 지역민 사이에서 찬반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의료영리화를 모색한 박근혜 정부에서 의료공공성을 중요시 하는 문재인 정부로 바뀌면서 녹지국제병원 개설 여부는 더 불투명해졌고, 도내에서 영리병원 개설을 둘러싼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 모양새다. 심지어 제주도와 보건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놓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는 지난 3월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여부를 신고리 원전 5·6호기처럼 공론조사 방식을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 차원에서 중요 현안에 대한 공론조사를 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사고 있다.

특히 공론조사 대상이 국내 첫 영리병원 개설 허가 찬반이란 점에서 제주도의 이번 공론조사 과정과 결과가 국내 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 영리병원 개설 허가와 관련된 공론조사의 첫 단계로 지난 30일 제주시 연동에 있는 제주도농어업인회관에서 제주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위원장 허용진) 주최로 '녹지국제병원' 관련 도민토론회가 열렸다. 

우석균 인도의사실천의사협의회 대표(사진 왼쪽)와 신은규 동서대 보건행정학과 교수(사진 오른쪽).
우석균 인도의사실천의사협의회 대표(사진 왼쪽)와 신은규 동서대 보건행정학과 교수(사진 오른쪽).

"중국 부동산 기업인 녹지그룹, 애초 사업계획서 승인 받을 수 없는 곳"

이날 토론회에는 영리병원 개설 허가를 놓고 찬성과 반대하는 측에서 각각 전문가 패널이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 방청객으로 참석한 제주도민들도 질의를 통해 찬반 의견을 제시했다.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의료서비스 공급자로써 영리병원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속성과 그로 인해 국내 의료체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녹지국제병원 개설 불허 쪽 발제자로 참석해 미국과 태국 등의 영리병원 도입 사례를 예로 들며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녹지국제병원과 같은 영리병원의 본질은 이윤추구에 있으며, 그로 인해 의료의 질 저하는 물론 의료비 폭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석균 대표는 "영리병원은 경쟁을 통해 의료비가 싸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미국의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보다 의료비가 약 19% 더 비싸다. 영리병원은 주주들에게 이윤배당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영리병원이 전체적인 의료비 증가를 이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추구라는 영리병원의 속성 때문에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제기했다.

우 대표는 "미국의 경우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사망률이 1.2배 높다. 그 이유는 이윤추구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건비 절감 차원으로 의료인력을 줄이고 1인당 진료시간을 줄이고 치료재료의 질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며 "미국에서 모든 영리병원을 비영리병원으로 전환하면 1년에 1만4천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

경제단체에서는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새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영리병원의 고용창출 효과는 비영리병원보다 낮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기관 영리성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비영리병원은 100병상 당 고용인력이 522명인데 영리병원은 352명으로 비영리병원의 약 67% 수준에 불과하다.

우 대표는 "미국의 경우 영리병원의 고용인력이 비영리병원의 2/3 수준에 불과하다. 영리병원은 고용인력이 적고 의료이 질이 낮고 진료비가 비싸기까지 하다"며 "영리병원의 목적은 주주들에게 이윤배당을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시 불러올 '뱀파이어 효과'도 우려된다. 이윤추구에 목을 매는 영리병원의 경영 행태가 주변의 다른 비영리병원으로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 대표는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의 의료비도 폭등시킨다. 태국에 의료관광을 위한 영리병원이 많이 생기자 그런 병원으로 의사들이 옮겨가기 시작했고, 도시 지역에 영리병원이 밀집하면서 도시지역으로 쏠림이 심화돼 도농간 의료격차가 커졌다"며 "그 결과 맹장수술, 담낭수술 같은 간단한 입원 및 수술 등의 의료비가 50% 폭등했다"고 말했다.

녹지국제병원을 설립하는 중국의 녹지그룹이 당초 병원을 설립할 자격이 없었음에도 사업계획서 심의가 부실하게 이뤄져 승인이 났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우 대표는 "중국 녹지그룹은 병원을 경영한 경험이 없는 부동산 기업으로, 애초에 (사업계획서 승인)허가를 받을 수 없는 곳"이라며 "그러다 보니 국내 의료법인인 미래의료재단 측에 운영을 맡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내 의료법상 의료법인인 미래의료재단은 녹지국제병원의 운영에 참여하거나 경영 컨설팅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5년부터 3년간 박근혜 정권이 불법적으로 추진한 영리병원 도입을 이제는 그만둬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의료영리화 정책을 중단한다고 제주도에 공문까지 보낸 바 있다. 제주도가 (영리병원 도입)실험대인가, 제주도민인 실험대상인가. 외지 부유층을 위한 영리병원이 아니라 도민을 위한 국립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지국제병원, 현재 설립요건 모두 충족...개설 불허할 법적 근거 없어"

개설 찬성 쪽에서는 녹지국제병원이 이미 합당한 절차를 거쳐서 사업계획서 승인이 났고, 병원 신축 후 인력고용까지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에 개설을 불허할 경우 오히려 더 큰 혼란과 재정적인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웠다.

찬성 쪽 발제자로 나선 신은규 동서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녹지국제병원과 같은 영리병원이 건강보험 재정이나 국내 의료체계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은규 교수는 "영리병원은 100% 환자 본인부담이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다"며 "실제로 부유층이 이용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이윤이 창출되는 것을 반대할 게 아니라 창출된 이윤이 제대로 쓰이는지 시민단체가 감시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녹지국제병원은 현재 설립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총 1조원의 투자 중 6천억원이 이미 실행됐다"며 "만약 개설이 불허되면 (중국 녹지그룹 측에서)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그럴 경우 제주도민이 (배상 비용을)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서를 심의하고 승인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 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서 심의를 할 때 그냥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국의료기관으로 인해서 사업계획서 승인이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것을 다 확인했다"며 "녹지국제병원이 국내 보건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도 복지부가 확인했다. 원희룡 지사도 '(녹지국제병원으로 인해)의료체계가 붕괴하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온다, 늑대가 온다는 것처럼 너무 침소봉대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에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불허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신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도 법적으로 검토해보면 제국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법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공공의료를 침해하는 행위가 있다면 그것을 막겠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며 "이미 다 진행된 절차를 가지고 (개설이)안 된다는 주장을 하기보다는 기왕 들어온 것을 어느 쪽으로 끌고 갈 것인가 논의하는 게 시민단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도 찬반 양쪽이 비슷한 내용의 주장을 이어갔다.

제주도가 복지부에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서 승인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구비해야 할 서류가 빠졌음에도 승인이 났기 때문에 이를 재심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오상원 제주도 보건의료정책 심의위원회 위원은 "녹지국제병원에서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때 중요하게 제출해야 할 게 바로 사업시행자의 유사사업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는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에도 규정돼 있다"며 "그런데 녹지국제병원은 유사사업 증명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엉뚱하게 다른 자료를 제출했다. 우회투자 논란이 제기된 사업자들과의 중국, 일본 등에서 환자 사후관리에 대한 협약 자료를 제출했다. 이는 사업계획서 서류 미비로, 사업계획서가 잘못 제출됐으면 도지사는 심의해서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녹지국제병원 같은 영리병원 도입이 국민과 환자의 선택권 확대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인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성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영리의료 허용은 국민과 환자의 선택권 확대로 봐야 한다. 1인당 GDP가 1천불 수준일 때 건강보험 제도를 도입한 이후 현재는 3만2천불 정도로 높아졌다"며 "지금과 같은 형태로 (건강보험제도가)계속 간다고 할 때 국민의 만족도를 충족할 수 있을까. 소득 소준이 올라간 만큼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단일 건강보험 체계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영리병원 도입이 의료 질을 높이기 위한 옵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도민들 고민은 보다 현실적..."개설 불허하면 이미 취업한 사람들 어쩌나"

토론회에 참석한 방청객들도 찬반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녹지국제병원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생각은 보다 현실적이었다.

서귀포시에서 온 한 주민은 "지금 이 토론회가 과연 누구를 위한 토론회인지 갑갑하다"며 "녹지국제병원에 제주도 청년들이 취업해 있다. 그 청년들이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복지혜택도 좋고 새로운 병원을 접해보고자 녹지국제병원에 취업했는 데 만약 개설 불허가 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하고 따져 물었다. .

녹지국제병원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면 도민이 이용하지 않더라도 설립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주시에서 온 청년 방청객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런 시설이 늘어나면 우리같은 젊은층도 제주도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영리병원이 최악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논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꼭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병원이라면 있어도 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반면 제주도내 공공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한 의료인은 녹지국제병원이 개설되더라도 일자리 창출 효과나 의료서비스 질 향상 등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제주도내 공공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한 방청객은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이미 영리병원은 적은 의료인력으로 일하고 의료 질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병원 노동자로서 솔직하게 밝히면 병원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환자를 이용하고 돈을 벌 수 있지만 대한민국 법상 건강보험제도 등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은 그런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공론조사위원회는 오늘(31일) 오후 2시부터 서귀포시 청소년수련관에서 2차 도민 토론회를 연다.

공론조사위원회는 2차례의 지역별 토론회가 끝나면 연령·성별·지역 등을 배분한 도민 3,000명을 대상으로 2주동안 1차 공론조사(여론조사)를 실시한다. 동시에 200명의 도민참여단도 모집한다.

도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약 3주 동안 토론회 등 숙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2차 공론조사를 실시하고, 1·2차 공론조사 결과 등을 참고해 9월 중 최종 권고안을 작성해 원희룡 도지사에게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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