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 동의 환자가족 범위 놓고 의료현장 혼란..."범위 축소해야" 의견 쏟아져

[라포르시안]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5개월을 맞았지만 의료현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연명의료 중단 의사결정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이다. 

현행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에는 환자 본인이 사전에 연명의료중단 결정을 하고 존엄한 죽음을 택하는 것과 환자 환자 가족의 진술이나 전원 합의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통계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환자 본인의 결정에 의해 연명의료중단 결정이 나온 비율은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환자 가족의 진술(28.5%)이나 전원합의(36.7%)로 대신 결정한 사례가 훨씬 많다. 

문제는 환자 본인의 의사를 알 수 없는 경우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합의해야 하는 절차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직계가족 범위가 너무 넓고 아예 직계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연락이 닿지 않는 '무연고자'의 경우는 더 연명의료 중단 여부 결정이 더 어렵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도자 의원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현명의료 결정제도 시행 5개월, 현장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를 연 것도 직계가족 전원합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최도자 의원은 앞서 동의를 구해야 하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나 1촌 이내 직계 존비속 등으로 줄이는 내용의 연명의료 결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허대석 서울대의대 내과 교수는 이날 토론회 주제발표에서 "현행법에 따르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가족 전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환자의 의사를 알 수 없는 경우 연명의료 중단 관련 동의를 구해야 하는 직계가족의 범위가 너무 넓고 관련 절차도 복잡하다"면서 "법률에서 정한 가족 범위를 직계가족에서 대리인 제도를 도입하는 등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허 교수는 "우리보다 앞서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하고 있는 일본은 직계가족의 범위를 확대하고 무연고자에 대해서는 의료진이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했다. 대만은 가까운 친척이 동의해도 되고, 내년부터는 대리인제도를 본격 시행한다"면서 "환자가 불필요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가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라는 시각을 갖고 지속해서 법률을 개선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동의를 구해야 하는 가족의 범위를 좁히자는 쪽에서 의견을 냈다. 

김선태 병원협회 대외협력부회장은 "의료현장에서 법대로 이행하기가 어렵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를 활성화하려면 가족의 범위를 간소화하고 관련 수가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맡기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석배 단국대법대 교수는 "독일의 경우 민법에 연명의료중단 관련 규정이 있는데, 의사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며 "임종 직전인 환자의 치료를 중단할지 계속할지는 의사가 판단하면 된다. 다른 것은 생각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이왕에 만들었으니 의사가 가족의 동의 없이 연명의료를 중단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 가족의 범위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가족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면서도 무조건 법을 바꾸기보다는 국민의 인식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안 대표는 "대만은 2000년에 관련 법이 제정됐고 일본은 2007년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올해 초 제정됐다"면서 "오늘 토론회에서 지적되고 있는 연명의료 결정 문제는 환자 본인이 미리미리 의향서를 작성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 문화를 예로 들면서 "화장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는 유가족들의 거부감이 컸지만, 지금은 보편적인 장례문화로 확산되지 않았냐"며 "연명의료 제도 역시 대국민 홍보를 통해 건강할 때 의향서를 쓰도록 유도하고 의사가 환자에게 권유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연명의료 중단으로 절감되는 재정을 연명의료를 활성화하는 데 쓰자"고 제안했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원 부장은 대만의 사례를 참고하자고 제안했다. 

백 부장은 "환자의 자발성에 근거하지 않고 가족 간에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 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방안으로 대만의 법률과 형식을 참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연명의료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심폐소생술의 유용성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안기종 대표가 심정지가 오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심폐소생술은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다.  

허대석 교수는 "안 대표 본인이 심폐소생술의 피험자가 되어 직접 경험해보라. 그래서 그게 할 일인지 아닌지 결정해라, 갈비뼈가 부러지고 심장이 터지도록 누르는 게 심폐소생술"이라며 "환자 본인에게는 너무 고통스럽다. 환자 보호자가 올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하라는 것은 난센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석희태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도 "인도주의를 실천하겠다고 환자에게 테러를 가하는 인도주의적 테러에 해당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토론회에서 요양병원에 근무한다는 한 의사는 "환자 가족들이 죽음을 방치했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려고 심폐소생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심폐소생술을 했음에도 뇌 손상이 와서 3살 아이의 지능 수준이 되어버린 40대 환자도 있다"며 "80세가 넘은 환자도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지만 뇌 손상이 온다면 어찌할거냐. 연명의료 중단에 관해 설명할 때 심폐소생술 이후 발생할 문제까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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