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13년간 시행하다 2014년 슬그머니 종료...제왕절개분만율, 평가 전보다 더 높아져
고령산모 증가·포괄수가제 등 영향 ..."평가 대상 병원 업무·비용부담 등 허공에 날려"

[라포르시안] 우리나라의 제왕절개분만율이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2000년대 초반보다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2001년 제왕절개분만율 적정화를 명분으로 2013년까지 13년 간 해마다 제왕절개분만 평가를 실시한 것이 사실상 헛발질이었다는 게 여실히 입증됐다.

그 기간동안 잘못된 정책 설계로 평가 대상 의료기관이 들인 수고와 시간, 비용부담이 모두 헛수고가 됐고, 심평원이 평가를 위해 투입한 행정업무와 비용도 모두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2016년도 제왕절개분만율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에 2016년 총 제왕절개분만율은 42.3%로 집계됐다. 이는 심평원이 제왕절개분만 평가를 시작한 2001년의 40.5%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제왕절개분만율은 2000년대 중반 36% 수준으로 낮았졌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2014년 38.8%에서 2015년 40.2%, 2016년 42.3%를 기록했다. 특히 초산의 제왕절개분만율은 2016년 기준 45.4%를 기록했다.

제왕절개분만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령산모 증가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모의 평균 출산연령은 2004년 29.98세에서 2016년에는 32.40세로 늘었고, 35세 이상 고령 산모 비율은 2004년 9.4%에서 2015년에는 23.9%로 증가했다. 산모의 고령화에 따라 전체적인 분만 리스크가 커지다보니 의사는 물론 산모 입장에서도 자연분만보다 제왕절개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2년 7월부터 시행한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 강제적용에 제왕절개수술이 포함되면서 이런 경향을 더 부추겼다.

기존에는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이나 유도분만을 하다가 산모의 상태를 고려해 제왕절개로 전환하더라도 별도 비용을 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서 자연분만이나 유도분만을 하다가 제왕절개로 전환할 경우 제왕절개 수술비용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위험도가 있는 산모는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권유하는 쪽으로 분위기기 바뀌었다.

실제로 포괄수가제 강제적용이 시행된 2012년 이후부터 제왕절개분만율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심평원의 모니터링 자료를 보면 제왕절개분만율은 2011년까지 36% 수준을 유지했으나 2012년부터 높아지기 시작해 2013년 37.6%, 2014년 38.8%, 2015년 40.2% 등으로 확대됐다.

자연분만을 하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제왕절개를 하지 않았다고 의사에게 과실을 묻는 경향도 제왕절개 분만율을 높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작년 7월에는 분만 도중 발생한 태아 사망을 이유로 산부인과의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물어 유죄를 선고하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자연분만을 더욱 꺼리게 만들었다.  <관련 기사: ‘오노병원 산부인과 의사 체포 사건’ 떠올리게 한 법원의 판결>

의료행위 과정에서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에 따른 의료사고에도 의사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가 2013년부터 시행되면서 산부인과의 자연분만 기피는 더 심해졌다.  <관련 기사: [편집국에서] 분만 한건당 ‘1161원’의 자긍심 강탈당하는 산부인과 의사들>

이런 상황이 겹치면서 심평원은 2014년에 제왕절개분만 적정화를 명분으로 추진한 평가를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제왕절개분만 평가 대상인 병원들이 들인 시간과 비용부담은 물론 심평원의 행정업무와 그에 따른 비용이 모두 헛수고가 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제왕절개분만 평가를 도입할 때 의료계가 강력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정책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산부인과학회와 산부인과의사회는 "제왕절개 분만율을 공개하고 그에 따라 의료기관을 나누면 국민들에게 '제왕절개율이 높은 병원은 나쁜병원'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며 "게다가 자연분만 수가는 낮게 책정돼 있고, 정상분만시 사고가 나면 제왕절개를 안했다는 책임을 물어 배상책임을 지우는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평가"라고 반발했다.

결국 제왕절개분만 평가가 실패한 정책으로 끝났음에도 심평원이나 보건복지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고 슬그머니 평가 종료를 선언하고 발을 뺀 것이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고령산모의 증가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볼 때 충분히 예견할 수 있던 상황이었음에도 심평원은 그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심지어 제왕절개분만 평가 결과를 근거로 진료비 가감지급 사업까지 실시해 놓고 느닷없이 포괄수가제에 제왕절개수술을 포함하면서 행위량이 증가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보건당국의 정책설계가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됐다는 걸 방증한다"고 꼬집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017년 4월 29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자궁내 태아사망을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8월 구금형을 선고한 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전국 산부인과 의사 긴급 궐기대회'를 열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017년 4월 29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자궁내 태아사망을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8월 구금형을 선고한 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전국 산부인과 의사 긴급 궐기대회'를 열었다.

멈추지 않는 분만 인프라 붕괴  

한편 이런 정책 경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산부인과의 분만 포기를 가속화 했다.

심평원의 ‘2016년도 제왕절개분만율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 수는 602개소로, 10년 전인 2006년의 1,119개소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감소했다. <관련 기사: 복지부만 빼고 다 안다…분만 인프라 붕괴를 멈추기엔 너무 늦었다>

낮은 수가와 분만실 운영에 따른 경영상의 부담, 분만에 따른 의료사고 부담, 불가항력적 분만 의료사고에도 의사 배상책임 전가 등의 정책이 겹치면서 산부인과의 분만 포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작년 4월 말 열린 '전국 산부인과 의사 긴급궐기대회'에서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분만 중에 산모에게 출혈이 발생하거나 태아에게 이상이 있을 것으로 예견될 때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으면' 하고 바랐다. 무엇보다 사고 이후에 발생할 법적 다툼에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제 명에 못 살겠다' 싶어 분만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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