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길을 잃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보건의료’

[라포르시안] 문재인 정부가 건강과 보건 분야에서 무엇을 할지, 대체적인 구상이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문재인 케어’로 표현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그리고 ‘치매 국가책임제’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끝이라고 하면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이것 말고도 계획이 많고, 아직 준비 중인 것도 여러 가지라고. 시시콜콜한 ‘작은’ 정책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허술한 정부라도 대통령 공약만 신경 쓰는 데는 없다. 그 많은 공무원이 그냥 놀고 있을 리 만무하니, 뭔가 열심히(!) 하고 있을 터.

그래도 진짜 중요한 것은 골격, 국정 원리가 아닌가? 아무리 많은 정책을 늘어놓아도 백년대계가 없으면 새로운 정권이라 말하는 의미가 없다. 정치는 현재와 일상을 관리할 뿐 아니라 미래를 꿈꾸고 개척한다.

적폐와 새로움을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건강정책, 보건과 의료가 어디로 가려 하는지 확실하지 않으니 걱정스럽다. 이미 내놓은 브랜드인 ‘문재인 케어’와 ‘치매 국가책임제’는 비용 부담을 줄이자는 것 빼고는 말하는 바가 많지 않다.

다른 것을 그대로 두고 보건의료의 ‘경제’를 바꾸자는 셈이어서 더 걱정이다. 있던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더 복잡해져 고질병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일차의료나 지역 보건을 강화하지 않고 건강보험 급여만 늘리면, 환자는 대학병원으로 더 몰리고 동네 병원의 의료는 더 왜곡될 것이다.

그 중에도 오랜 숙원, ‘공공보건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묵묵부답인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슨 실무나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은데도 공공보건의료가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되었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책임 있는 의사결정자 그 누구도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아예 ‘공공보건정책관’부터 새로 선발하는 중이다(관련 보도자료 바로 가기). 10월 20일까지 공모를 했으니, 결정되어 일을 시작하려면 12월이나 되어야 할 것 같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어 진행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공공보건의료가 이 정도 일인가? 몇 년 되지 않은 메르스 사태의 교훈을 벌써 잊었다면 더 할 말이 없다. 그것을 무엇으로 생각하든, 메르스 사태가 생긴 이유,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아야 하는 과제의 중심에 공공보건의료가 있었다.

그런 공공보건의료에 대해 정치 지도자가 할 일 하나는 이런 것이다(<서리풀 논평> 2015년 6월 8일자 바로 가기).

“위기가 완화되고 마무리되는 때에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망과 비전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방역체계와 조직, 공공보건의료, 병원, 의료제공체계, 그리고 정치적 리더쉽 그 자체. 드러난 문제들을 점검하고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제시해야 한다.”

심상하게 보이지만 말 하나 하나가 모두 ‘개혁’ 과제다. 중앙과 지방 정부 구조를 바꾸고 돈과 사람을 더 써야 가능하다. 완강한 공공 부문뿐 아니라 민간 부문과 시장까지 움직여야 변화가 일어난다.

유형의 구조와 틀 이외에 생각, 문화, 가치관까지 포함하면 어렵고 복잡하다. 객관적 조건에 비해 힘이 약한 것이 더 걸린다. 대부분 사람이 당장 급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변화의 동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보통 노력으로는 좀처럼 잘 안 될 것, 그래서 진짜 개혁과제다.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이 일을 정부의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의 공공보건정책관? 차관? 장관? 청와대 사회정책 비서관? 사회수석비서관? 아니면 사회부총리? 국무조정실장? 국무총리? 모른 척하지 말자. 다른 그 누구도 어떤 형식으로도 일이 돌아가게 할 수 없다. 대통령이 알고 관심을 표해야, 의지를 표현하고 챙겨야,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

에두르지 않고 바로 묻는다. 지금 대통령은 ‘공공보건의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의지는 있는가? 청와대 참모와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는 대통령과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는가?

공공성을 내세우는 정치철학은 더 말하지 않는다. 되돌아가 다시 생각해도, 메르스가 없었더라도, 공공보건의료는 이 정부가 추진할 핵심 의제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대통령부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첫째 이유는, 실무적으로만 봐도 공공보건의료가 정권이 성공하는 토대 구실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 공약이라 부르든 국정 과제라 부르든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치매 국가관리제’는 출발부터 공공보건의료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형편이 아닌가. 감염병 전문병원이나 응급의료체계도 다름 아닌 공공보건의료에 성패가 달렸다.

실무적 의의를 말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를 위해서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보건의료 강화는 바로 의제 설정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은 정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선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챙기는 것이 급하고, 구체적인 내용과 정책은 그다음이다.

이른바 ‘공공보건의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이 아니다”는 형식으로 몇 마디를 보태는 것은 의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첫째, 공공보건의료는 진주의료원 같은 ‘지방의료원’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병원만 하더라도 지방의료원을 비롯해 시립병원, 국립병원, 국립대학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여럿이다.        

어쩌다 보니 지방의료원이 공공보건의료를 상징하는 모양이 되었지만, 공공보건의료의 일부일 뿐이다. 지방의료원을 몇 군데 늘리거나 적자 재정을 도와주는 정도로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 지역 전체의 건강과 보건에 대한 ‘공적’(또는 ‘공공성’에 기초한) 체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둘째, ‘공공병원’만도 아니다. 공공보건의료 강화는 가난한 사람과 취약계층이 병원에 더 쉽게 갈 수 있도록 공공 병원을 설립, 운영하는 것 이상이다. 국민건강보험과 의료급여가 있으니 ‘민간병원’도 ‘공공재정’을 쓴다.

공공보건의료가 하는 일은 의료급여 환자나 홈리스 환자를 더 많이 진료하거나 보험 환자를 조금 더 싸게 진료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몇 군데 국립대학병원에 새로운 역할을 주거나 공공병원 평가방법을 바꾸는 것도 일부일 뿐이다. 넓게 생각하면, 민간병원이 하는 진료가 ‘공공성’을 실현하도록 지원하고 규율하며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도 공공보건의료가 해야 할 역할이다. 

셋째, 공공보건의료는 의료만이 아니다. 공중보건 전체가 공공보건의료의 핵심 요소이자 기능에 들어간다. 보건소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이를 기초로 한 지역사회가 모두 공공보건의료의 ‘장(場)’이자 대상이며 주인이기도 하다. 아니, 메르스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보건소를 넘어 지방정부 전체가 공공보건의료의 또 다른 주체다. 

이 모든 공공보건의료 ‘활동’은 공공보건의료 ‘체계’와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공공보건의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활동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강화’가 체계와 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면 시끄럽고 지루한 개혁 과정을 피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에서 최고 정치지도자를 빼고는 이를 촉발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

한마디로 요약한다. 혹시 대통령께서 이 글을 보거나 전해 듣는다면 일 분만 시간을 내 지시하거나 관심을 표하시라. 공공보건의료 강화는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한 번으로 안 되면 한 달 후에 한 번만 더 물어보시라. 그때 공공보건의료 강화 이야기는 진척된 것이 좀 있느냐고.

보태는 말.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보건의료의 조건은 느리지만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최근 ‘서울특별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이 출범했고(관련 기사 바로 가기), 인천, 부산, 경기도, 제주도 등이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을 만들어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모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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