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원간 추가소요재정 '뺏고 빼앗기'...의협 "문케어 반대한다고 낮은 인상률 제시"

[라포르시안] 건강보험공단과 의료공급자단체간 수가협상을 흔히 '제로 섬(zero sum)' 게임이라고 부른다. 

현행 유형별 수가협상은 단일 보험자인 건보공단이 병원, 의원, 약국, 한의원 등 7개 유형의 공급자단체와 다음년도의 수가인상률을 결정하는 협상을 진행한다.

수가인상률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건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정하는 수가인상에 반영할 '추가소요재정(밴딩 폭)이다. 보험자인 공단은 재정운영위에서 정한 밴딩 폭의 범위 안에서 7개 유형의 공급자단체와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추가소요재정을 놓고 어느 유형에 얼마나 배분할지 결정하는 셈이다.

한정된 추가소요재정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보니 수가협상에 참여하는 7개 유형별 공급자단체 중에서 어느 한 쪽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가인상안을 끌어내면 다른 쪽에서는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수가협상이 처음부터 이런 방식이었던 건 아니다. 지난 2007년까지는 의원, 병원, 약국 등 모든 공급자단체에 단일 환산지수(동일한 수가인상률)를 적용했기 때문에 각 단체들이 공동의 목표의식을 갖고 수가협상에 임했다. 그러다 2008년부터 유형별 수가협상으로 전환하면서 각 단체들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인상률을 끌어내기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유형별 수가협상으로 전환된 이후 병원과 의원급의 수가인상률은 전체 협상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됐다. 병원과 의원이 차지하는 건강보험 요양급여비 점유율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병원과 의원급 중에서 어느 한 쪽이 높은 인상률을 끌어내면 다른 쪽은 협상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유형별 수가협상으로 전환된 이후 역대 인상률을 보면 병원과 의원급이 시소를 타듯 한 쪽의 인상률이 높은면 다른 쪽의 인상률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표 제작: 라포르시안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표 제작: 라포르시안

건보공단의 연도별 환산지수 결정 현황 자료를 보면 유형별 협상이 처음 적용된 2008년 경우 추가재정 소요분 3,013억원을 놓고 전체 평균 인상률이 1.94였다. 7개 유형 중에서 병원급이 1.5%, 의원급 2.3%로 결정됐다.

2009년 병원급의 수가 인상률이 2.0%로 전년도 보다 올랐고, 의원급 2.1%로 전년도 대비 더 떨어졌다. 2010년에는 다시 병원급 인상률이 1.4%로 낮아졌고, 의원급은 3.0%로 전년도 대비 훨신 높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병원급이 1.7%, 의원급 2.8%의 인상률을 기록했고, 2013년에는 병원급이 2.2%의 인상률을 이끌어 내면서 의원급 2.4%로 인상률이 전년도 보다 떨어졌다.

이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병원급의 수가 인상률은 1.4~1.9%를 기록했고, 의원급은 2.9~3.1%의 인상률을 끌어냈다. 그러다 내년도 수가인상률에서 병원급이 2.1%라는 비교적 높은 수치를 끌어내면서 의원급은 최근 5년간의 인상률 보다 낮은 2.7% 인상안을 건보공단 측으로부터 최종안으로 제시받았다.

병원급의 수가를 1% 인상하는 데 약 2,2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투입되고, 의원급은 1,000억원 정도 투입된다. 이를 감안하면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결정한 내년도 추가소요재정분(9,758억원) 중에서 약 4,700억원이 병원급의 수가인상을 위해 쓰인다.  

추가소요재정분의 상당 부분이 병원급 수가인상에 투입되면서 의원급 수가인상률은 예년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단 측은 병원급의 수가인상률이 예년에 비해 높게 책정한 것은 문재인 케어의 핵심인 비급여의 전면급여화와 병실간격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을 반영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개원가를 중심으로 문재인 케어에 강력히 반발한 것이 이번 수가협상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의협은 "건보공단은 20조가 넘는 사상 유례 없는 건보재정 누적 흑자에도 쓰러져 가는 병·의원의 경영 상황은 도외시한 채 협상 시작부터 문재인 케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납득조차 되지 않는 인상률 수치를 고집했다"면서 "이는 공정하고 동등한 조건에서 성실하게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건보공단의 직무유기이며 간호사 등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근로환경과 생존까지 위협하는 착취 행위로, 협상 결렬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