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병원에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라포르시안] ‘폭력’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최근 불거진 성심병원 사례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소속 간호사들은 짧은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선정성을 강조한 춤을 춘다. 이들은 이 같은 의상과 안무, 심지어는 표정까지 윗선으로부터 사실상 '강요'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재단 소속 한 병원의 중견급 간호사 A 씨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규간호사들이 장기자랑의 주된 동원 대상"이라며 "이들은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간호부 관리자급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유혹적인 표정과 제스처가 되는 지' 등을 얘기 듣는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것, 병원에서 빈발하는 전공의와 하급자 폭력도 잊을 만하면 다시 터진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A교수의 전공의 폭행은 무차별적이고 상습적으로 이뤄졌다. 상습적으로 머리를 때려 고막이 파열됐고, 수술기구를 이용해 구타하기도 했다. 정강이를 20차례 폭행하거나, 회식 후 길거리 구타,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는 일 등이 수차례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노골적인 신체 폭력은 폭로라도 할 수 있지만, 교묘한 폭력과 은폐는 관행, 개인 특성, 일탈, 일시적 감정, 내부 문제 등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부터 어렵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3일 성명을 통해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일부 교수진의 상습적인 폭언, 폭력 및 성희롱으로 인해 전공의 2명이 동반 사직했으며, 남은 전공의들은 여전히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명백히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인 교수들의 태도 및 열악한 수련 환경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피해자들에게 더 이상의 가해를 중단하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두 군데도 아니니, 병원에 폭력이 횡행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현장조사까지 했다면 사회적으로도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상황을 개선하려면 원인을 알아야 한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것일까? 스스로 말하길 생명을 다루고 환자를 치료하는, 어떻게 보면 가장 ‘비폭력적’이어야 할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왜 폭력이 끊이지 않는 것인가?

먼저 무엇이 폭력인지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한국 사회가 이해하는 폭력은 아직 좁다. 총이나 칼을 들고나와도 피를 보거나 어디가 부러지지 않으면 폭력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고하다. 이유와 상황도 폭력을 이해하는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폭력에는 으레 “너 잘되라고...” “맞을 짓을 하고 다녀서” “평소에는 착한 사람인데” 등등이 따른다. 전부 오해다.

세계보건기구는 “자신, 타인, 타 집단이나 사회에 대해 상해, 사망, 심리적 위험, 발달 저해, 박탈 등을 초래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물리력이나 권력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로 넓게 정의한다(관련 링크 바로 가기).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규정한 것도 비슷하다. 작업장 폭력은 ”작업 중이나 근무 중인 사람에 대한 폭력적 행위“로 위협(말, 글, 행동)과 신체적 폭행을 모두 포함한다(관련 링크 바로 가기).    

당연히 그렇지 않아야 할 병원이 폭력의 온상이 된 이유를 한두 가지로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어느 조직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적게는 몇 명부터 많게는 수천 명까지 모여서 일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조직에는 온갖 개인과 사회 문제가 응축되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폭력에 너그럽고 폭력을 조장해 온 역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도, 다른 조직과 비교해 병원에는 봉건 잔재가 더 많이 남은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교수나 전문의가 전공의를 폭행하는 행위는 어떤 기준으로도 시대착오적이다. 의사와 다른 직종 간에 극심하게 기울어진 관계도 마찬가지다. 외부 사람은 이런 봉건성만 보고도 병원을 ‘갈라파고스’라 부를 것이 틀림없다(한국 사회에서조차!).

과거보다는 많이 줄었다는 사람이 많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폭력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빈도가 늘었다기보다 더 많이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전공의와 간호사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진전이라면, 이는 사회와 역사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느린 속도지만 근대적 규범이 병원으로 퍼졌고, 제한적이지만 합리성이 판단과 결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노동 시장의 역설적 합리성(예를 들어 조건이 나쁘면 직장을 떠나는 것)이 어느 정도 폭력을 제어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노동운동이 병원 내 권력관계를 ‘민주화’하는 데 기여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느 정도 큰 추세는 되었으니 이제 지켜보면 되는 것일까? 앞으로도 근대적 합리성이 확장되고 ‘탈봉건화’는 진전될 것이나, 새롭게 걱정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폭력’이 일상화될 가능성이다. 우리는 이번 성심병원 사건에서 그 우울한 가능성을 감지한다. 간호사들이 환자와 환자 보호자를 위한 공연에 동원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누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간호사가 투병과 간병에 지친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하는 것이 뭐 어때서? 병원은 공연을 강요하면서 ‘환자 중심(patient-centered)’ 또는 ‘고객 지향(client-oriented)’를 내세웠을지 모른다.

꼭 이 사건이 아니라도 병원은 끊임없이 환자 중심과 고객 지향을 강조하고 직원들의 내면에까지 그 가치를 이식하려던 것이 틀림없다(오늘 한국의 병원이 다 그렇다). ‘영혼’까지 장악하는 프로젝트가 완전히 성공했으면, 그래서 강요와 폭력이라는 언론 스캔들이 아니라 직원들의 보람으로 남았다면?

폭력은 일차적으로는 구조다. 효율성을 금과옥조로 삼는 병원에서 구조적 폭력이 강화되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인력을 감축하고 노동 강도를 높이는 것이 병원 조직, 인간관계, 환자 진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2006년 국제간호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Nurses, ICN)가 발표한 성명서는 “지나친 업무부담, 안전하지 않은 노동조건, 부적절한 지원은 폭력의 한 형태”라고 선언했다(관련 링크 바로 가기).   

구조는 구조적 폭력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그 구조를 반영한)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다. 의료인력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폭력은 상당 부분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조직 구조와 기능, 문화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업무상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쓰거나 부서 이동으로 일에 서툴러서 갈등이 생기고 폭력에 이르는 상황은 드물지 않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바로 가기 ). 종합병원 간호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폭력을 당했지만, 더 심층구조에서 어떤 원인과 경로가 작동했는지도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관련 링크 바로 가기). 

폭력 가해자가 직원(의사/간호사)인 경우, 폭력 행동 유발원인으로 ‘간호사를 동료나 치료자가 아닌 아랫사람으로 인식하여 무시함’이 61.5%로 가장 많았으며 ‘의료진 간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김’(47.4%), ‘치료나 수술 등 행정처리가 지연되었다고 불만을 가짐’(36.7%), ‘간호사가 원인이 아닌 개인적 불만을 간호사에게 화풀이 함’(31.0%) 순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런 사고에 개입된 개인이나 그의 특성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특정한 원리로 작동하는 병원 환경과 조건은 개인과 그 관계,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 효율과 성과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면, 폭언과 폭력조차 조직관리라는 명분으로 쉽게 용인된다. 신자유주의적 폭력의 특징은 각 개인이 그것을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적극 실천한다는 점이다.        
병원 폭력에 대처하는 묵은 방법들은 모두 부분적 해결을 넘지 못한다. 오랜 것과 새로운 것을 가릴 필요 없이 병원 폭력이 구조적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해답도 당연히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우리가 걱정하는 신자유주의적 폭력에는 보건의료체계 전반이 연관되어 있다.

다시 강조한다. 해결 과제라 생각하다면 폭력은 구조다. 의료인의 윤리와 태도, 교육과 처벌은 미봉책일 뿐, 다시 보건의료 시스템을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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