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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의 '의료계획 부재'가 초래한 수많은 문제문제 터지면 땜질식 처방 남발로 의료시스템 왜곡 심화..."의료보장정책에 부합하는 의료계획 수립 절실"
2005년 6월 15일 서울 정부중앙청사 회의실에서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 모습. 이해찬 총리 옆으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었던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김재정 전 의사협회 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라포르시안] 지난 2000년 1월 제정돼 같은 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보건의료기본법'은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 가능한 의료체계 수립을 위해 국가가 해야할 의무를 규정해 놓았다. 특히 정부에게 보건의료발전계획의 수립·시행 의무를 부과했다.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장 협의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건의료발전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한다.

보건의료발전계획에는 ▲보건의료 발전의 기본 목표 및 그 추진 방향 ▲주요 보건의료사업계획 및 그 추진 방법 ▲보건의료자원의 조달 및 관리 방안 ▲지역별 병상 총량의 관리에 관한 시책 ▲보건의료의 제공 및 이용체계 등 보건의료의 효율화에 관한 시책 ▲중앙행정기관 간의 보건의료 관련 업무의 종합·조정 ▲노인·장애인 등 보건의료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사업계획 등을 포함토록 하고 있다.

보건의료기본법 시행 17년째를 맞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 2010년 이후부터는 아예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의료계획이 부재한 상태에서 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이나 의료자원 수급, 의료공급시스템 등에 내재한 문제가 곪아 터진 후에야 사후약방문 식의 단편적인 정책을 남발해 왔다. <관련 기사: [편집국에서] 보건의료기본법은 어겨도 괜찮은가?…복지부에 묻는다>

종합적인 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 없이 각종 정책이 추진되다 보니 지방의 분만이나 응급의료 시스템 붕괴, 환자의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현상, 병상의 과잉공급과 의료자원의 지역 간 수급불균형 문제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건강보험제도와 이에 다른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면서도 의료공급은 시장에 맡기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체 의료공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병원은 각각의 경영적 판단에 따라 급성기 병상을 확대하는 전략을 펴왔다. 특히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지난 2000년대 이후부터 경쟁적인 병상확충을 추진하면서 의료자원과 환자의 수도권 쏠림현상을 가속화 했다.

여기에 저수가 기조가 계속되면서 개별 의료기관은 박리다매식 환자진료와 비급여로 생존을 모색하는 경영전략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고,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이 환자유치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각 의료영역별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땜질식 처방을 남발해 왔다. 

이처럼 보건의료체계를 포괄하는 종합계획이 수립·집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영역별로 단편적인 각종 의료정책이 집행된 탓에 지금과 같은 의료체계 왜곡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의료계획 수립이 절실하다.

이규식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4월호에 게재한 '의료계획의 수립과 쟁점'이란 글을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글에서 "2000년에 보건의료기본법을 제정하고, 5년 단위로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했다"며 "문제는 의료계획을 수립하도록 법령은 구비했으나 왜 계획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리를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되어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시장형 의료체계와 유사한 상태가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의료정책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의료보장정책에 부합하는 의료계획이 왜 필요한지 논리를 정립하고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의료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획의 부재로 인해 의료시설의 과잉 공급과 과도한 의료이용, 적정 의료인력 확보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의료계획이 없으니 과도한 의료이용으로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의료이용률이 외래에서는 세계1위, 입원에서는 세계 2위로 높게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 의료보장제도를 운영하는 이상 정부나 보험자가 의료계획을 통해 필요도를 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공급계획을 마련하고, 의료이용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획이 부재한 탓에 의료시설의 과잉 공급을 초래해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의료임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배분을 수요 접근으로 함에 따라 공급도 시장에 맡기는 방법을 택했다. 낮은 수가에도 불구하고 비급여, 선택진료, 상급병실제도와 같은 건강보험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서비스가 존재해 높은 의료이용률을 맞출 수 있는 의료공급이 가능했다"며 "인구는 고령화되고 질병은 만성병 중심이 되어 병원을 찾아도 완치가 어려운 상황인데 의료계획이 없다 보니 병상공급량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아지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병상이 가장 많은 일본은 지역의료계획을 통해 병상을 꾸준히 감소시키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는 2~3년 이내에 세계에서 급성기 병상 수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 같은 과다한 병상 증설을 멈추지 않는 한 병상 수의 과잉이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의료계획의 부재는 보건의료기관이 적정 의료인력을 확보하기 힘든 시스템을 고착화 하고 있다. 의사 공급은 의과대학 입원 정원으로 통제되고 있는 반면 병상 증설은 시장에 맡겨 자유롭게 이뤄지면서 정책간 부조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합적인 의료계획을 수립하지 않음으로써 적정한 의료 질 확보가 어려운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적정한 의료 질 확보를 위해서는 의료수가, 의료기술의 발전 그리고 개별 의료기관의 명성 등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영적인 판단과 적정한 질 확보를 위한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며 "그런데 우리나라 의료의 질적 수준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의료 질의 유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평가 기능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획 부재로 의료체계의 장기발전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고령화사회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의료정책 방향 설정도 제대로 안 되고 정책의 투명성도 결여돼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7년 후인 2025년이 되면 고령화율이 20%나 되는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획이 없다 보니 의료체계가 장기적으로 발전해야 할 방향 설정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병원 중심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또한 보험수가의 상대가치가 문제가 있고 급여구조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도 아무도 개혁을 시도하지 못한 것은 의료계획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의료계획 수립시 ▲건강보험의료의 이념 설정 ▲의료체계의 분명한 목표 설정 ▲미래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서비스의 제공 방향 설정 ▲공중보건정책의 목표와 방향 정립 ▲의료의 장·단기 필요량 계획하고 이에 부합하는 운영계획 수립 ▲의료이용을 최적화하기 위한 의료이용체계의 방향 설정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체계를 위해 1차 의료를 강화하는 전략 ▲건강보험급여 보상체계 등 적정 보상을 전제한 발전 방향 제시 ▲의료의 질을 적정하게 관리하는 방안 ▲각종 부문 계획과 연계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불편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의뢰체계, 진료권 설정 등을 포함해 소비자들이 적절한 시점에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연계가 가능한 의료이용체계의 발전 방향을 정립하는 일이 의료계획에 반영되어야 한다"며 "불필요한 입원을 최소화하고 입원의료 이용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이 의료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의료체계가 미래의 발전 방향에 따라 원활하게 개편될 수 있도록 이에 부합되는 수가가 책정돼 적정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며 "급성기 병상의 감소 및 사회적 입원을 줄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만성질환자의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과감하게 수가를 낮추어 병원이 장기 입원을 줄이도록 유도해 병상수를 줄일 수 있는 계획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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