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 "정부와 협의해 최종 승인 여부 결정"...시민사회 "의료적폐 청산 차원서 불허해야"

[라포르시안] 제주특별자치도 내에 47병상 규모 병원 설립을 놓고 벌써 몇 년 째 난리다. 중국 자본이 투자해 만드는 국내 첫 외국 영리병원이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업계획서 승인을 받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제주도는 최종 설립 허가 승인을 결정하지 못했다.

중국 녹지그룹이 한국법인을 통해 설립을 추진하는 녹지국제병원은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의 진료과를 둔 47병상 규모의 작은 병원이다. 작년 하반기에 준공된 녹지국제병원 건물도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에 불과하다.

제주도가 지난해 11~12월 사이 4차례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녹지국제병원 설립 승인 여부를 심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관련 기사: [단독] 제주 녹지국제병원, 내국인 진료금지 '외국인 전용병원' 허가 가능성>

라포르시안 취재 결과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는 승인 여부 결론을 내는 대신 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두 가지 최종 의견을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게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원들이 제시한 두 가지 의견은 ▲녹지국제병원을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외국인 전용병원'으로 개설 승인하되 이를 담보할 수 있는 확실한 규제장치를 마련 ▲외국인영리병원 개설 승인 반대이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의 개설 허가 심의가 종료됐지만 원희룡 지사는 최종 개원 허가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외국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반대여론이 거센데다가 최근 녹지국제병원 개설에 국내 의료법인의 우회투자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최종 승인 여부 결정의 부담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싼얼병원보다 더 수상한 녹지국제병원>

원희룡 지사는 최근 제주도인터넷기자협회와 가진 신년대담에서 "대한민국 전체의 의료정책은 청와대와 복지부가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허가 해주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 복지부가 감독해야 하기 때문에 제주도가 청와대-복지부와 절차를 놓고 머리 맞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불허할 경우 설립사업에 투자한 비용과 인건비 등에 대한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행정소송 등의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종 결정의 책임을 청와대와 복지부로 떠넘기는 모양새를 취했다.

원희룡 지사의 이런 태도는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해 사뭇 대비가 된다. 앞서 2015년 4월 16일 열린 제주도의회 도정질문 답변에서 원희룡 지사는 "제주특별법 요건에 적법한 병원을 외국병원이라는 이유로 못하게 한다면, 헬스가 없는 헬스케어타운을 진행할 것이냐는 근본적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며 "복지부에서 판단 결과가 오면 그에 따라서 행정적인 절차를 진행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서를 승인한 이후에는 제주도가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최종 승인을 결정하겠다고 강조해 놓고 이제와 청와대 및 복지부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어쨌든 녹지국제병원이 박근혜 정부 때 의료산업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외국 영리병원 개설 허가에 따른 부작용과 국내 의료체계에 미칠 영향을 심도있게 검토하지 못한 채 추진됐다는 점에서 개설 승인은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박근혜 정부 때 추진한 보건의료 분야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제주 영리병원 허용이 적극 추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녹지국제병원 개설 승인을 불허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의료산업화와 보건의료 분야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경제자유구역내 외국 영리병원 설립 요건을 완화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보건복지부가 무리하게 제주 외국영리병원 설립 성과를 내려고 서두르다가 중국 부실기업이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승인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특히 녹지국제병원 설립 추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지가 적극 반영됐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 적힌 제주 영리병원 관련 VIP 지시사항 메모. 이미지 출처: 시사IN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 적힌 제주 영리병원 관련 VIP 지시사항 메모. 이미지 출처: 시사IN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적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속에 녹지국제병원 관련 사항도 기재돼 있다.

2015년 5월 25일자 안 수석의 VIP 지시사항 메모 중에는 ‘제주도 외국인 영리법인(또는 병원), 국내자본 이동’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보다 닷새 전인 같은해 5월 19일에는 녹지국제병원 설립 주체인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의 법적 지위가 관련법상 규정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제주도가 복지부에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 승인 요청을 자진철회한 바 있다.

제주도는 2015년 6월 16일자로 복지부에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 승인을 재요청했고, 복지부는 같은 해 12월 사업계획서 승인을 결정했다.

이런 과정을 살펴볼 때 당시 복지부의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 승인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시민단체는 박근혜 정부 적폐청산 차원에서 제주 영리병원 사업계획서 승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달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는 영리병원을 반대한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지금이 그 공약을 실행할 가장 중요한 때"라며 "부패한 전 정권하에 법을 어겨가며 강행된 영리병원이 이제 중앙부처의 승인을 넘어 제주 도지사의 허가만을 앞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내 첫 영리병원이 될 상황에 놓여 있는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승인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무상의료운동본부,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및 제주도민운동본부, 한국노총,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는 오늘(9일) 오후 2시부터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제주 국제녹지병원을 불허해 박근혜 의료적폐 청산에 나설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