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의료계 반발하자 '의정협의체' 구성해 협상...시민사회 "국민이 참여하는 건강보험 거버넌스 확립해야"

[라포르시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의사와 정부의 협상대상이 아니다", "건강보험 대책은 공급자가 아닌 가입자인 시민과 노동자와 논의해야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문재인 케어') 논의를 위한 의정협의체가 구성됐다.

이를 두고 국민을 위해 '문재인 케어'를 추진한다면서 정작 국민은 뺀 채 정부가 의료공급자와 협상을 한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시민사회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문재인 케어'의 성공적 이행 방안을 논의할 사회적 대화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앞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10일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에서 '전국의사 궐기대회'를 열고 정부를 상대로 ▲급여 정상화 ▲비급여의 급여화와 예비급여 원점 재검토 ▲한의사 의과 의료기기 사용 불가 ▲소신 진료를 위한 심사평가체계 및 건보공단 개혁 등 4개 대정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의협 비대위의 요구에 복지부는 곧바로 "의료계와 조속히 만나 진지하게 대화와 협의를 하겠다"면서 대화창구를 마련했다.

실제로 복지부와 의협 비대위는 지난 지난달 27일 회동을 갖고 양 측이 참여하는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비대위가 제시한 대정부 요구사항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재인 케어' 논의를 위한 의정협의체 구성과 관련해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건강보험 가입자인 노동자, 시민의 의견수렴 절차는 뺀 채 의료공급자의 요구사항만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는 근본 목적이 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인데, 정작 그에 관한 논의의 장에는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 의견수렴 과정 없이 정부와 의료공급자 사이에서만 관련 논의가 이뤄진다면 보장성 강화 정책이 후퇴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 시민이 참여해 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와 참여연대,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실련, 국민건강보험공단노동조합,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와 시민이 참여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문재인 케어는 수년째 정체되고 있는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면적인 비급여의 급여화를 추진하는 내용이며, 이는 국민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의미있는 논의의 시작이었다"며 "그러나 문재인 케어는 국민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경감하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있으며, 보장성 강화 정책을 제대로 추진해 시민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건강권 보장을 간절하게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2018년 예산 심사 과정에서 건강보험 국고지원이 삭감되어 향후 문재인 케어를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재정 대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는 의사 집단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자 의협, 병협 등 일부 의료공급자 단체와의 협상을 통하여 사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가입자인 시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건강보험 거버넌스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집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보장성 강화 논의마저 정부와 의사 집단 사이에서만 이뤄진다면 정책이 후퇴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건강보험제도의 거버넌스 개선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의사와 정부의 협상대상으로 전락시키지 말 것을 요구한다"며 "정부는 하루 빨리 건강보험의 재정립을 위해 건강보험 가입자인 노동자,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하며,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와 결정 구조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보다 앞서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지난달 8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의 성공적인 이행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만들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양 노조는 "보장성강화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데 시민사회와 국민은 없고,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과 갈등만이 부각되고 있어 문재인 케어를 성공적으로 실현시키고 보완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와 사회적 대화는 실종됐다"며 "문재인 케어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 제도적 보완을 바탕으로 공론화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기 보다는 ‘사회주의 의료제도’라거나 ‘건강보험료 폭탄을 양산’시킬 것이란 원색적이고 왜곡된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의 주장처럼 문재인 케어를 '원점부터 재논의' 할 게 아니라 제도적인 보완 대책을 모색하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의료계와 정부, 시민사회를 향해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관련 기사:  문재인 정부, 의료개혁 위한 민주적 거버넌스 구축해야>

양 노조는 "의료계의 책임있는 논의태도를 바탕으로 정부도 ‘병의정 협의체’ 등과의 협상에 치중할 게 아니라 문재인 케어의 사회적 수용력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대화와 공론의 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잘 구상해 줄 것을 요청한다"며 "시민사회 역시 현실적인 대안과 담론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요구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의료계와 전문가, 시민사회,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노조 등이 직접 참여해 '문재인 케어' 실행을 위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심의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양 노조는 "시민사회 역시 현실적인 대안과 담론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며 "의료계와 전문가, 시민사회,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노조 등이 직접 참여해 문재인 케어 실행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심의기구를 두고 사회적 대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12월 1일 오후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가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사 복지부 회의실에서 '문재인 케어' 이행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회동을 했다. 회동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사진 왼쪽)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사진 오른쪽). 사진 제공: 보건복지부
지난 12월 1일 오후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가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사 복지부 회의실에서 '문재인 케어' 이행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회동을 했다. 회동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사진 왼쪽)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사진 오른쪽). 사진 제공: 보건복지부

의정협의체선 적정 보험료 부담·지불제도 개편 등 논의 힘들어  

무엇보다 '문재인 케어' 실행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관련 기사: [편집국에서] '문재인 케어'와 적정 보험료 부담을 공론화하자>

의료계는 보장성 강화의 전제 조건으로 안정적인 건강보험 재원 확보와 '수가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안정적인 재원 마련과 수가 정상화를 위해서는 적정 보험료 부담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논의도 없이 의정협의체에서 수가 정상화와 비급여의 급여화 원점 재검토를 논의할 경우 결국 보험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장성 강화 방안이 후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더라도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최소화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건강보험 국고지원 예산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20조원 정도 쌓인 건강보험 재정 누적흑자를 활용해 보장성 강화를 추진하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관련 기사: 건강보험 국고지원 늘려도 모자랄 판에...2200억 깎기로 합의한 여야>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 하면서 장기적으로 건강보험료 수입 축소에 따른 재정 위기 우려가 높아지는 데 적정 보험료 부담은 정부와 정치권, 의료공급자 어디에서도 선뜻 꺼내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와 의료계만 참여하는 의정협의체에서 이 문제를 절대 논의할 수 없다. 결국은 시민사회와 가입자인 국민이 참여하는 보다 큰 논의의 장에서 이 문제를 함께 다루고 공론화 해야 한다는 데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적정 보험료 부담과 함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재정절감 대책도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행위별수가제 방식의 진료비 지불제도를 유지한 채 보장성 강화가 시행되면 의료이용량 증가에 따른 보험재정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케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복지부와 의료계만 참여하는 협상테이블에선 논의하기 어렵고, 그 결과를 놓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도 쉽지 않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필요한 재원방안 및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등은 협상하면서 보완할 사안으로, 문재인케어 자체를 반대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며 "문재인 케어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의료계, 국민, 시민사회단체, 정부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을 구성해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의 거듭된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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