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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삶의 질이 있듯 죽음에도 질이 있다

[라포르시안] "사랑해"

죽음을 앞둔 69세의 노인은 자신만큼 늙은 아내에게 생애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전하고 죽음을 맞았다. 2011년 개봉한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노트'는 '존엄한 죽음'(웰다잉, Well-dying)에 관한 기록이다. 영업맨으로 40년을 근무하다 퇴직한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던 스나다 도모아키는 건강검진에서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도 전혀 예상치 않는 죽음의 시간 앞에 놓인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바로 '엔딩노트'였다.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 준비란 게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믿어보기’, ‘한 번도 찍어보지 않았던 야당에 표 한 번 주기’, ‘소홀했던 가족과 행복한 여행',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같은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며 낯설고 불편하지만 죽음을 향한 시간을 채워갔다. 시간이 갈수록 화면 속 그의 얼굴은 점점 여위어갔지만 표정은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엔딩 노트'의 한 장면.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에도 질이 있다. 엔딩노트를 적으며 삶을 정리한 스나다 도모아키씨가 맞은 죽음의 질은 어땠을까. 예기지 않게 갑작스레 죽음을 맞거나 혹은 병상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링거줄과 각종 도관이 삽입된 상태에서 고통스런 호흡을 짜내며 맞는 죽음의 질은 또 어떨까.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한국인의 '죽음의 질'은 나쁜 편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2010년 국가별 생애말기 서비스를 비교 분석한 '죽음의 질 지표(quality of death index)'를 개발·측정했다. 측정 결과 OECD 30개 회원국 중 한국의 죽음의 질 지표는 터키, 멕시코에 이어 28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생애말기 케어의 이용가능성과 비용, 질 측면에서 순위가 상당히 낮았다. 죽음과 관련된 생애말기의 돌봄 서비스 질이 열악하다는 의미다. 암환자의 경우 암으로 인한 전체 진료비의 약 1/3가량을 임종 1개월 전에 지출한다는 조사 결과처럼 생애말기에 병원에서 상당히 많은 의료이용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죽음의 질은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지난 2009년 대법원의 '김 할머니' 판결을 계기로 죽음의 질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고,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1년 12월 대통령직속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한 제도화 문제를 논의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존엄사 허용 논의가 본격화했다. 이후 수년에 걸친 논의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 등의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동시에 무의미한 연명의료 대신 환자의 사망전 통증완화와 삶의 질 향상, 가족의 정서적·사회적·경제적 부담 완화, 그리고 부적절한 의료 이용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과 제도 도입을 모색했다.

오랜 시간 사회적인 논의를 거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고, 내달 4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 실행 방안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남겨놓을 수 있게끔 했다. 작년 10월 16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실시한 연명의료 시범사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 실제로 연명의료중단 등의 결정을 이행한 사례도 54건에 달했다.

언론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관심의 방향이 사뭇 우려된다. 연명의료 중단을 몇 명의 환자가 이행했는지 숫자를 세는 데 골몰하는 듯 보인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입법한 취지가 마치 '죽음의 선택'에 맞춰져 있는 듯 착각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본질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에 있다고 본다. 죽임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생의 마지막 과정을 지지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와 지지체계를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때문에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좀 더 내밀한 쪽으로 향해야 한다. 무엇보다 '죽음의 의료화'에 대한 인식 개선이 요구된다. 중환자실에서 가족과도 차단된 채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는 과정은 죽음의 의료화를 넘어 비인간적이다. 병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제공받는 도중 죽음을 맞는 것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죽음의 탈의료화'로의 전환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사회환경 구축이 필요하다. 당장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부터 확충해야 한다. 또한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죽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비현실적 기준을 보완해야 한다. 입법 취지와 달리 연명의료 중단을 둘러싼 의료현장의 혼란만 더 커질 수 있다는 일선 의료현장의 우려가 높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이 우리 사회의 '죽음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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