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 대한의학회 부회장, 전문의 정의 확립·제도개선 필요성 강조

[라포르시안] 전문의 제도 시행 70년을 맞아 시대에 맞게끔 전문의에 대한 정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지태 대한의학회 부회장(사진, 고려대의대 소아청소년과학)은 대한의학회가 발행하는 e뉴스레터 1월호에 기고한 '전문의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기'라는 글을 통해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어딴 방식의 의료전달체계를 만들 것인지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전체 의사 중 90% 이상이 전문의다. 전문의가 많은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냐는 항변도 있으나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붕괴했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면서 "어떤 방식의 의료전달체계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합의된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일반의 수요가 얼마인지, 전문의 적정 숫자가 얼마인지 논의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식 GP 제도와 미국식 어텐딩 제도가 뒤섞인 혼돈 상태에서 1차, 2차, 3차 기관이 서로 비난해 봐야 정부와 정치권의 논리에 의료계는 놀아날 뿐"이라고 했다. 

세부전문의 신설 요구가 잇따르고 있는 데 대해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정 부회장은 "기초의학 전문의, 임상약리 전문의, 노인 전문의, 공공의료 전문의 등 세부전문의를 신설해달라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일차의료 전문의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면서 "도대체 전문의가 무엇을 하는 의사인지 정의도 확실치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연구해서 발표하면 되지 않느냐는 소리도 있는데,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게 아니다"며 "복지부와 병원협회, 의학회 등에서 이런저런 많은 연구를 시행하고 발표했지만, 문제점만 지적되었지 개선노력은 미진했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전문의제도를 지탱하는 기반이 저임금에 고강도 노동을 강요받는 전공의 수련시스템에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정 부회장은 "우리나라 전문의 제도는 저수가·저급여·저부담이라는 3저를 지탱해주는 '저임금, 고효율, 고강도 노동'을 강요받는 전공의 제도가 근저에 있어서 가능한 시스템"이라며 "원가의 80%에도 못 미치는 수가를 정해놓고, 나머지는 알아서 챙기라는 무책임한 정책에서 병원이 필요한 건 저임금의 노동자 전공의가 필요했던 것이고, 전문의에게 수익성에 쫓긴 경영 논리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이런 의료환경에서 병원의 윤리경영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봤다.

정 부회장은 "건강보험 수가가 정부의 물가정책의 하나로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개발하지 못하면 병원경영이 곤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의료계의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 사회가 근거가 있는 의료보다는 특별 조제된 링거를 맞아야 피로가 회복되고, 화면발 잘 받는다고 믿는 정치 지도자와 스타가 공존하는 형편이니 누가 무엇을 비판하겠느냐"며 "힘을 합쳐 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더는 우리의 미래를 남이 강요한 제도에 맡길 수만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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