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의료와 사회 책·서평
[신간] 오래전 사라진 나라의 보건의료체계'소련의 건강 보장', '붉은 의료: 소련의 사회화한 건강' 번역본 발간

[라포르시안]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를 국내에 소개하는 책이 처음으로 발간됐다.

'소련의 건강 보장'(신영전, 신나희 옮김, 건강미디어협동조합)과 과 '붉은 의료: 소련의 사회화한 건강'(이미라, 신영전 옮김, 건강미디어협동조합)이란 두 권의 책이다.

'소련의 건강 보장'은 러시아 혁명 직후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당이 주도한 보건의료 분야 개혁 과정을 상세히 수록해 놓았다.

원저는 소련의 의사이자 정치가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세마쉬코'가 집필했다. 세마쉬코는 레닌과 함께 러시아 혁명에 참여했고, 10월 혁명 직후에는 모스크바 시위원회 보건부장이 맡았다가 1918년부터 1930년까지 소련 보건인민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이른바 ‘세마쉬코 모형’으로 알려진 소련 보건의료 체계 모형을 설계하고 운영한 인물이다.

세마쉬코는 이 책에서 '세마쉬코 모델'의 당사자로서 소련의 보건의료 체계 구축의 원칙과 구상을 설명해 놓았다.

책의 내용은 모두 22장으로 짜였으며, 소비에트 의료의 기본 원칙과 구조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건강보장, 집단과 국영 농장의 건강보장, 비러시아 지역과 공화국에 대한 건강보장, 사회보험, 의료인에 대한 훈련, 건강보장에 대한 1차 5개년 계획의 결과와 2차 5개년 계획의 전망 등의 내용을 차례로 담았다.

이 책을 옮긴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는 러시아의 보건의료체계가 직간접적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주목했다. 초기 소련식 보건의료체계가 이룬 성과는 당시로는 획기적이었고, 전세계 사회주의권 국가들에게 ‘소련식 보건의료’를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모델이었다. 

신 교수는 "소련의 보건의료 체계는 단지 한 나라의 보건의료 체계가 아니다. 소련은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였으며, 당시 전체 세계 인구의 20% 가까이에 해당하는 국가가 강력한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며 "자본주의 국가들도 사회주의권의 리더인 소련과 누가 더 국민들의 복리를 증진시킬지에 대해 경쟁하면서, 국민의 복리를 위한 다양한 모색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소련의 방식 역시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개했다.

함께 출간된 '붉은 의료: 소련의 사회화한 건강'은 다른 관점에서 세마쉬코 모델의 성과를 평가한 책이다.

'붉은 의료'는 영국과 미국의 보건의료 전문가가 직접 소련의 보건의료 현장을 답사하고 난 후 이를 서방 세계에 소개하기 위해 쓴 기행문 형식의 보고서이다. 외부 전문가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세마쉬코 모델을 평가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으로 자본주의 사회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 의식도 함께 녹여냈다.

원저자는 20세기 초 영국의 공중보건 학자이자 의사로 잉글랜드 웨일즈 지방정부위원회 전 국장을 지낸 아서 뉴스홈(Arthur Newsholme)과 미국의 공중보건 활동가로 밀뱅크 기념위원회(Milbank Memorial Fund) 사무국장을 지낸 존 아담스 킹스베리(John Adams Kingsbury)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뉴스홈과 킹스베리가 소련을 여행하며 보고 겪은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고, 후반부에는 보건의료 세부 분야를 주제별로 설명해 놓았다.

두 명의 저자는 이 책에서 중앙정부가 정책을 입안하고, 지역정부가 실행을 분담하는 중앙집권적 방식을 소련 의료제도가 광대한 국토에도 불구하고 높은 효율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동력으로 이해했다.  

거주지에서든 일터에서든 어렵지 않게 의사를 만날 수 있을 만큼 의료접근성이 높았고, 일터마다 마련된 탁아소에는 간호사와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보며 위생 교육을 담당했다. 결핵이나 성병 등 특수 관리가 필요한 질병을 앓는 환자는 위해 전담 요양소를 따로 뒀다. 

경증 환자들은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 요양소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았고, 충분한 요양이 필요하면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한 요양소로 전원되기도 했다.

아프지 않더라도 노동자들은 일 년에 2주, 요양소에서 휴가를 지낼 기회를 누렸다. 여성들은 노동의 기회 측면에서 평등이 보장됐고, 임신 기간 동안에는 지역 일차 의사가 건강관리를 하고 분만은 종합병원으로 전원해 이뤄졌다. 분만 후에는 두 달 간의 유급 휴가를 보냈다.

흥미로운 점은 '붉은 의료'를 서방세계에 소개한 이후 두 저자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가 하는 점이다.

영국의 뉴스홈은 유럽 18개국의 의료제도와 함께 소련의 보건의료 체계를 살핀 경험을 보고서로 냈고, 이후 영국의 의료제도가 국민건강서비스(NHS)로 개편되면서 그의 작업은 유효성을 인정받았다.

반면 미국의 킹스베리가 처한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킹스베리는 소련식 의료제도를 미국에 도입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고, 이를 위해 보고서 출판 이전부터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에 나섰다. 마침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 전반에 적용될 사회보장 제도를 구체화하고 있었고, 공공의료보험 현실화 계획도 담당 위원회에서 검토되고 있었다.

그러나 1934년 킹스베리의 보고서가 출판된 이후 러시아 혁명 즈음부터 나타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Red Scare)가 거세졌다. ‘사회화한 의료’라는 정면 승부를 택한 킹스베리는 곧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미국 주류사회로부터 극심한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국가의 개입을 의료인의 자주권 박탈로 판단한 미국의사협회와 서비스의 공공화가 자본주의를 해친다고 주장하는 월가의 저항은 거셌다.

급기야 이듬해인 1935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회보장 제도를 통과시키기 위해 공공의료보험을 협상카드로 이용한 후 용도폐기하는 정치적 선택을 했고, 킹스베리는 14년간 일했던 밀뱅크 기념위원회에서도 해고됐다. 이후 매카시즘(McCarthyism) 광풍 속에서 킹스베리의 보고서와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사회주의자들의 의료'라는 낙인이 찍혔고 더는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 책을 옮긴 이미라 씨는 "85년 전 이들의 시도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며 "1978년의 알마아타 선언이 겨냥했던 모든 사람이 건강할 수 있는 사회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목표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죽지 않아도 될 병으로 죽고 노동으로 말미암아 죽기도 하며,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에 고통받는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