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여성노동자, 업무상 재해로 태아 건강 손상시 산재 인정 법개정 추진

[라포르시안] 지난 2009년과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던 중 임신한 간호사 15명 가운데 5명이 자연유산을 했다.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당시 이 일이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에서 큰 논란이 됐고, 제주의료원 노동조합이 나서 병원 측에 간호사의 잇단 유산과 선천성 심장질환 신생아 출산에 대한 역학조사를 요구했다.

2012년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2009년 당시 전국 평균 유산율이 20.3%인데 반해 제주의료원 간호사의 유산율은 40%에 달했다.

이런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4명의 제주의료원 간호사가 2012년 12월 "임신중 과중한 업무강도와 고용 불안정으로 인한 스트레스, 임신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품 취급 등으로 태아의 건강손상을 일으켰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비 지급 신청을 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 본인이 부상을 입거나 질병이나 장해, 사망에 이른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는 점을 근거로 아이는 산재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며 요양비 지급 신청을 거부했다. 4명의 간호사는 2013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재청구했지만 또다시 거부당했다.

결국 이들은 2014년 2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12월 "임신 중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므로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은 산재보험법상 임신한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봐야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제주의료원 간호사 유산 사태에 대한 역학조사를 통해 임신 초기 3교대 근무, 의료원 경영문제로 인한 임금 미지급과 고용불안 등의 스트레스, 임산부에게 유해한 약품 분진에 노출된 점 등을 이유로 간호사들의 자연유산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보고서도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2심에서 판결이 뒤집어졌다. 2016년 5월 서울고법 행정11부는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산재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 본인에 한정된다"며 "출산으로 어머니와 아이가 분리되는 이상 선천적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으로 업무상 재해도 아이에 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출산 이후에는 산재급여 수급권이 원고인 어머니가 아니라 자녀에게 있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선천성 심장기형에 대해서 산재급여를 인정받으려면 당사자인 아이들의 이름으로 요양비 지급을 청구하라는 것이다.

법원의 이같은 판결을 놓고 산재보험제도의 도입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법논리에 빠져 형식적인 해석을 했다는 비난이 잇따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미숙아를 출산하거나 선천성 장애 및 질병을 가진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불합리한 산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런 가운데 임신 중인 노동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가 태아에게 영향을 끼친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하도록 관련법 개정이 추진된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임신 중인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가 태아에게 영향을 끼친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법에 규정하고 그에 따른 요양·장해·간병급여와 장의비를 받을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산재보험급여 수급권자를 임신 중인 근로자로 명확히 해 법적 혼란을 없앴다.

신창현 의원은 "현행 산배법은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미숙아를 출산하거나 선천성 장애 및 질병을 가진 자녀를 출산하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여성근로자의 근로환경이 임신과 출산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저출산 문제에 직면해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선천성이상아 출산 등으로 인한 여성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태아의 선천적 질병도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법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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