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경총, 일자리 창출 앞세워 또 영리병원 허용 주장...미국 등 사례서 영리병원 수익성 강화 위해 고용 감소 확인돼
의사-환자 원격의료 허용시 보건의료 일자리 질만 악화돼...의료접근성도 떨어뜨려

[라포르시안] 경제계가 다시 영리병원 설립 허용을 규제 개혁 과제로 정부에 제시했다. 역시 이번에도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같은 규제 개혁을 추진하면 수십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주장을 폈다.

사실 이런 주장은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경제계는 앞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새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영리병원 설립허용을 요구해 왔다.

이번에는 영리병원 설립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 규모가 훨씬 더 커졌다. 그러나 기존 선행영구나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는 미국 등의 사례를 볼 때 비영리법인 병원보다 영리법인 병원의 인력고용 효과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경제계가 대기업의 새로운 수익사업 창출을 위해 근거도 불명확한 일자리 창출 효과를 앞세워 의료영리화의 물꼬를 틔울 수 있는 영리병원 허용 정책을 주장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영리병원 고용창출 효과 근거 미흡하고 긍정적인 점만 부각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5일 기획재정부에 '혁신성장 규제 개혁 과제'를 건의했다.

경총이 건의한 규제 개혁 과제는 ▲ 영리병원 설립 허용 ▲ 원격의료 규제 개선 ▲ 의사·간호사 인력 공급 확대 ▲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은산 분리 완화 ▲ 프랜차이즈 산업 규제 개선 ▲ 산업과 경제의 디지털화에 따른 노동관계법 개정 ▲ 드럭스토어 산업 활성화 ▲ 5세대 이동통신(5G) 투자 지원 확대 ▲ 고령자에 대한 파견허용 업무 규제 폐지 등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안한 '혁신성장 규제 개혁 과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안한 '혁신성장 규제 개혁 과제'.

경총에 따르면 영리병원 설립과, 원격의료 허용 등 부가가치가 높은 의료산업에 대한 규제 개혁이 이뤄지면 18만7,000∼37만4,000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한다.

경총의 이 같은 주장은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주장한 내용과 유사하다.

앞서 전경련은 지난 2016년 5월 '7대 갈라파고스 규제개혁시 경제적 기대효과'라는 자료를 통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도입하면 새 일자리가 약 27만개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전경련의 이 같은 분석은 지난 2011년 현대경제연구원이 작성한  '투자 개방형 의료법인의 경제적 효과'라는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다. 당시 현대경제연구원은 해당 보고서를 통해 영리병원 허용이 의료산업에 끼치는 영향을 ▲내수시장 지향형(내국인의 의료서비스 수요 일부 충족) ▲의료관광 산업화형(내국인과 함께 외국인 의료관광 수요 확보) ▲핵심 산업화형(영리법인 도입으로 의료산업이 경제의 핵심산업화) 등 세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해 분석했다.

이 중에서 의료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가장 큰 핵심산업화형의 시나리오를 적용했을 때 10조5,000억원의 부가가치와 18만7,0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낼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영리병원 도입으로 의료산업(의료서비스 + 제약 + 의료기기)이 경제의 핵심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제약이나 의료기기제조업이 무역수지 균형을 이룬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이번에 경총이 제시한 영리병원 설립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앞서 전경련과 현대경제연구원이 제시한 것보다 수치가 더 커졌다. 그러나 경제계의 이런 주장은 근거도 미흡하고, 영리병원 설립 효과도 막연하게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해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경제계는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민간자본이 의료시장으로 유입돼 새로운 병원이 설립되고, 또한 민간자본이 병원의 비효율적인 경영구조를 개선해 수익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이윤극대화 추구하는 영리병원, 비용 절감 위해 고용 감소"

과연 그럴까. 미국 등의 영리병원 운영 사례를 보면 일자리 창출 효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일자리가 더 줄어들 가능성도 높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운영된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영리병원의 고용인은 100병상당 평균 522명으로, 비영리병원(평균 352명)의 67.4%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일규모의 개인병원과 비영리병원의 고용인력을 비교한 결과, 100병상당 고용인력은 개인병원(49.2명)이 비영리법인 병원(86.4명)보다 43%가량 더 적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의료서비스 분야의 생산비용 중 약 40%가 인건비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리병원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가장 먼저 손을 댈 수 있는 게 바로 인건비 최소화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원은 '의료기관 영리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영리병원의 도입으로 의료서비스산업의 고용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연구원은 "영리법인병원은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을 위해 필수의료분야 등에서 고용을 감소할 수 있다"며 "미국의 경험에서 볼 때 비영리병원이 영리병원으로 전환한 이후 오히려 고용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리병원들은 비용감소를 통한 수익증대를 도모하고 수익성이 적은 응급실을 폐쇄하는 등의 방법으로 고용을 감소키시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리병원 설립 허용이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연구원은 "영리병원 허용으로 국민의 의료비 지출이 증가할 경우 의료복지비용 증대에 따른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미국 기업들은 과도한 의료비 부담으로 고용을 꺼리는 등 기업경영의 압박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영리병원 허용으로 국민의료비 부담이 가중되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은 하락할 것이고 고용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병상 과잉공급 상태라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더라도 신규 병원이 들어설 여력이 높지 않다. 가뜩이나 병상 과잉공급으로 병원 간 환자유치 경쟁이 치열한데 외부자본에 의한 영리병원까지 들어서면 병원의 경쟁은 더 심해지고 경영 차원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규제를 개선할 경우에도 일자리 창출보다는 되레 보건의료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나쁜 일자리만 늘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원격의료의 경우 기존 대면진료 방식과 비교해 간호사 등의 의료인력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원격의료 시스템을 확충하고 유지하기 위한 IT인력 창출 효과만 어느 정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 관계자는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대면진료가 사라지고 이로 인해 대면진료에 투입됐던 보건의료 분야 인력은 갈 곳을 잃게 될 것”이라며 “다만 원격진료 허용으로 스마트케어센터와 같은 원격진료 전문센터의 서비스를 관리하고 이를 운영하는 인력은 확충될 수 있지만 이는 보건의료 분야의 인력이 아닌 관리직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접근성 증대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의료인력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경총의 주장은 영리병원 허용 주장과 배치된다.

미국의 사례를 볼 때 영리병원 설립 허용은 오히려 저소득층이나 의료취약지 주민의 의료접근성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영리병원은 수익성이 낮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폐쇄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로 대도시 등의 환자유치가 용이한 지역에 설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취약지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특히 대기업 자본이 투자한 영리병원으로 의료인력 등의 의료자원이 집중되면 지방의 의료공백은 심화되고 의료접근성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은 "미국에서 영리병원의 의료접근성에 관한 연구 결과 영리병원은 일반적으로 의료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영리병원은 대체로 수익이 되지 않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폐쇄시키는 경우가 많았고, 영리병원으로 인해 공공병원이 폐쇄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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