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개혁특위, 2022년까지 기금화 법개정 권고...국회 ↔ 정부·의료계·시민사회 찬반 의견 갈려

[라포르시안] 건강보험 재정 기금화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그동안 국회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기금화를 위한 법개정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혀 흐지부지 끝났다.  

실제로 지난 17대 국회부터 건강보험 재정의 기금화를 위한 관련법 개정안이 지속적으로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모두 폐기된 바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작년 10월 건강보험 기금화를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오는 2022년까지 건강보험재정을 기금화하는 법안을 제정하는 내용의 재정개혁 권고안을 마련하면서 기금화를 둘러싼 사회적 공방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개혁특위는 예산과 재정관리, 조세제도 등에 관한 개혁과제를 발굴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재정개혁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월 신설된 대통령 직속 기구이다. 출범 이후 지속적인 논의를 거쳐 지난 3일 건강보험 기금화를 포함한 상반기 재정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현재 4대 사회보험 중에서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의 사회보험재정은 '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기금 운용계획안 및 결산에 관해 국회의 심의를 받도록 돼 있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은 국회의 통제 없이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 아래  운용된다.

건강보험 재정 기금화가 되면 국회로부터 재정운용 통제가 강화된다.
건강보험 재정 기금화가 되면 국회로부터 재정운용 통제가 강화된다.

이 때문에 국회를 중심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회계 투명성과 운영의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금으로 전환해 정부의 예산회계절차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2011년 발표한 ‘2010 회계연도 결산중점 분석 보고서'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 불균형 및 관리시스템 미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기금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에 재정개혁특위가 권고한 건가보험 재정 기금화 방안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졌다.

재정개혁특위가 권고한 기금화 방안에 따르면 1단계로 통합적 국가재정 규모의 파악을 위해 건강보험 등을 포함한 총지출 및 복지지출 규모 정보를 2019년부터 공개하고, 중장기 재정전망 등이 포함된 건강보험종합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토록 한다.

2단계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추진하면서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 방안을 마련한 후 오는 2022년까지 기금화를 위한 법제화를 추진토록 권고했다.

재정개혁특위는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국가재정 외로 운영되면서 건강보험 등의 지출규모 전체가 아니라 정부가 건강보험 등에 지원하는 규모만 국가재정에 포함된다"며 "국민들은 건강보험료를 조세와 같은 성격으로 인식하지만 국가재정에서 건강보험은 제외돼 국민이 국가재정 및 복지지출 규모를 과소 인식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금화로 재정운용 투명성 강화하고 보험의 책임성 확보"

기금화 찬성 쪽에서는 정부재정의 정확한 파악과 국민부담 적정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등에서는 "정부의 재정활동의 흐름을 보여주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건강보험은 제외돼 정확한 정부재정을 파악하는 데에 제약이 되고 있다"며 "정부재정은 원칙적으로 공공부문 전체의 재정활동을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며, 건강보험은 향후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대표적인 정부사업으로 국민부담의 적정화를 위해 기금을 통한 정부재정의 틀 속에서 관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 기금화를 위한 관련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건강보험이 기금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국회와 재정당국의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고, 재정 외 운용으로 인해 정부총지출 및 복지지출 규모가 축소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건강보험을 기금화함으로써 국민건강보험사업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가능하게 해 재정운용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보험의 책임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기보험 특성과 맞지 않고, 보장성 확대보다 재정증가 억제에만 초점"

건강보험 기금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 운영 주체인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물론 의료계와 시민단체에서도 반대 의견이 높다. '단기보험'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기금화 논의가 제기될 때마다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건강보험 재정이 수입과 지출을 1년 단위로 맞추는 단기보험이란 점에서 기금화가 맞지 않고, 규제 강화로 재정 운용의 융통성과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건강보험제도 운영은 '가입자(국민)-보험자-공급자' 간 계약이 핵심이므로 정부의 개입 보다는 사회적 계약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기금화에 부정적이다.

의료계는 "건강보험재정을 기금으로 관리하면 국회는 물론 예산 관련부처의 통제 강화로 자금 운용의 융통성과 유연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보장성 확대나 적정보상 이전에 재정증가 억제에 자금 운영의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노동계도 기금화에 반대 의견이 높다. 특히 박근혜 정부 때 사회보험 재정건전화를 명분으로 건강보험 기금화가 논의되자 주식이나 채권, 사회간접자본, 부동산 등에 투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했다.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기금을 적립하기 위해서는 보험료가 지금보다 올라야 하고, 기금으로 묶인 돈은 의료비로 지급되기 어려워 그만큼 보장성 강화가 어렵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금화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운용에 있어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보험료 부담의 주체인 국민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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