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2013년 2월, 한 편의 보고서가 영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Mid Staffordshire NHS Foundation Trust Public Inquiry 2013'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프란시스 보고서'로도 불리는 이 보고서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 중부의 스태포드 병원에서 최대 1,200여명의 환자가 부실한 진료와 의료환경 탓에 목숨을 잃은 사건을 공개조사한 후 정리한 방대한 기록이다. 프란시스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스태포드 병원의 부실한 의료환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부 환자는 배설물로 뒤범벅이 된 침상에서 지냈고, 또 먹을 물을 공급받지 못해 꽃병 속의 물을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진으로부터 정상적인 돌봄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거의 학대 수준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이런 의료환경 속에서 최소 400명에서 최대 1,200명의 환자가 '불필요한 죽음'을 맞았다.

영국은 스태포드 병원 사건처럼 사회적으로 민감하고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사안에 대해 정부가 저명인사를 위원으로 위촉해 광범위하게 조사를 벌이는 공개조사(Public Inquiry) 제도를 운영한다. 스태포드 병원 사건에 대한 공개조사는 프란시스 로버트 변호사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 진행했다. 조사위원회는 2010년 7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스태포드 병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었다. 총 139회의 청문회를 통해 164명의 증인으로부터 진술을 들었고, 100만 페이지가 넘는 관련 자료가 공개됐다. 또한 이 기간동안 7차례의 공개 세미나가 열렸다. 2012년 2월까지 현장방문 조사도 이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3년 2월 영국 의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 조사위원회가 공개한 보고서는 요약본만 125페이지 분량이었다. 모두 3편으로 구성된 보고서 본문의 총 분량은 총 1,794페이지였다.  이를 통해 각 분야별로 총 290개 항목의 제도개선 권고안을 제시했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정부 인터넷사이트를 공개해 놓았다.<'프란시스 보고서' 바로 가기> 이 보고서가 나온 이후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는 영국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국민건강서비스(NHS)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약속했다.

작년 12월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잇따라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며, 보건당국 차원에서 역학조사도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다만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스태포드 병원 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병원의 부실한 감염관리를 비롯해 의료인력의 부족, 건강보험 수가제도의 문제 등 한국의료가 직면하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대목동병원은 유가족들에게 아이들의 사망 책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병원 차원에서 감염관리를 비롯한 환자 안전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개선 방안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대내외에 공표하겠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신생아중환자실의 감염관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제도개선책을 마련했다. 또한 지난달부터 '의료관련감염 종합대책 마련 민·관합동 TF'을 구성하고 논의를 시작했다.

유족들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도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다. 대한소아과학회와 소아감염학회, 신생아학회, 주산의학회 등은 "제2, 제3의 유사한 불행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소아와 신생아 중환자의 감염관리를 포함한 더 안전한 진료 환경 구축을 위한 인력과 설비 등의 과감한 자원 투입과 법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신생아 4명의 집단 사망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따라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신생아 사망사건이 주사제 일회 사용, 주사제 준비 및 투여 과정의 무균적 술기, 손위생과 환경 관리, 이를 위한 충분한 인력과 장비 확보, 격리실 확충, 중환자실의 과밀화 해소 등 여러 단계에서 의료관련감염을 예방하는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런데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뭔가 미덥지 못하다. 복지부 차원에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대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걱정이 든다. 섣부른 기우일지 몰라도 언제고 다시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것이란 우려가 앞선다.경찰 조사를 결과로 일부 의료진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신생아중환자실의 수가와 인력기준을 강화하는 정도의 제도개선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병원도 여론의 비난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골몰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스태포드 병원 사건에 대한 '프란시스 보고서'처럼 대대적인 공개조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한국의 의료환경에 내재돼 있던 의료관련감염 관리 시스템의 취약한 부분이 한꺼번에 노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료계는 이 사건이 의료환경의 구조적 문제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단편적으로 신생아중환자실에 국한해 감염관리 대책을 수립하는 건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에 역부족일 게 분명하다. 정부와 국회, 전문가, 피해자 등이 다함께 참여하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집단사망사건 사례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찾자는 제안에 눈길이 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유가족이 주장하는 철저한 진상 규명이나 의료계가 생각하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의료시스템에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으며, 이런한 오류가 어떻게 작용해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집단 사망을 초래했는지 연결고리를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되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이 사건과 관계된 모든 조직과 사람의 책임을 명명백백하게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이 사건과 관련해 스태퍼드셔 주민들에게 사과하면서 "용기를 내 과거의 실패를 이야기함으로써 미래의 다른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여러 의료이용 단계별로 어떤 결함이 생겼고, 4명의 신생아가 집단으로 사망할 때까지 어떻게 의료시스템의 결함을 단 하나도 걸러낼 수 없었는지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의료전문가와 환자,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경험한 의료서비스 공급과 이용 경험의 문제, 의료정책 실패 사례에 관한 증언도 다 기록해 남겨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해서 세밀하고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 시민사회와 의료계가 함께 나서 먼저 철저한 진상 규명과 그를 위한 방안을 제안하고, 정부를 향해 강력히 요구해 추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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