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영국 보건부, 개인정보 유출 우려 등으로 폐지 선언..."우리도 관련 사업 재검토해야"

[라포르시안] 박근혜 정부는 공공데이터 개방에 초점을 둔 '정부3.0'을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이런 정책기조에 따라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보건의료 빅데이터 개방을 위한 다양한 시스템 구축 붐이 일었다.

특히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유한 다양하고 방대한 진료정보 및 의료자원 빅데이터를 공개하려는 기반 작업이 속속 이뤄졌다. 심지어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보유한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민간의 창업 활성화를 위해 제공하는 사업도 추진했다.

작년 9월부터는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 심평원이 공동으로 건강보험 빅데이터의 개방 범위, 이용절차 등 주요 정책 사항이나 효율적인 데이터 공유·연계방안 등을 논의하는 ‘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 협의체’를 출범했다.

여기서 나아가 올해 3월에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 전략을 수립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단'을 민관 합동을 구성했다.

이 추진단은 행정자치부·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를 비롯해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보유·활용하고 있는 건보공단과 심평원 등의 주요 공공기관, 유관분야 학계·의료계·전문가 및 창업가 등으로 구성됐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단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6월, 복지부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단의 논의 내용을 공유하고 의견수렴을 하기 위해 '보건의료 빅데이터 전략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

영국 '케어닷데이터' 프로그램은? 

복지부가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을 추진하면서 벤치마킹 모델로 삼은 건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가 추진한 일종의 빅데이터 플랫폼인 '케어닷데이터(Care.net)'라는 프로그램이다.

영국은 고령화와 갈수록 급증하는 의료비 부담 등의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빅데이터 활용에 주목하고 지난 2013년 4월 보건의료 빅데이터 전담 독립기구인 HSCIC(Health & Social Care Information Centre)를 설립했다.

2012년 제정된 보건복지법(Health and Social Care Act)에 따라 설립된 HSCIC는 NHS의 진료데이터(GP, 병원 등)와 공중보건사회보장 관련 데이터를 수집·저장·연계분석해 데이터를 공개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보건의료서비스 개발을 지원하는 게이트웨이 역할을 수행한다.

이미지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영국 보건복지정보센터의 역할과 전략' 보고서.
이미지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영국 보건복지정보센터의 역할과 전략' 보고서.

NHS는 1960년대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보건의료정보화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014년부터 병원과 의사가 작성한 진료기록 정보를 HSCIC와 공유하는 '케어닷데이터'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NHS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 병원에서만 수집하던 진료정보를 확대해 일차 의료기관인 GP진료소의 컴퓨터 기록에서도 정보를 추출함으로써 환자의 전반적인 치료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HSCIC는 GP로부터 환자 진료기록 등의 정보를 제공받은 후 저장, 분석, 가공한 후 제3자 및 일반에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 전략도 이런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2015년 3월 개최된 '한-영 미래의료포럼'에서 영국의 NHS 빅데이터 플랫폼을 대대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또한 같은 해 5월에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전략 수립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복지부와 건보공단 관계자들이 미국과 영국을 방문했다.

당시 방문단은 영국 HSCI 등을 방문하고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영국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며 "영국은 HSCIC를 중심으로 데이터를 통합해 제공하고, 관련 데이터는 기업, 정부 등에 제공돼 산업 발전과 의료비 절감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출처: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방안’ 수립을 위한 해외출장 후 작성한 보고서.
이미지 출처: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방안’ 수립을 위한 해외출장 후 작성한 보고서.

그러나 복지부가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의 벤치마킹 사례로 삼고자 한 영국 NHS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인 '케어닷데이터' 프로그램은 작년 하반기부터 중단된 상태다.

앞서 영국 NHS가 HSCIC를 통해 환자 진료정보를 수집해 공유하는 것을 놓고 환자들의 반발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자신의 건강기록 데이터가 공유되기를 원하지 않기에 이를 반영해달라고 요청한 환자들의 청원이 빗발쳤다. 민간한 개인건강정보 유출 우려와 함께 환자가 자신의 정보를 공유 대상에서 뺄 수 있게 선택할 권리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게다가 HSCIC가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직접적인 환자 건강관리 목적보다는 기타 목적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에 영국 정부는 보건복지법을 개정해 HSCIC가 제3자에게 보유 정보를 제공하는 범위를 ‘의료ž복지 서비스의 증진, 혹은 국민 건강 증진’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이런 제한 규정에 따라 HSCIC가 보유하는 보건의료 정보는 연구나 신약 개발, 치료방법 개발 등을 위해 제3자에 제공될 수 있으나민간보험사가 해당 업무를 목적으로 환자의 개인정보를 HSCIC로부터 제공받거나 이를 열람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

여러 논란 끝에 영국 보건부는 "케어닷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영국 보건부 관련 발표 자료 바로 가기

영국 NHS의 케어닷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보건의료 빅데이터 공유에 관한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심평원이 민간보험사를 상대로 건강보험의 진료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성화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복지부가 진행 중인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건강권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은 최근 복지부에 제출한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전략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관련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단체는 "정부가 독점적으로 수집한 공적 영역의 국민 개인질병정보와 건강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엄격한 보호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관련 빅데이터 정책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며 "한 개인의 건강정보가 유출되면 그에 근거한 차별이나 배제, 낙인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뿐 아니라 고용상의 불이익, 보험가입 및 급여 제공 등의 경제적 불이익 등 광범한 불이익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행정자치부가 독단적으로 마련한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건강보험 진료정보를 외부에 제공하는 건 정부가 불법을 조장하는 것이란 의견도 제시했다.

양 단체는 "행정부의 일개 행정 해석에 근거해 공공데이터를 연계해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는 명백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고 불법"이라며 "법 집행을 우선해야 할 정부가 불법을 자행해서는 안 된다. 지난 정부의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폐기하고, 공공데이터 연계· 제공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작업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항목으로 115억원의 편성해 놓았다.

이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통과해 확정되면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변혜진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은 "복지부가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성화 전략의 벤치마킹 사례로 강조하는 영국 NHS의 케어닷프로그램도 건강정보 유출 등의 우려도 이미 중단된 상태"라며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한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성화 전략을 이대로 추진하면 큰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적폐청산 차원에서라도 예산안을 폐기하고, 관련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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