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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만나다] “인민군이었던 아버지 개인사, 어떤 의미인줄 몰랐죠”안은억(한국로슈진단 대표이사)

한국로슈진단 안은억 대표이사는 겉으로 보기엔 굴곡 없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 40대에 글로벌 기업의 한국법인 대표이사로서, 외국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인재다. 겉보기에는 유쾌하고 구김살이 없다. 하지만 나름 사연 많은 삶이었다.

그는 1978년 페스탈로치 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스위스 유학길에 올랐다. 온전히 자의는 아니었다. 그의 부친은 북한 인민군 탈영병 출신이었다. 6.25가 끝나고 인민군 경력이 발각되면서 옥살이를 했다. 출감 후 가정을 꾸렸지만 인민군 출신이란 꼬리표를 뗄 수는 없었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돌봄을 받지 못한 그는 여덟 살 어린 나이에 경기도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보육원에서 지내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1940년대부터 전쟁고아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스위스 페스탈로치 재단의 장학생으로 유학 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가 고등학생 무렵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작년 1월 한국로슈진단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처음으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개인사를 가감 없이 털어놨다. 아버지에 관해서도. 그런데 인터뷰 기사가 보도된 이후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고 한다. '인민군 출신의 아들이 글로벌 기업의 CEO가 됐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그는 몰랐던 것이다. 한국에서 '북한 인민군' 출신이란  개인사가 갖는 터질듯한 긴장감을.

"그 인터뷰 기사가 나간 이후 난리가 났어요. 물론 집에서 아내한테 핀잔도 받았죠. 저는 몰랐어요. 아버지의 그 경력이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줄은"그처럼 스위스 페스탈로치 재단의 장학생으로 유학을 간 한국인은 50여 명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장학생들 중에는 과거의 경력을 숨기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전쟁고아 교육 프로그램의 수혜를 입었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선입견 때문이다.

"언젠가 페스탈로치 재단의 장학생으로 저보다 먼저 유학을 간 선배를 만났 적이 있었죠. 하지만 저를 보더니 외면하더라고요. 그 때 깨달았죠. 그 경력이 한국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오랜 외국 생활 탓에 그의 사고는 자유분방하고 솔직하다. 경영학 박사 학위를 딴 이유를 묻자 “연애에 실패하고 오기가 발동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안 대표는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이 가훈입니다. 정말로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우리가 공짜라고 생각하는 건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합니다. 건강보험에 있어서도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 결코 공짜는 아니죠.”

어떤 면에서 그는 동서양의 사고방식과 가치 체계를 모두 끌어안고 있는 복합적인 사고관을  지녔다. 그런 자신을 뿌리와 줄기는 동양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잎과 꽃은 서양의 문화를 만개하는 나무에 빗대 표현했다.

“저는 뿌리와 줄기는 동양적인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잎과 꽃은 서양적인 사고체계를 지닌 나무와 같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스위스로 유학을 갔지만 한국에서의 가치체계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왔습니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맞춤의료”

그는 2001년 싱가포르에서 로슈 그룹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이래 헬스케어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외국 기업에서 마케팅과 세일즈 관련 경험을 쌓았다. 한국로슈진단에는 지난 2009년 부임한 후 진단검사, 분자진단, 생명과학 사업부의 본부장을 수행했다.

한국로슈진단이 수행하고 있는 분자진단 분야는 맞춤치료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질병을 분자 수준까지 파헤치고 이해함으로써 하나의 질병에 대해 환자별로 유전자 구성의 차이에 따라 치료제에 대한 반응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파악한다. 전통적으로 단일 질환으로 간주되던 환자군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진단 기술과 표적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바로 '맞춤치료'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로슈그룹은 연구개발에 있어서 진단과 제약 부문간 협력으로 특정 질병에 대한 진단기술과 표적 치료제를 동시에 개발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6년부터 진단과 제약 부문에서 다양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200가지 이상의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다.

어떤 환자가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 지 정확히 선별하는 진단검사 기술은 결국 환자 개인과 사회의 비용 부담을 감소시킬 것이란 점에서 의학 분야의 중요한 이슈다.

맞춤치료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방암 표적치료제인 ‘허셉틴’을 꼽는다. 허셉틴은 허투(HER2)라는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약물인데 원발성 유방암 환자의 25~30%에서만 이 단백질이 과발현 된다. 따라서 이 단백질의 발현량을 진단해 과발현이 있는 환자에게만 허셉틴을 사용해야 한다. 허셉틴은 HER2라는 유전인자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해 치료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방암 환자의 HER2 양성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단이 잘못될 경우 HER2 표적 항암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기회를 놓치고 암을 키울 수 있고, 반대로 받지 않아도 될 치료를 받아 건강을 해치거나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슈진단이 개발한 ‘SISH Technology(Silver In Situ Hybridization, 은제자리부합법)’는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 처방을 위해 적절한 환자군을 선별할 수 있게 함으로써 ‘맞춤의료(Personalized Healthcare)’의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한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부인을 둔 친구를 보면서 맞춤치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단순히 기대수명이 높아졌다고 해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맞춤치료란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그는 헬스케어 전문기업 경영자로서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경영윤리를 ‘수익 창출’이라고 말한다. 법을 준수하면서 깨끗하고 공정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의료환경의 발전과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진단검사 기술의 발전이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불필요한 의료비 부담을 덜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일반적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 중 절반 정도만 기대에 상응하는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 효과가 적거나 일부에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 20~75%의 환자는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단검사 기술의 발전은 환자 개개인별로 맞춤치료를 가능하도록 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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