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대만 총액계약제 경험과 교훈' 토론회 마련..."의료행위 늘었지만 수입 줄어"
"총액계약제, 공급자에게 전략적으로 이득 될 수도 있어" 찬성의견도 나와

[라포르시안] 의료계를 중심으로 '문재인 케어' 도입과 연계해 새로운 진료비 관리기전이 적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할 경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의료이용 급증으로 보험재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앞서부터 진료비 지불제도를 행위별 수가제에서 대만처럼 총액계약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대만은 90년대 후반부터 치과부문을 시작해 2001년부터 의원급외래, 이듬해 병원급 입원 진료로 총액계약제 적용을 확대했다.

그러나 대만에서도 총액계약제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난 15일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원실에서는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대만 총액계약제의 경험과 교훈'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 리엔 리우(사진) 대만의사회 사무부총장은 '대만 총액계약제의 경험과 총액계약제가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총액계약제에 대한 대만 의사들의 만족도는 10%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총액계약제 도입을 지연시킬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이 사무부총장은 "(한국에 강연하러 간다고 했더니)10명 중 9명이 '한국 동료들에게 제발 총액계약제에 동의하지 말라'고 부탁하더라"고 전했다.  

앞서 대만은 지난 2001년부터 의료비용 증가를 억제할 목적으로 총액계약제를 도입했다. <관련 기사: 대만처럼 총액계약제 도입 검토?...당연지정제도 바꿔야>

그러나 4년 뒤인 2005년 대만 의사들은 대만건강보험국이 시행하는 총액계약제는 '불공정한 의료급여 배분'이라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사무부총장은 "대만 정부는 총액계약제에 대한 의사들의 만족도가 30.2%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느끼는 만족도는 10%도 안 된다. 정부의 통계는 너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만 의사들의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총액계약제 아래 지급되는 급여비가 원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무부총장은 "원가가 100이라면 수가가 그보다 높은 경우는 없다. 즉 1달러어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85센트만큼의 비용만 보상받으니 의사들의 임금이 하락한 것"이라며 "내 연봉도 20년간 변함이 없다. 총액계약제가 좋은 제도라면 왜 의사들의 연봉에 변화가 없겠느냐. 뭔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수가가 낮은 이유는 원가의 90% 선에서 불평등한 수가 협상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대만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공급자 유형별로 총액 협상이 진행되는데, 불평등한 협상 구조라고 했다. 

이 사무부총장은 "대만에서는 수가 협상에 참여하는 소비자 수가 공급자보다 더 많다. 이른바 블루칼라들도 많이 참여하는데, 건강보험에 대한 지식이 없어 무조건 진료비만 줄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도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의료비 지출 증가를 꺼린다. 의료비 부담에 대한 국민 불만이 생기면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게다가 진료 내역에 대한 보험 당국의 감시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누가 진료비를 심사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만의 전민건강보험에 대한 국민 만족도는 85.8%로 매우 높다. 

이 사무부총장은 "국민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고 정부는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지만,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더 많이 제공하면서도 수입은 줄고 있는 게 대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이 등장하면 그만큼 원가보상률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이 사무부총장은 "최근 가격이 비싼 C형간염 치료제가 많이 개발됐는데 총액계약제에 포함됐다. 다빈치 로봇수술과 같은 신의료기술도 마찬가지"라며 "총량이 고정돼 있어서 의사가 받는 수가는 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당장 총액계약제 도입 계획 없어...지불제도 개편은 고민해봐야"

의료계는 총액계약제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이용민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이 사무부총장의 얘기를 들으며 총액계약제를 받아들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행위별수가제도보다 공급자를 규제하고 제약하기 쉬운 제도라고 생각한다"면서 "총액계약제가 의료계에 큰 재앙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도 총액계약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김병관 병협 상임이사는 "총액계약제에 대한 병협의 입장은 의협과 마찬가지로 강력 반대"라며 "이 제도는 일부 국가에서 의료비를 통제해 재정 악화를 타개할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자유경제 체제에서 원가 이하의 가격을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의원급 진료비 총액이 줄어들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총액계약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양수 의협 총무이사는 "의약분업 당시만 해도 건강보험 진료비가 10조에 못 미쳤는대 지금은 60조가 넘는다. 짧은 기간에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의원급 진료비는 줄어드는 추세"라며 "게다가 인구도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행위별 수가제가 선은 아니다. 이제는 한 번 총액계약제를 검토해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신의철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신 교수는 "총액계약제를 규제와 강압으로만 보면 얻을 수 있는 다른 부분을 간과할 수 있다"면서 "공급자 입장에서 의료공급체계와 공급자의 역할을 정상화하는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적 추세도 총액에 상한을 두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인두제, 총액계약제 등이 대표적이다"며 "남 얘기하듯 하지 말고 자세히 살펴 취할 부분은 취해야 한다. 공급자에게 전략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능한 모델로 지역의사회가 재정 협상과 운용 및 심사의 주체가 되는 방식을 제시했다. 

신 교수는 "장의 목을 베려면 내 팔 하나는 내줘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예방접종이나 당뇨 같은 질환에서 접근할 수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얻는 게 더 많은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고민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총액계약제 전환이 시기상조라는 태도를 보였다. 

정통령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의협에서는 우리가 총액계약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당장 제도를 도입할 상황도 아니고 계획도 없다"며 "산부인과 등 환자가 줄고 있는 일부 진료과에서 총액을 정해놓고 환자가 줄어들면 단가를 높여달라는 요구도 있다. 이런 요소를 다양하게 검토하겠지만 의료비 통제 수단으로 총액계약제를 검토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지불제도 개편은 고민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과장은 "지금의 극단적 의료공급체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이런 제도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이냐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지불제도 개편을 고민해야 한다. 이에 병원급에 대해 신포괄수가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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