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탈지수 높은 지역 거주자, 건강격차 원인 개인 문제로만 바라봐..."건강불평등 객관적 지표 개발해 전달해야"

이미지 출처: MBN '는 자연인이다' 방송 갈무리.
이미지 출처: MBN '는 자연인이다' 방송 갈무리.

[라포르시안] 건강불평등이 소득과 교육 수준의 격차, 고용 정도, 주거 및 생활환경과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건 더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역의 소득과 교육 수준, 고용 정도, 주거 및 생활환경 등에 따라 '회피가능사망률'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는 차고 넘친다. <관련 기사: 예방 가능했거나 피할 수 있었던 죽음, 사는 곳 따라 큰 차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지표에 있어서 박탈지수가 높은 지역 거주자의 경우 건강불평등을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더 크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런 인식은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사회적 요구를 형성하는 데 장애가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10월호에는 이와 관련된 연구결과를 다룬 '일반인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함의'(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라는 논문이 실렸다.

채수미 부연구위원은 이 연구에서 일반인이 생각하는 건강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분석하기 위해 거주지, 교육수준, 연령과 소득 수준 등을 감안한 15명의 조사 참여자를 선정해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서 사회계층이나 거주 지역에 따른 건강 수준 차이에 동의한 사람들이 과연 건강불평등이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지를 살펴봤다.

"아무래도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정보가 빠르고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많이 듣는 게 있기 때문에 빨리 치료를 하는데…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알고 있다고 해도 병원 가거나 약을 사는 것이 부담스럽거나…주위 사람들도 되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건강한 사람들과 있으면 건강해지고 아픈 사람들과 있으면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거주 지역에 따라 건강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공기나…나는 자연인이다 보세요? 암 말기에 산 속에서도 혼자 살면서 완치 되는 거 보면 공기 좋은 곳에 살면 나아지지 않을까…." <조사 참여자 심층인터뷰 중에서>

"소득 차이 때문에 건강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아요. 본인이 챙기면 챙기고, 못 살아도 내 건강 챙기면 되고…. 돈 있다고 해서 오래 살고 그런다면 돈 있는 사람은 몇백 년 살아야 하는데, 이건희 씨는 돈 없어서 그래요? 여기는(박탈지수가 높은 지역) 지역 특성으로 보면 그래도 일단 공기도 좋고, 사람이 소득 수준은 낮을지언정 생활 만족도가 더 있겠지요. 도시에 가면 소음에 뭐에…. 또 이런 데서 산다는 것은 큰돈 안 들이면서 사는 것이…". <조사 참여자 심층인터뷰 중에서>

인터뷰 분석 결과에서 주목할 대목은 15명 중에서 4명이 '우리 사회에 건강불평등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의문을 갖거나 건강불평등이 없을 것'으로 단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채 연구위원은 "도시 지역 거주자들은 모두가 건강불평등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으며 건강불평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농촌 지역 거주자라는 점"이라며 "또한 농촌 지역 거주자는 건강불평등을 인식하더라도 건강의 사회구조적 요인은 인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심층인터뷰 결과를 2016년 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세 이상 일반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국민 건강불평등 인식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대국민 건강불평등 인식 조사 결과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건강이 상대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했으며, 응답자의 82%는 거주 지역의 특성이 거주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른 건강불평등과 지역에 따른 건강불평등을 모두 인식하는 경우가 70%에 달했다.

반면 심층인터뷰에서는 두 가지 불평등을 모두 인식하는 경우를 찾을 수 없었고, 부분적으로 건강불평등을 인식한 경우라 하더라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처음의 의견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고 수정하는 등 건강불평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확신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채 부연구위원은 "사회계층이나 거주 지역 간 건강불평등을 모두 인식하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의 조사 참여자는 건강에서의 불공정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사회계층과 지역 간 건강 격차에 대해 일관되게 인식하지 않고 있으며, 건강 격차의 원인을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하거나 사회적 요인에서 찾지 못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건강불평등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를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연계해서 바라보는 인식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채 부연구위원은 "인구집단 간 건강 격차가 사회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개인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국가, 사회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선도적 인식을 갖춘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며 "대부분은 건강불평등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갖기도 하고, 개인이 극복하지 못할 건강 문제에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기도 하지만 건강불평등을 국가나 지역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더 큰 문제는 건강불평등을 단호하게 부정하거나 도저히 추측하지 못하는 경우는 박탈지수가 높은 지역 거주자에게서만 나타났다는 점"이라며 "박탈지수가 높은 지역 거주자들 역시 질병 치료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고 거주 지역 내 의료접근성, 근린시설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는 있으나 그러한 상황에 익숙해져 있거나 긴급하게 개선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특성들은 장기간 취약한 상황에 노출됨으로써 적응의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일반인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함의'
표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일반인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함의'

이를 개선하려면 모든 국민이 건강불평등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왜냐하면 건강불평등의 사회구조적 요인을 인식하는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세 부담에도 동의한다는 인식을 보인 반면 건강불평등을 개인의 문제로 인식할 경우 이를 완화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세 부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즉, 국민이 건강불평등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볼 때 건강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고 조세저항을 훨씬 덜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채 부연구위원은 "보건당국이 건강불평등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지속적,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그러자면 타당성 있는 지표를 개발하고 그것을 측정해 낼 수 있어야 한다"며 "또한 축적된 근거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환해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으로 하여금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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