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현(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라포르시안] 파르스름하게 삭발한 그의 모습은 거의 1년에 한 번 꼴로 접할 수 있었다. 위원장 임기를 맡은 기간이 하필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은 자랄 틈이 없었다. 영리병원 도입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이다 의료민영화 추진이다 하는 바람에 6년 내내 투쟁의 고삐를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삭발한 머리에 동여맨 '단결투쟁' 머리띠는 유지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지금 그는 머리숱이 거의 없다. 지난 5월 건강검진을 하던 중 이상 소견을 발견하고, 이후 추가 검사를 통해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암 진단을 받고 이후 6월 초 한 차례 수술과 이어지는 방사선 치료, 6차에 걸친 항암 치료로 그의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지난 10일 고려대 구로병원 병실에서 만난 유 위원장은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새겨진 두건을 쓰고 있었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그가 26년 전 처음 간호사 근무를 시작한 곳이다. 간호사복 대신 환의를 입고 병상 신세를 지고 있지만 그가 자주 하는 말투로 표현하자면 '힘찬 항암 투쟁' 중이다.

- 지난 2012년 1월 보건의료노조 제6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6년여의 임기 동안 수차례 삭발 투쟁을 했다.

= 거의 1년에 한 번꼴이었다. 2012년 이명박 정권 말에는 인천 송도에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한다고 해서 보건복지부 앞에서 삭발하고 농성 투쟁을 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에는 경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을 저지하기 위해서 삭발하고, 2014년에는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을 결의하면서 세 번째 삭발을 했다. 2015년에는 안 할 줄 알았더니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개악저지를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로 또 삭발을 했다. 6년 임기 동안 6번 정도 삭발 투쟁을 한 거 같다.

- 지금 모습도 낯설지가 않다.

= 6차에 걸쳐 항암 치료를 하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삭발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빠지면 빠지는 대로 그냥 놔두자고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숭숭 빠져버렸다. 삭발 할 때와는 느낌이 다르더라.(이 말을 하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 한동안 상심이 컸을 것 같다. 

= 병원에서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글세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막막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던 거 같다. 그동안 노조활동을 하면서 나중에 조금 덜 바쁠 때 해야지 하고 미뤄놨던 일이 많은 데 그걸 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위원장 임기 중이라 남은 임기동안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한 기분이었다. 진단 받고 수술 날짜를 잡고 일주일 동안 집행부 회의를 하고 향후 보건의료노조의 활동 기조를 잡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위원장실을 지난 6년간 정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사무실을 정리했다. 누가 와서 보고 지저분하다고 욕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그냥 그렇게 주변정리를 급하게 했다.

- 치료 경과는 어떤가.

= 지난 5개월 동안 수술받고 방사선 치료 마치고, 항암 치료 6차까지 끝났다. 14일에는 마지막으로 장루복원 수술을 남겨놓고 있다. 때로는 주위 사람들이 환자 같지 않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항암 치료 부작용이 심하지 않은 편이었다. 먹는 것도 잘 먹고, 잘 견뎠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말고는 큰 부작용이 없었다. 그렇게 견딜 수 있었던 건 보건의료노조 현장 조합원부터 주위 동료들까지 많은 격려와 지지를 보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투병하면서 그런 지지와 격려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위원장이니까 아프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도 들었고.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보낸 지지와 격려 메시지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 고대 구로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계속 치료도 하고 있다. 간호사 근무를 시작했던 곳이기도 한데.

= 1990년 고대 구로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근무 때마다 두 명이 50여 명 정도 되는 환자를 돌봤다. 그만큼 업무강도도 셌다. 업무 교대할 때면 인수인계를 위해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전 출근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인계가 끝나고 늦게까지 연장근무를 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나이트 근무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갈 때면 꾸벅꾸벅 졸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친 적도 많았다. 밤근무 때면 12시간 내내 병동 곳곳을 뛰어다녔고, 밥을 못 먹는 게 일쑤였다. 그땐 당연히 그렇게 일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5년간 일하다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우리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는 병원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외국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어떤 환경에서 근무를 하는지 조금씩 비교하면서 우리 병원의 노동환경이 크게 열악하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 1996년부터 고대의료원 노조 위원장을 맡았고, 우리도 법 개정을 통해 노동환경을 바꿀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에는 일하는 근무시간만큼이라도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 병원 노조 위원장을 맡아서 맨 처음 성과는 뭐였나.

= 병원으로부터 8시간의 조합원 유급 교육시간을 인정받은 것이었다. 당시 다른 병원들은 조합원 유급 교육시간으로 연간 8시간을 인정했는데 우리 병원은 4시간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4시간으로는 조합원 교육을 하기 힘들었다. 위원장을 맡으면서 조합원 유급 교육시간을 8시간으로 인정해 달라고 병원 측에 요구했고, 결국 단체협약에 그 내용을 담았다. 그러고 나서 첫 조합원 교육을 하는데 그날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조합원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하루를 온전하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게 너무 감격스러웠다. 

지난 11월 13일 오전 11시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전태일 47주기 추도식 및 제25회 노동상 시상식에서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전태일노동상'을 수상했다. 유지현 위원장은 이날 추도식 현장에 직접 참석해 보건의료노조를 대표해 수상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지난 11월 13일 오전 11시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전태일 47주기 추도식 및 제25회 노동상 시상식에서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전태일노동상'을 수상했다. 유지현 위원장은 이날 추도식 현장에 직접 참석해 보건의료노조를 대표해 수상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 보건의료노조가 전태일재단으로부터 올해 '전태일노동상' 수상 단체로 선정됐다. 어떤 의미인가.

= 내년 2월 27일이면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사회에서 산별노조 운동이 한참 기세를 올리다가 지금은 주춤하는 분위기인데, 산별노조 선봉에서 활동해온 보건의료노조의 20년 역사를 평가받았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전태일재단이 보건의료노조를 수상단체로 선정한 이유를 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산별노조로서 '비정규직 없는 병원 만들기'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고, 의료민영화를 막아내고 의료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도 항상 앞장서 왔다는 점을 꼽았다. 산별노조의 기본정신이 바로 '연대와 평등'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20년간 '연대와 평등' 정신에 부합하는 활동을 해왔다는 걸 평가해 주는 상이면서 앞으로 산별노조 역할을 더 충실히 수행하라는 격려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산별노조 활동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 널리 알려져 노동운동계에서 다시금 산별노조 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기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1998년 산별노조 전환 후 서울본부장,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과 위원장으로 활동을 했기에 이번 수상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다.

- 보건의료노조는 조직 규모나 활동 측면에서 산별노조의 모범으로 꼽힌다.

= 전체 조합원들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2007년 병원노사 산별교섭에서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1.2~1.5%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차별개선에 사용하는 데 합의했다. 이를 통해 당시 비정규직 2,400명을 정규직화했고 비정규직 4,000여명의 처우를 개선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임금 일부를 양보하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이 선뜻 동의해줬기 때문이다. 조합원들도 '산별노조 조합원인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개별 병원마다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뛸 수 있는 데는 한걸음 늦춰주고 걸을 수 있는 데는 더 빨리 뛸 수 있도록 서로 연대하는게 산별노조 정신이다. 이런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틀거리는 산별노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는 임금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함께 일했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게 결국 내 일자리를 지키는 길이라는 데 조합원들이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산별운동이 거둔 성과도 크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도 적지 않다.

- 아직도 완전한 산별교섭으로 가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병원노사 산별교섭장에 국립대와 사립대병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게 가장 큰 과제이다. 다만 사측에서도 보건의료 체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데 있어서 개별병원 노사교섭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올해만 하더라도 일자리위원회를 고리로 보건의료분야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에 대해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 내고, 이를 기초로 노사교섭을 통해 인력확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성과를 냈다.
아쉬운 건 이를 병원 노사간 산별교섭으로 풀었으면 더 빨리, 더 적은 비용으로 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100여개 병원이 동시에 조정신청을 내고 그 안에서 개별병원의 교섭을 통해 일자리 창출 문제를 푸는 소모전을 치뤘다. 지난 2007년처럼 병원 노사 산별교섭을 통해 이런 문제를 푸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걸 재확인 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만간 국립대와 사립대병원 사업장도 산별교섭에 동참할 것으로 생각한다.   

- 최근 들어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하는 신규사업장이 잇따르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많이 되면서 그런 효과가 생긴 것 같다. 특히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보건의료노조가 적극적인  대응을 펼치면서 홈페이지 방문자도 많이 늘었고, 노조 조직화에 대해 문의하는 사례도 크게 증가했다. 동시에 보건의료노조 차원에서 미조직 조직화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효과도 크다고 본다. 

- 위원장 임기 동안 ‘보건의료인력지원 특별법’ 제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아직까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 처음에 보건의료인력특별법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저수가 이야기부터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환자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 병원 노동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자리를 위해서 인력특별법이 꼭 필요하다. 환자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의료인이 불친절하다는 불만을 토로했는데 지금은 적은 인력으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문제인식을 보이고 있다. 좀 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서라면 병원이 적정인력을 확충할 수 있게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곧바로 병원의 만성적인 인력부족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적정 의료인력 확충의 책임이 개별 병원의 경영적인 판단에 맡겨지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환자안전과 노동이 존중받는 병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인력확충 문제에 있어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유지현 위원장을 위해 보내온 응원 메시지. 지난 5개월 간 수없이 많은 조합원들이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를 보내왔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유지현 위원장을 위해 보내온 응원 메시지. 지난 5개월 간 수없이 많은 조합원들이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를 보내왔다. 

- 경남도가 진주의료원을 강제폐업시킨 지 올해로 4년째다. 진주의료원은 열악하다 못해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한국 공공의료의 상징처럼 됐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막기 위해 수개월간 진주에 머물며 아사단식도 불사하며 투쟁을 주도했는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클 거 같다.

- 진주의료원 폐업 저지 투쟁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보건의료노조와 '서부경남 공공병원 설립 도민운동본부'는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성남시립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을 반드시 다시 만드다는 각오로 활동 중이다. 비록 폐업을 막지는 못했지만 진주의료원 폐업 저지 투쟁은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가 안고있는 구조적인 문제와 공공의료의 열악한 현실을 국민들이 생생하게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지켜보면서 막연하게만 여기던 공공의료가 곧 ‘나의 건강권 문제’와 직결된다는 구체적인 인식을 갖게끔 만든 단초가 됐다.

진주의료원 폐업 저지 투쟁을 통해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아졌다. 그 때문에 2014년 의료민영화 저지 운동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개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또한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공공의료가 왜 필요한지 여실히 입증했고, 국민들이 공공의료 확충 중요성을 확실히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 보건의료노조가 1998년 산별노조로 출범한 이래 최초의 연임 위원장이다. 내달이면 임기 6년을 마치는데. 

= 보건의료노조는 중앙과 전국의 각 지부가 서로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다. 그 속에서 병원 현장의 목소리가 중앙으로 전달되면 의료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제도의 변화는 다시 병원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위원장 임기 동안 이슈도 많았고, 그만큼 투쟁도 많았다. 보호자 없는 병원 만들기 운동부터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 해결 운동, 그리고 보건의료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까지 이미 성과를 냈거나 또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훨씬 더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보건의료 인력확충은 지금이 중요한 시기인데 좀 더 구체적인 성과를 못 내고 임기를 마무리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몸이 이렇다 보니 더욱 아쉬운 생각이 든다. 
다행히 지금까지 치료는 잘 됐다고 한다. 조합원들이 보내준 지지와 격려 덕분이다.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치료가 끝나면 얼마간 쉬고 다시 기운을 내 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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