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의료 적정인력 갖추기 힘든 구조적 문제 개선해야..."인력에 투자 가능하게 바꿔야"

[라포르시안] 중증외상센터가 충분한 전문인력과 시설, 장비를 갖추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하게끔 하려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권역외상센터를 대권역별로 통폐합하고 중증 외상환자 이송시스템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가장 중요한 전문 의료진을 충분히 확보하고, 제대로 된 외상 및 응급의료 전달체계 구축을 위해서 대권역화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소방 전문가, 외상의료진, 의료소비자, 유관학회 등이 참여하는 중앙외상위원회를 구성해 외상의료와 관련한 주요 결정과 문제점을 도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1일 오후 2시 의료정책연구소·대한외상학회·대한중환자의학회 주관으로 '대한민국 의료, 구조적 모순을 진단한다-중증외상센터와 중환자실 실태를 중심으로' 토론회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개최했다. 

토론회 주제발표자로 나선 박찬용 대한외상학회 총무이사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볼 때 중증외상센터는 대권역에 하나씩 있는데 맞는데 지역이기주의로 전국에 17개로 쪼개졌다. 서울에만도 4개를 만든다고 한다"면서 "부산권역외상센터와 같이 대권역별로 중증외상센터를 두고 제대로 이송해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총무이사가 권역외상센터 모델로 제시한 부산권역외상센터는 지난 2015년 1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부산지역은 물론 경남 권역까지 포함하는 명실상부한 부산·경남 권역외상센터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권역외상센터 중 유일하게 독립된 건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수술실과 중환자실, 입원실도 따로 갖추고 있다. 특히 외상전문의 20명을 비롯해 간호사 등 250명의 전문 의료인력을 확보했다.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전담전문의와 숙련된 간호인력을 제대로 확보한 외상센터가 거의 없는 실정에서 좋은 사례라는 것이다. 

박 총무이사는 "대부분 응급의료센터에서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소수의 인력이 과중한 업무를 떠맡는다. 그나마 있는 인력도 나가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라면서 "좋은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중증외상센터를 치료해 가정과 사회로 되돌려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제와 관련해 토론회 좌장을 맡은 이용민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중증외상센터나 중환자실이 제대로 가동하려면 4개의 전문의료팀이 있어야 한다"며 "2개 팀은 환자 발생에 대비하고 2개 팀은 휴식을 취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논평했다.  

또다른 발표자로 나선 서지영 대한중환자의학회 부회장은 중환자실도 결국 '사람(전문 의료인력)'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 부회장은 "어떤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사망률이 다른 현실이다. 심지어는 같은 지역에 살아도 어느 병원에 가느냐에 따라 환자의 운명이 바뀐다"면서 "생존율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사람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서 부회장은 "특히 중환자를 제대로 보는 전담전문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인력이 있으면 중환자실 치료성적이 향상된다"며 "실제 미국의 통계를 보면 전담전문의가 관리하는 중환자실과 그렇지 않은 중환자실의 사망률 차이가 30%나 된다"고 전했다. 

서 부회장은 "간호사도 중요하다. 처음 간호대를 졸업하고 사명감에 중환자실 배치를 요구하는데 곧 다른 곳으로 전출을 요구한다.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면서 "이는 전담전문의가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나라 중환자실의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4년에 실시한 응급의료기관 적정성평가 결과를 보면, 중환자실에 전담전문의를 두고 있는 곳은 265곳 중 32.8%인 87곳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담전문의 1인이 담당하는 병상이 상급종합병원은 평균 29.5병상, 종합병원은 36.9병상이나 된다. 

병상 수 대비 간호사 수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간호등급 1등급을 받은 곳은 서울과 경기지역 10개, 부산 2개에 불과하고 나머지 지역은 1등급이 없었다. 

서 부회장은 "전담전문의가 담당하는 환자 수는 보통 15~16명이 적정한 수준"이라며 "또 하나의 문제는 곧 은퇴를 앞둔 외과의사와 영상의학과 의사를 전담전문의로 내세워서 카운트 한 경우도 많다. 지역별 사망률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이밖에도 임상약사, 호흡치료사, 재활전문가 등이 같이 고민하고 치료에 참여하는 모델이 좋은데 우리 현실에서는 꿈도 못 꾼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이제는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최병민 대한신생아학회 운영위원(고려대 안산병원장)은 "신생아중환자실도 2008년 신생아집중치료센터 지원사업으로 인프라가 구축되고 지역화가 잘 되어 있지만 질적 향상을 이뤄야 하는 과제가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등한시하는 안전사고와 감염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생아중환자실도 인력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운영위원은 "신생아중환자실에서도 전문인력이 중요한데,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력 부족 문제가 더욱 심화됐다"면서 "90여개 신생아중환자실 가운데 20병상 미만 소규모가 절반가량 되는데, 대부분 전담전문의가 1명에 불과하다. 간호 인력도 2~3년 근무한 후에는 너무 힘들다며 병원을 떠난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정부 지원이 있지만 10병상당 연 8,000만원이다. 이 가운데 인건비로 쓸 수 있는 비용이 4,000만원인데, 간호사 1명 인건비에 불과하다"며 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해명 의정부성모병원 외과 교수는 "정부 지원금과 지자체 예산, 병원 돈 300억원을 들여 권역외상센터를 지었는데 어떻게 운영할지 막막하다"면서 "의료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인력이 문제다. 한 명 모시면 한 명 나가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전 교수는 "지금은 사명감이라도 갖고 온다지만 10년 후에는 더 문제다. 미래가 안 보인다"면서 전문인력 절벽 현상을 우려했다. 

이국종 교수가 있는 아주대병원 외과가 전공의를 확보하지 못한 것처럼 전공의들이 지원을 꺼리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하기 때문이다. 

김한준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중증외상센터를 국가가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는 "외상센터에 대해 수가를 개선한다 지원을 늘린다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게 이상적"이라며 "지금과 같은 보험제도 아래서 민간병원이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외상전달체계 구축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이사는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도 외상환자가 오는데 진단은 내릴 수 있지만 치료를 담보하지는 못한다"며 "서울시에서 구축한 중증환자이송서비스가 매우 잘 되어 있다. 외상에도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제안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 대표는 "7년전 지적된 문제들이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거듭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정부는 지금까지 항암제 등 보이는 쪽에만 건강보험 재정을 투자했는데, 앞으로는 보이지 않는 쪽에도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건세 건국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금이 외상과 중환자 의료의 질을 높일 좋은 기회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자꾸 건보수가를 갖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지금까지 희생하고 열정을 바친 분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는 일이다. 일례로 흉부외과의 경우 200% 가산을 줬는데 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아마 다섯 배를 올려줘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응급의료와 중환자 의료도 치매와 같이 국가책임제를 주장하고 정치적으로 높은 수준의 아젠다로 접근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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