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그의 한숨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벌써 5년 전 일인데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권역외상센터 지원 대상기관에서 그가 근무하는 병원이 탈락했다. 나는 잔인하게도 선정 결과에 대한 심경을 물었다. 그는 "오후에 수술 끝내고 뒤늦게 선정 결과를 들었다. 할 말이 없다"고 특유의 담담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이어 들려온 "지쳤다"는 말. 성대를 울리며 나온다기 보단 그냥 한숨을 내쉬며 쥐어짜듯 내뱉은 말이었다. 그 짧은 통화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이국종 교수는 현재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다. 그는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국내 중증외상환자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속적으로 국가 차원의 중증외상센터 설립 지원 필요성을 일깨웠다. 그 덕분에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촉구하는 여론이 조성됐고,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여 2012년 5월 ‘이국종 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국종법은 2016년까지 약 2,000억원의 응급의료기금을 투입해 전국에 17개소의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관련 기사: 아주대병원 ‘골든타임’ 악몽 오버랩…이국종 교수 “지쳤다…”>

그런데 정작 그가 근무하는 아주대병원은 2012년 처음으로 실시한 보건복지부의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사업 대상기관 공모에서 탈락했다. 이국종 교수의 충격은 컸었다. 아주대병원은 전국 의료기관 중 최초로 중증외상특성화센터를 운영하던 곳이었기에 선정 결과를 놓고 논란이 컸다. 이듬해 다시 지원해 아주대병원이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사업 대상기관에 선정됐지만 그 기간 동안 이국종 교수의 마음고생은 상당히 컸던 것으로 안다. 어쨌든 외상외과 의사로서 헌신적인 그의 노력 덕분에 전국에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권역외상센터가 들어섰고, 수많은 중증외상환자들이 골든타임 안에 수술대 위에 올라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이미지 출처: 지난 2012년 11월 방영된 <MBC 스페셜> ‘골든타임은 있다-외상센터, 한 달간의 기록’ 중 한 장면 갈무리. 이국종 교수가 환자 보호자에게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지난 2012년 11월 방영된 <MBC 스페셜> ‘골든타임은 있다-외상센터, 한 달간의 기록’ 중 한 장면 갈무리. 이국종 교수가 환자 보호자에게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국종 교수의 활약은 여기까지였으면 좋았을지 모른다. 그가 아니더라도 전국의 권역외상센터에서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할 외상외과 전문의 인력이 양성되고, 또한 권역외상센터가 중증외상환자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어야 했다. 더는 그가 중증외상환자를 골든타임 안에 치료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 구축을 호소하는 일이 없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전국의 권역외상센터는 설립 이후 중증외상 환자를 적극적으로 진료할수록 병원의 적자가 커지는 어려움에 빠졌다. 중증외상환자는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아야 할 때가 많고 중환자실 입원기간도 상대적으로 더 길다. 그 뿐인가. 상처의 특성상 다수의 처치, 검사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의료행위에 대한 의료수가 보상체계는 미흡하다. 심지어 환자를 치료하고 건강보험 급여비를 청구하면 삭감되기 일쑤다. 이국종 교수는 환자의 목숨 앞에서 진료비 삭감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였다. <관련 기사: "차가운 진료비 삭감통지서...나는 자꾸 궁지로 내몰렸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의 필수적인 치료를 줄일 수는 없었다. 그것들은 단순히 줄여야 할 항목이 아닌 목숨을 살려낼 수 있는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그들의 기준은 외상외과에 적합하지 않았고 교과서를 복사해서 재심을 청구해도 묵살했다. 난 날아드는 경고를 외면했다. 어쩔 수 없이 모르는 척 치료를 강행하면, 몇 개월 뒤 어김없이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으로부터 차가운 진료비 삭감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이국종 교수가 아주대학교 교수회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탁류청론>에 기고한 글 중에서>

그가 최근 또다시 언론 앞에 섰다. 이번엔 총탄을 맞고 사경을 헤매는 북한군 귀순병사를 살리는 임무를 맡았다. 그 귀순병사는 남쪽으로 넘어온 순간부터 이국종 교수가 수술과 치료를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 총상환자 치료 분야에서 그는 독보적인 의사이기 때문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이자 60만명에 달하는 현역군인이 있는 나라의 군병원에서 총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외과전문의가 없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의료공급체계의 90% 이상을 민간의료 인프라(국가가 공공의료에 투자를 안해서다)에 의존하는 의료시스템 속에서 돈이 되지 않는 외상외과 분야 의사가 배출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관련 기사: [단독] 아주대병원, ‘석해균 선장’ 치료비 2억여원 결국 못 받았다  [단독] "이국종 교수, 석해균 선장 후송 에어앰뷸런스 비용지급 독촉받았었다”>
  
결국 이국종 교수는 폐와 복부 등에 총탄을 5발이나 맞은 귀순병사를 두 차례의 대수술을 통해 살려냈다. 그런 그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선을 넘어온 북한군 귀순 병사의 치료 경과에 대한 언론 브리핑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언론은 이 교수의 입을 빌려 북한군 귀순 병사의 총상으로 훼손된 소장에 들러붙은 수 십마리의 기생충, 위장에서 발견된 소화가 되다 만 옥수수 알갱이, 복강 내 분변을 집요하게 보도했다. 막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남한의 고3 남학생 평균 체격'에 미달한다는 그 귀순 병사의 온몸을 훑었다. 보다 못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환자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언론은 김종대 의원의 글을 빌려 "이국종 교수가 귀순 병사의 상태를 상세하게 공개해 인격테러를 가했다"고 보도했다. '귀순병사 인격테러' 보도가 두 사람을 향해 총탄처럼 정신없이 쏟아졌다. 급기야 이 교수가 공개적으로 깊은 자괴감을 드러냈다.

늘 이런 식이다. 언론은 사실과 다른 보도로 두 사람을 괴롭혔다. 김종대 의원이 귀순 병사에게 인격 테러를 한 가해자로 지목한 건 이국종 교수가 아니었다. 바로 언론이었다.

"귀순한 북한 병사는 북한군 추격조로부터 사격을 당해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부정당했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동안 남쪽에서 치료받는 동안 몸 안의 기생충과 내장의 분변, 위장의 옥수수까지 다 공개되어 또 인격의 테러를 당했습니다. 이제는 관심의 초점이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과 유엔사 교칙수칙으로부터 귀순 병사의 몸으로 옮겨지는 양상입니다. “이런 환자는 처음이다”라는 의사의 말이 나오는 순간, 귀순 병사는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인간의 정상성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언론은 귀순 병사에게 총격을 가하던 북한 추격조와 똑같은 짓을 한 것입니다.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던 한 존엄한 인격체가 어떻게 테러를 당하는지, 그 양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종대 의원 페이스북 글 중에서. 될 수 있으면 김종대 의원 페이스북에서 전문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바로 가기>

꼼꼼히 읽어보자. 김종대 의원은 귀순병사의 몸 상태를 적나라하게 공개한 언론을 향해 '인격테러를 가했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언론은 자신들에게 제기된 비난을 교묘하게 이 교수에게 돌리고 한걸음 뒤로 빠진 채 제삼자인 양 두 사람의 공방을 들춰내고 부추겼다. 관음증에 더해 난독증 환자같은 모습이다. 그 이후 불거진 환자의 진료정보 공개에 대한 의료법 위반 논란은 언론의 난독증에 가까운 왜곡기사로 불거진 것이니 논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정작 언론이 다뤄야 할 문제는 이게 아니다.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이 교수가 언론을 향해 부탁한 게 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서 넘어온 북한 군인이, 이제 대한민국의 청년이 한국에서 살면서 기대하는 삶의 방향은, 삶의 모습은 자기가 어디서든지 일하다가 내지는 위험한 곳에서 위험한 일을 당해서 다쳤을 때 30분 내로 헬기로 오든 그라운드 앰뷸런스로 오든 30분 내에 중증외상센터에서 적절한 치료가 벌어지고 그리고 사선을 넘어서 병원에 도착하고 30분 내로, 아니면 적어도 1시간, 골든아워 내에 환자의 수술적 치료가 이루어지는 나라에 살려고 여기를 넘어왔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저는 그런 방향이 돼야 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주셔야 되는 분들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언론인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1월 22일 이국종 교수 기자회견 발언 중에서>

중증외상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 헤매다 생명을 잃는 일이 없게끔 권역외상센터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만들고, 경영 적자에 대한 걱정없이 중증외상환자 진료에 전념할 수 있게끔 권역외상센터의 의료수가를 개선해야 한다. 외상외과 전문의를 양성하고, 그들이 남다른 사명감과 자기희생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료체계 속에서 본연의 임무와 일상적인 삶을 동시에 영위할 수 있는 그런 의료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더는 '이국종'과 같은 자발적인 희생, 혹은 누군가의 강요당한 희생에 의존하는 의료시스템은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리는 게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다. 이국종 교수는 이번에도, 그리고 과거에도 계속 그 부탁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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