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응급실 기반 사후관리사업 자살예방 효과 확인...수행기관 늘었지만 기관당 지원예산은 줄어
"성공적 사업 수행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과 사례관리자 고용안정성 확보돼야"

[라포르시안] 보건복지부가 약국을 이용한 노인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앞서 복지부가 실시한 '2018년 민관협력 자살예방사업 수행기관 선정'에 대한약사회가 선정됐다.

약국 자살예방사업은 지역내 약국에서 근무하는 약사에게 자살시도를 막는 게이트키퍼 역할을 맡기는 게 핵심이다. 자살위험약물을 DB로 구축하고 해당 약물을 복용하는 노인환자를 대상으로 복약지도와 상담을 통해 자살위험 환자를 조기 발굴하고 고위험 환자는 지역의 자살예방센터로 연계하는 방식이다.

복지부는 이 사업을 위해 오는 12월까지 1억3,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이 돈은 사업에 참여하는 약국에 상담 건당 7,000원의 상담료를 지급하고, 약사 대상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교육 등에 사용된다.

의료계는 약국 자살예방사업이 약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원협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약사회의 자살예방사업에서 약사에 의한 자살예방상담은 무면허 의료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 수행기관으로 약사회를 선정한 것은 보건복지부가 사업참여 약사에게 의료법 위반을 교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이 사업 시행으로 오히려 환자들에게 자살생각을 부추기거나 우울증 환자가 치료를 중단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약사회가 자살예방사업을 약사 직능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기회로 바라보고 있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약사회가 발행하는 기관지 보도에 따르면 강봉윤 정책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자살예방사업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자살예방사업이 4차산업혁명시대에 약사 직능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이 사업 자체가 큰 블루오션인 만큼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또 성공적인 결과 도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약사회가 자살이라는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진정성 없이 수익모델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발언이다"며 "약사회가 자살예방에 동참하고 싶다면 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해야한다. 자살예방에 비전문가이자 비의료인인 약사들이 상담료 수가의 책정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히 55만 게이트키퍼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약국을 이용한 자살예방사업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자살예방 효과가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는 병원 응급실 기반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의 지원 확대가 절실한 편이다.

2013년부터 시작한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은 정신건강전문요원 등 2명의 전문인력을 응급실에 배치해 자살 시도로 내원한 사람에게 상담 및 사례관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자살시도자가 퇴원한 후에도 전화 및 방문 상담을 진행하고, 정신건강 및 복지서비스 및 지역사회의 자원을 연계해 자살 재시도를 막는 데 목적이 있다.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수행기관은 내부 모니터링 회의 모습.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수행기관은 내부 모니터링 회의 모습.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시도자가 퇴원한 후에도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전화 및 방문 상담을 진행하고, 정신건강 및 복지서비스 및 지역사회의 자원을 연계해 자살 재시도를 막는 활동도 한다. 작년에는 자살시도로 응급실에 내원한 1만 2.264명 중 8,815명에게 사전 동의를 받아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사업의 자살예방 효과도 검증됐다.

복지부가 2017년 1년 동안 사후관리사업을 수행한 42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시도자 1만 2,26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사후관리서비스를 진행할수록 ▲전반적 자살위험도 ▲자살계획·시도에 대한 생각이 감소하고, ▲알코올 사용문제 및 스트레스 ▲식사 및 수면문제, 우울감 등 정신상태 등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 자살위험도의 경우 사례관리자 1회 접촉 시 자살위험도가 ‘上’인 경우가 15.6%(567명)에서 4회 접촉 시 6.3%(231명)로 줄었다. 자살계획이 있는 경우는 1회 접촉 시 3%(119명)로 나타났지만, 4회 접촉 시 1.3%(52명)로 감소다. 자살시도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1회 접촉 시 1.6%(63명)에서 4회 접촉 시 0.6%(23명)로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은 전국 52개 의료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다. 작년까지 42개 병원이 수행기관으로 지정됐고, 올해 10개 병원이 추가로 참여한다.

전체 사업예산은 사후관리사업 수행기관이 늘면서 2016년 20억원에서 2018년에는 47억원으로 늘었지만 참여하는 기관당 지원예산은 오히려 줄었다. 작년까지는 사후관리사업 참여 기관당 지원예산이 연간 7,000만원이었으나 올해부터는 6,400만원으로 책정됐다.

이 지원예산은 대부분 응급실에 배치하는 정신건강전문요원 2명의 인건비로 지급된다. 그러나 사업에 참여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정신건강전문요원 인건비 외에도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기존 인력도 활용해야 하고, 별도의 공간도 마련하는 등 추가 비용부담이 따른다. 복지부의 지원예산에는 이런 점이 반영되지 않았다.

자살시도자가 내원할 경우 가장 먼저 응급실에 근무하는 전공의와 간호사 등의 추가적인 업무부담이 발생하며, 이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복지부의 지원예산에는 기존 근무자에 대한 인건비 보상이 전혀 없다.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 관계자는 "정신건강전문요원의 능력만으로는 자살시도자 사례관리사업을 잘 운영할 수 없다"며 "자살시도자를 가장 먼저 접하는 응급실 인턴, 간호사, 응급의학과 전공의 등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정신과 전공의가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상담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성공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서는 사업 참여에 대한 다양한 보상이 필수적이다. 사례관리자는 물론이고 응급실과 정신과 등의 인력에 대한 보상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이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되는 탓에 핵심 역할을 하는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의 고용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병원 입장에서는 복지부의 인건비 예산을 지원받아 수행하기 때문에 정신건강전문요원을 채용할 때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할 수밖에 없다.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다 보니 사례관리에 오랜 경험을 가진 정신건강전문요원이 그만두는 일도 심심찮게 생긴다. 자살시도자의 사후관리사업은 대상자와 사례관리자 간 유대감과 신뢰관계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신건강전문요원의 고용안정성 확보가 사업의 성과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이 사업을 시범사업 형태가 아니라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1월 발표한 '자살예방 국가행동 계획'을 통해 응급실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수행기관의 확대와 함께 이 사업에 건강보험 수가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신경정신의학회는 "응급실기반 자살시도자 사후 관리 서비스기관이 올해부터 확대되지만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이다. 일본과 같이 수가화해 병원의 보편적 사업으로 확대하고 사례관리자들의 고용을 안정시켜야 한다"며 "병원기반 적극적 사례관리 등 대처가 부족한 부분은 시급히 논의되어야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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