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3천만원 들인 수가개선 연구결과 제대로 활용 안해..."제도 개선 반영했다" 보고

[라포르시안] 북한 귀순병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국내 권역외상센터의 열악한 운영 여건이 드러나면서 제도적으로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번에도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여론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6년 전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면서 국내 중증외상환자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권역외상센터 설립 필요성을 일깨웠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대를 요청하는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글은 9일 만에 23만 명 이상으로부터 동의를 얻었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이 먼저 나서 올해보다 줄어든 내년도 권역외상센터 예산을 더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곧이어 정부도 권역외상센터 시설과 인력지원 확대 및 수가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국종 교수가 어려움을 호소했던 중증외상환자 치료에 따른 합리적인 수가체계 개선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권역외상센터 내 의료행위를 유형별로 분석해 보험급여를 해줄 수 있는 시술과 약품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쪽으로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뒤늦게라도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하니 다행이긴 하지만 선뜻 이해하기 힘든 점도 있다.

복지부는 이미 3년 전인 2014년에 '권역외상센터 중증외상환자 건강보험수가 개선 연구'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당시 연구용역을 맡은 아주대학교 산업협력단(연구책임자 아주대 허윤정 교수)은 2014년 10월 해당 보고서를 복지부에 제출했다.

'권역외상센터의 중증외상환자 수가 개선방안'이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는 국내 운영 중인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원가 분석 등을 통해 효과적인 수가체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온-나라 정책연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온-나라 정책연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보고서는 중증외상환자 진료와 권역외상센터 운영의 문제점으로 ▲전문 인력 절대적으로 부족 ▲중증외상환자 발생 시 비효율적인 헬기 이송체계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제한적인 보험급여기준 ▲중증외상환자들의 건강보험 보장성 취약 ▲중증외상환자의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과 진료비 본인부담 문제 등 크게 5가지를 지적했다.

보고서는 "대다수의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는 권역외상센터의 진료를 보상하는데 매우 어려운 상황이며 개선이 요구된다"며 "현재 건강보험 수가체계에는 외상환자의 특성을 반영한 진료 처치 영역의 수가 기준이 없어 실제 치료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형편이며, 외상환자 수술의 경우 출혈의 억제를 위해 동시에 여러 장기를 수술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주수술 장기의 청구외에 부수술로 분류돼 청구해도 삭감되거나 아예 청구가 불가능한 수술이 다수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중증외상환자 진료에 적극적인 기관일수록 건강보험 급여에서는 적절한 보상을 받기 어려워 의료기관의 적자경영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A 의료기관의 외상환자 수술현황(2013년). 표 출처: '권역외상센터 중증외상환자 건강보험수가 개선 연구' 보고서 중에서
A 의료기관의 외상환자 수술현황(2013년). 표 출처: '권역외상센터 중증외상환자 건강보험수가 개선 연구' 보고서 중에서

이국종 교수가 중증외상환자를 진료할수록 병원에 적자가 커지는 상황을 놓고 "어느새 적자의 원흉이 되어 있었다"고 토로한 게 바로 이런 원인 때문이다.

현행 건강보험 급여기준은 '동일피부 절개 하에 2가지 이상 수술을 동시에 시술한 경우 주된 수술은 소정점수에 의해 산정하고 제2수술부터는 해당 수술의 소정점수의 70%를 산정'토록 규정돼 있다.

중증외상환자가 발생했을 때 동시에 2가지 이상 수술을 할 경우 가장 주된 수술에 대해서만 건강보험 수가를 100% 인정하고, 나머지 수술은 수가의 70%만 인정해 지급한다는 의미다.

이런 급여기준 탓에 동시에 여러 장기를 수술해야 하는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한 후 건강보험 급여비를 청구해도 삭감되기 일쑤라 병원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고서는 "중증외상환자 진료에 적극적인 기관일수록 건강보험 급여에서는 적절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여건임을 감안할 때 의료기관의 적자경영에 대한 우려를 키워 중증외상환자들의 적극적 진료를 의료기관 차원에서 기피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권역외상센터의 중증외상환자 관련 수가 신설과 기존 수가 인상 및 가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권역외상센터의 수가 개선을 위해 고려할 신설 목으로는 전문의 진찰료 및 중증외상 진찰료, 응급실내 중증외상환자 급성기 치료구역 입원료, 중증외상환자 전용 중환자병상 입원료 등이 있다.

수가 인상 및 가산 고려 항목으로는 응급수술 당직비를, 그리고 중증외상환자처럼 복합 수술이 필요한 다발성 외상환자에 대해 부수술 인정범위 확대, 중증외상환자 수술 수가 기준 별도 신설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권역외상센터 수가 개선과 동시에 중증외상환자 중 상당수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층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중증외상 분야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증외상환자의 취약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결과 오히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대상자를 다수 포함한 중증외상환자와 가족들의 의료비 본인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게끔 본인부담 인하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민간의료가 전체 의료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료인프라 기반 아래서 중증외상이라는 분야는 수가에 의존하고 있는 민간의료기관에서 자발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공공의료의 중대한 영역"이라며 "이에 대한 공공의 지속적인 정책 지원을 통해 장기적으로 권역외상센터가 선진국 이상의 수준으로 정립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일관된 정책견인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14년 10월 복지부에 제출됐다. 복지부는 연구결과 활용보고서를 통해 "권역외상센터 운영 활성화를 위한 중증외상환자 수가 체계 마련 등의 제도 개선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랬을까.

복지부는 보고서가 제출된 이듬해인 2015년 4월 말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응급의료 수가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복지부가 마련한 개선 방안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에 ‘응급전용 중환자실’을 두고 1/3을 예비병상으로 두도록 하되 '응급전용 중환자실 관리료'를 산정해 비용보전 ▲당직수술팀이 가동되는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에서 신속하게 중증응급환자를 수술·시술하면 내원후 24시간 이내 수술·시술 등에 수가의 50% 가산 ▲권역외상센터에 입원한 중증외상환자의 본인부담률을 20%에서 5%로 경감 등이 포함됐다.

보고서가 제시한 수가 개선 방안 중 일부를 받아들여 제도개선에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 수가개선으로는 권역외상센터의 적자를 줄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2016년 6월 13일 열린 아주대병원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 개소식. 사진 맨 왼쪽의 흰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이 이국종 교수이다. 사진 제공: 경기도청
2016년 6월 13일 열린 아주대병원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 개소식. 사진 맨 왼쪽의 흰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이 이국종 교수이다. 사진 제공: 경기도청

이국종 교수는 지금도 여전히 병원에서 적자를 키우는 원흉이 되고 있다며 자조하고 있다.

이 교수는 아주대학교 교수회 소식지인 <탁류청론> 최근호에 게재한 글을 통해 "교수별 진료실적에 기반을 둔 ABC 원가분석이 더해져 나는 연간 10억 원의 적자를 만드는 원흉이 됐다. 매출 총액대비 1~2 퍼센트의 수익규모만을 가지고 간신히 유지되는 사립대학 병원에서 나는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불러오는 조직원이었다"고 탄식했다.

그는 "보건의료정책은 여태껏 헛돌았고 앞으로도 계속 헛돌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난 그런 의료계 중에서도 가장 코너에 몰려있는 느낌이 들어 계속 답답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관련 기사: 가운데 서야 할 사람은 정치인·공무원이 아니라 이국종 교수>

최근 귀순병사 사건으로 권역외상센터의 열악한 운영환경이 드러나자 복지부는 마치 새로운 문제를 접한 것처럼 상황을 파악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찾겠다는 눈치다.  

이미 3년 전 연구용역으로 작성한 '권역외상센터의 중증외상환자 수가 개선방안' 보고서에 지금 다시 드러난 중증외상환자 의료체계 문제점이 잘 파악돼 있으니 꼼꼼히 들여다보고 제도 개선에 제대로 반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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