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간호사의 잔여마약류 반납 누락 방치·간호사 약물중독 사망
의약품 관리 부실 자체 감사마저 부실..."철저하게 조사하고 책임자 엄중 처벌해야"

[라포르시안] 최근 간호사가 원내 화장실에서 약물을 투여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국립중앙의료원(원장 정기현)의 의약품 관리시스템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의료원 차원에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4일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간호사의 약물 중독 사망에 앞서 작년 12월에 원내 응급실 간호사 A씨가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마약류 의약품을을 자신의 차량에 보관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간호사 A씨가 자신의 차량에 마약류 의약품을 보관하게 된 과정이 황당하다.

의료원 측의 해명에 따르면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긴급 상황으로 같은해 9월부터 12월까지 안심응급실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담당부서 내 자체회의를 거쳐 간호사 A씨 차량에 마약류 의약품 등을 잠시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응급실 리모델링 공사를 완료한 후 A씨가 차량에 보관하고 있던 의약품을 원래 보관장소로 옮겼다. 그러나 작년 9월 A씨가 자신의 차를 검검하는 과정에서 일부 유통기한이 지난 마약류 의약품 3개(페치딘 2앰플, 펜타닐 1앰플)를 발견했다.

A씨는 발견 즉시 의료원 측에 신고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3개월 정도 지난 2017년 12월 18일에 이 사실을 상급자인 해당부서 수간호사에게 보고했다. 이런 사실을 보고받은 간호부 행정사무실에서 약제부 직원을 입회시킨 가운데 해당 의약품을 폐기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의료원 내에서는 마약류 관리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우선 응급실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자체회의까지 거쳐 간호사의 차량에 미약류 의약품을 잠시 보관토록 결정한 과정부터 문제다.

현행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등에 따르면 모르핀 등의 마약류 의약품은 이중잠금장치가 설치 된 장소에  보관토록 한 규정을 어겼다. 이 같은 규정을 어긴 채 자체회의를 통해 소속 간호사의 차량에 보관토록 결정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의료원은 안심응급실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던 2015년 9월 이후부터 A씨가 작년 9월경 자신의 차량를 점검할 때까지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마약류 의약품의 수량과 취급내역이 누락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의료원 응급실에서는 처방된 의약품 투약 후 남은 의약품을 당일 또는 익일에 관리부서에 반납해야 함에도 손망실 등에 대비해 '잉여 의약품'을 만들어 관행적으로 보관해 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간호부는 마약류 관리지침 절차에 따라 잔여 마약류를 약제부에 반납하고, 이를 약제부에서 폐기토록 정해져 있음에도 간호부 주관으로 약제부 소속 약사가 배석한 자리에서 폐기 처리를 했다.

심지어 간호부의 책임자인 수간호사는 잔여의약품을 만들어 보관하고 사용한 사실을 몰랐다고 의료원 자체 감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마약류 취급자 교육을 연간 1회 실시해야 하지만 이를 제때 실시하지 않았고, 투약 후 남은 마약류 의약품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부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체 감사가 부실하다고 판단...우리도 납득하기 힘들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의료원이 응급실 간호사의 마약류 의약품 무단 반출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자체 감사를 진행했지만 제대로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원은 올해 1월 9일부터 2월 7일까지 이 사안을 놓고 자체 감사를 벌여 응급실 간호사 A씨가 마약류 의약품 반납 의무 및 보고 의무를 어긴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자체 감사에서 간호사 A씨가 어느 정도의 응급실 의약품을 자신의 차량에 보관했는지,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응급실 간호사들이 의약품 손망실에 대비해 처방 투여 후 남은 의약품을 보고하고 반납하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보관해온 수량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의료원은 부실한 자체 감사 결과를 근거로 간호사 A씨에게 징계 처분을 내리고 간호책임자 B씨에게 경고 처분을 했다.

의료원은 이런 사실이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사실 관계도 명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허술한 자체 감사 결과를 토대로 해명자료를 내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늘(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자체 감사결과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는 다소 무책임한 입장을 보였다.

의료원이 실시한 자체 감사에서는 간호사 A씨가 어느 정도의 의약품을 차량에 보관했고, 나머지는 어떻게 얼마나 사용됐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의약품의 반출은 직원의 실수로 빚어진 것이며, 해당직원이 추후에 사실을 인지하고 상급자(수간호사)에게 보고했고 약제부 직원의 입회하에 즉시 전량을 폐기했다"고 발표했다.

이종복 국립중앙의료원 진료부원장은 4일 오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자체 감사를 했지만 간호사 A씨가 응급실의 마약류 의약품을 얼마나 차량에 보관했는지, 그리고 정확히 어느 정도 기간 동안 보관했는지, 고의성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며 "우리도 사실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래서 최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건이 현 정기현 의료원장이 취임하기 전에 발생했고, 정 원장은 지난달 16일 응급실 간호사의 사망 사건이 발생한 후 사흘뒤인 19일 '비상대책반 및 마약류 등 의약품 특별관리 TFT'를 구성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약품 부실 관리 실태 및 감사 결과를 파악했다는 게 의료원 측의 설명이다.

이 진료부원장은 "이런 사실을 복지부와 국회에 최근 보고했고, 당시 의약품 관리 등 책임자에 대한 인사초지를 실시하고 자체감사 결과에 대해 다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해 자체 감사보다는 수사요청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다"며 "과거부터 이렇게 해 왔다고 하는데 자세한 사항은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사의 약물 중독 사망과 마약류 의약품 관리 부실은 별개의 문제?

한편 국립중앙의료원은 응급실 간호사의 마약류 의약품 유출과 최근 발생한 간호사의 사망 사건을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의료원내 부실한 의약품 관리 시스템으로 인해 숨진 간호사가 신경근육차단제인 '베쿠로늄'을 취득해 투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 의구심이 든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4일 성명을 내고 "약물투여 간호사 사망사건과 마약류 의약품 밀반출사건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며,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철저하고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할 전문의약품이 어떻게 관리되고 유출되었는지, 개인 차량에 싣고 다니던 마약류 의약품이 어디에 사용되었고 얼마나 회수되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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