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주장에 깊은 우려 표명..."집단이익과 정치적 계산 따라 의료정책 결정"

[라포르시안] 전국 수련병원의 내과 전공의들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요구를 비판하는 공동의 목소리를 냈다.

내과 전공의 1,442명은 8일자로 공동 서명한 대국민 서신을 통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말기 암 환자들을 현혹해 산삼약침과 같은 고가의 불법의료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당국의 단속은 전무하다"며 "환자들은 수천만 원의 돈을 ‘용하다’ 는 치료에 지불하고 가산을 탕진하는 참혹한 현실을 보면 위기의 시대는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 같다"고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심장이 멎은 환자를 알리는 ‘코드블루(Code blue)’에 가장 먼저 땀 흘리며 달려가는 내과 전공의로서, 합리가 사라지고 국민건강이라는 대의가 소멸된 채 집단의 이익과 정치적 계산에 의해 의료정책이 결정되는 작금의 야만성을 그저 바라만 볼 수 없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자는 한의계와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판례와 여론조사로는 정당성 얻기 어렵다>

이들은 "한의사 는 질병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현대의학과 전혀 다르며, 현대의학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 실습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검사 결과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않았다"며 "(한의계에서)몇 시간, 많아야 과목 몇 개를 수강하는 것 정도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소양을 갖출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지나친 자만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골밀도 측정기와 초음파 진단기기 등을 사용한 한의원을 이용했다가 큰 비용부담만 떠안고 치료시기를 놓친 환자들의 사례를 볼 때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은 국민건강을 위해 용납해선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내과 전공의들은 "욕심에서 기인한 자만은 한의원에서 어린이 대상 불법 성장판 측정 기계사용, 가임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초음파 기계사용 등을 통해 이미 언론에 조명되었으며 불법적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결국에는 고가의 한약 판매로 귀결되는 민낯을 드러낸 바 있다"며 "이러한 행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불법적이고 부정확한 의료기기 사용에 의해 질환이 없는데도 한약이 투여되거나 검사를 받고도 오진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우려했다.

면허체계는 의사와 한의사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안전망이란 점도 강조했다.

한의계가 구당 김남수의 침·뜸 시술 교육에 반발하며 내세운 '무분별한 진료권 확대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거다.

이들은 "생명을 다루는 일은 엄중한 일이기에 면허를 통해 관리하고 있으며, 이것은 밥그릇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닌 사회의 약속이자 일종의 안전망"이라며 "이 안전망에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달려있기에 면허는 소중히 다뤄져야 하며,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침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인 의사들이 침을 놓을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라고 했다.

또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환자들의 상처에 모래를 부비는 일이며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야기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는 행위"라며 "왜곡된 의료시스템으로 상처 입은 의료는 지성과 이성, 합리성을 통해 회복해야 하며, 올바른 정책과 함께 의사는 의사로서, 한의사는 한의사로서, 간호사는 간호사로서 각자의 영역에서 국민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국민, 그리고 사회가 건강해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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