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특성상 더 많은 인력.시설 필요로 하지만 수가보전 안돼...환자 볼수록 손해 커져 병원들 운영 기피
이대목동병원 사건으로 불신 커지고 규제 강화되면 기피 더 심화될 수도

한 대학병원의 신생아 집중치료실 내부 모습..
한 대학병원의 신생아 집중치료실 내부 모습..

[라포르시안] 이대목동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사망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 원인을 둘러싼 갖가지 추측이 나오면서 혼란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오늘(19일) 오후 2시부터 전체회의를 열고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4명 사망 사건 관련해 보건복지부로부터 현안보고를 받는다.

여야 정치권도 이번 사안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18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이대목동병원에서 일어난 4명의 신생아가 연이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에 대한 보건당국의 철저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한다"며 "당 차원에서 이대목동병원의 초동대응 실패와 아직까지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진실규명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 원내대변인은 "정부와 보건당국은 세균 감염, 병원과실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철저히 조사해 정확한 사망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야당에서는 보건당국의 관리감독 소홀 등을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방침이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보건복지위원회 소속)는 지난 18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 현재 유족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며 "이번 사망사건 관련해 보건당국의 부실대응 여부와 환자안전법상 환자안전 전담요원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을 꼼꼼히 짚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여론을 의식한 섣부른 판단과 보도로 인해 환자와 의료진간 불신을 초래하고, 자칫 또다른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지난 18일 성명을 내고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로 원인에 대한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서 향후 이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언론에서도 사실확인을 통한 정확한 보도가 이뤄져야 하며, 질병관리본부 등 관계기관에서도 함께 엄중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결과에 따라서 조치를 취하고 대응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당부했다.

무엇보다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과 보도로 인해 갈등을 부추기고, 그로 인해 근본적인 해결책인 아닌 제 2, 3의 피해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자칫 이번 일로 신생아를 돌보는 병원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경우 가뜩이나 취약한 고위험 신생아 치료인프라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청년층의 취업난과 주택난 등으로 결혼이나 출산 나이가 계속 늦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고령산모를 포함한 고위험 산모와 고위험 신생아가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재태기간 37주 미만의 미숙아와 2.5kg 미만 저체중아 출산율이 높아지면서 고위험 신생아를 돌볼 신생아 집중치료시설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시설과 인력을 갖춘 신생아 중환자실을 갖춘 병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북한군 귀순병사가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받은 일을 계기로 중증외상환자 치료 분야의 열악한 운영현황이 드러난 바 있다. 고위험 신생아 치료 분야도 권역외상센터 못지않게 열악하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은 성인 중환자실보다 더 많은 인력과 시설과 장비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생아 중환자실에 적용되는 의료수가는 성인 중환자실과 별차이가 없다. <관련 기사: 신생아중환자실은 '개미지옥'…빠지면 적자 늪 헤매>

신생아나 소아를 진료할 때는 신체·정신적 특성상 성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간단한 정맥주사부터 심도자술같은 심장검사 등 모든 시술의 난이도가 성인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중증외상환자 수술도 그렇지만 건강보험 의료수가를 책정하면서 환자나 질환별로 특수한 상황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았다. 신생아 치료에 적용되는 의료수가는 성인 환자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신생아 집중치료시설을 운영할수록 병원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권역외상센터가 중증외상환자를 더 많이 치료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병원들이 고위험 신생아 치료시설 운영을 기피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8년부터 '신생아집중치료센터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원사업을 통해 신생아중환자실 운영병상이 2011년 1,299병상에서 2015년 1,716병상으로 417병상이 늘었고, 인공호흡기와 저체온치료 장비 도입 대수 크게 늘었다.

고위험 신생아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는 확충했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미숙아 치료 중 발생하는 합병증 치료나 선천성 기형의 치료를 위해서는 외과계열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역별로 외과계열의 지원이 가능한 병원 비율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기사: 선천성심장병 태아 낙태로 내모는 저수가…‘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선천성 심기형을 비롯한 흉부외과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2011년 36%에서 31%로 감소했다. 복부의 응급 수술인 괴사성장염이나 자발성 장 천공에 대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전체 68%로 2011년과 동일했지만 서울 지역의 경우 71%에서 64%로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선천성 소화기계 기형을 비롯한 소아외과 수술이 가능한 병원도 2011년 64%에서 60%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으로 자칫 병원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환자안전 강화를 이유로 신생아 치료 분야의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이 추진될 경우 병원들이 신생아 집중치료실 운영을 더욱 기피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신생아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 요청과 함께 이대목동병원 폐쇄를 요청하는 청원글까지 올려졌다.  

병원의사협의회는 "국내 많은 대학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환아의 부모님들도 행여나 우리 아이도 이렇게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고 있다"며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이 여전히 현장에서 환아들에게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하는 의료진을 위축시키는 언행을 부디 삼가해 주고, 여러 기관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불안한 상황이 해결돼 의료진이 치료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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