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올해부터 '독서를 통한 보건교육' 실시…40권의 다양한 책 활용

#. 어느 날부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된다. 실명 현상은 마치 감염병처럼 사람과 사람을 통해 옮겨진다. 시력을 잃은 사람들은 집단으로 수용소에 격리된다. 수용소 안에 격리된 눈이 먼 사람들은 급기야 이성마저 잃게 된다. 수용소 안은 점점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눈먼 자들의 도시'란 소설 속 내용이다. 

올해 새학기부터 서울시내 중고등 학생들이 이 소설의 내용을 놓고 감염병에 관한 보건교육을 받게 된다. 

26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오는 3월부터 서울지역 초·중·고교에서 독서를 접목한 보건교육이 실시된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보건진흥원은 이를 위해 '독서를 통한 보건교육' 지도자료를 초등과 중등학교용으로 개발해 각급학교 보건교사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독서를 통한 보건교육'은 건강과 관련된 도서를 읽은 후 토론이나 역할놀이, 창의적인 문제해결 등 구체적으로 계획된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된다. 

초등학교용과 중·고교용으로 제작된 교육 지도자료에는 각각 국내외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책 20권에서 발췌한 건강 관련 부분이 수록됐다.

학교에서 보건교육 지도시 ▲건강의 이해와 질병 예방 ▲생활 속의 건강한 선택과 안전 ▲건강자원의 활용과 대처기술 ▲건강과 사회・문화 등의 대주제를 중심으로 각각의 주제에 맞는 소설이나 관련 서적의 내용이 인용된다.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대상의 독서를 통한 보건교육은 '어린이를 위한 내 몸 사용서', '똥 선생님', '엄마는 파업 중', '열세 살 내 마음이 왜 이러지', '돼지책', '내 몸은 나의 것', '스탈링이 들여주는 호르몬 이야기' 등 20권의 책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독서와 접목한 보건교육은 어떻게 진행될까. 건강의 이해와 질병 예방 영역에서는 영국의 작가 콜린 힌스가 쓴 '비만, 왜 사회 문제가 될까?'란 책을 읽고 비만예방을 위한 실천방법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배우게 된다.

보건교사에게 제공되는 지도자료를 보면 "이 책을 활용한 수업 과정안은 비만의 문제점을 개인 내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까지 고려해 개인의 노력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노력까지 다루고자 한다"고 교육 목표를 설정해 놓았다.

생활 속의 건강한 선택과 안전 영역에서는 린다 월부어드 지라드가 쓴 '내 몸은 나의 것'이란 책을 읽고 어린이들이 주변 인물과 관계 속에서 겪는 다양한 신체 접촉 상황을 통해 기분 좋은 신체 접촉과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은정 작가의 장편동화 '안녕, 그림자'란 책을 읽고는 아이들이 성폭력 위험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했다.  

일본의 소아과 전문의 야마다 마코토가 쓴 '응급처치'란 책도 보건교육에 활용된다.

 

학생들은 이 책을 읽고 일상 생활 속에서 넘어지고, 코피가 나고, 화상을 입고, 칼에 베였을 때 어떻게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지를 보건교사를 통해 배우게 된다.

또한 이 책을 읽고 역할극을 통해 응급처치 방법을 익히기도 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중고등학생 대상의 독서를 이용한 보건교육에도 총 20권의 책이 활용된다.

여기에는 '열네 살이 어때서'. '눈먼 자들의 도시',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름 없는 너에게', ''켈리에게 햇살을', '양한방 똑똑한 병원이용', '완득이'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이나 교양서적이 포함돼 있다.

중고등학생용 독서 보건교육에 활용되는 책 가운데 '1리터의 눈물'은 실제로 중학교 3학년 때 '다계통위축증' 진단을 받고 병마와 사투를 벌인 일본인 소녀 키토 아야의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는 '오직 일기를 쓰는 것만이 살아가는 이유다'라고 말한 아야가 스물 여섯의 짧은 생을 마치기까지의 모든 일상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학생들은 '1리터의 눈물'을 읽으면서 청소년기에 흔히 발생하는 질병을 알아보고, 적절한 건강관리법을 배우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는 감영병의 정의와 적절한 감염병 예방 수칙을 배우는 것이 학습 목표다.

보건교사의 지도 과정에서 감염병에 대한 편견이나 감염병 환자에 대한 낙인이 생기지 않도록 언어사용에 유의할 것을 지도자료집을 통해 당부하고 있다.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활용한 독서교육에서는 책 속에 등장하는 10대 소년 동수가 친구와 함께 본드를 흡입하는 내용을 통해 약물 오·남용의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깨닫도록 하는 것이 학습의 목표다. 

소설 속에서 동수란 아이가 본드를 흡입할 때의 주관적인 느낌과 본드를 흡입한 사람을 구치소에서 보았을 때의 객관적인 사실을 묘사한 내용을 놓고 그 차이점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쓰게끔 하는 학습지도도 이뤄진다.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화상을 입은 소녀 켈리가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성장소설 '켈리에게 햇살을'(프리실라 커밍스)을 통해서는 화상의 종류별 특징과 외상 및 화상을 입었을 때 드레싱 처치를 하는 방법을 배운다.

보건교육에 인용되는 이 책의 본문 내용 중에는 주인공 켈리가 화상을 입은 후 자신의 뒷다리 피부를 절제해 다른 부위에 이식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학생들에게 현명한 의료기관 이용 방법을 소개하는 책도 다뤄진다.

의사이자 한의사인 백태선 원장이 쓴 '양・한방 똑똑한 병원 이용'이란 책을 읽고 학생들은 의료기관 선택시 병원의 규모가 아닌 질병의 경중, 응급상황 여부 등을 기준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요양기관종별 의료전달체계와 진료의뢰서, 상급종합병원 이용 절차 등에 관한 설명도 보건교육 내용에 포함돼 있다.

왜 독서를 통한 보건교육인가?

독서를 통한 보건교육은 학생들이 건강과 관련된 도서를 읽은 후 토론이나 역할놀이, 창의적인 문제해결 등의 과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보다 실질적인 건강문제 해결 방법을 습득하게끔 도와주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교육과정에 따르면 초・중・고등학교의 보건교육시 ‘보건’ 선택과목과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한 ‘보건교육’으로 구분해 수행해야 한다. 학교보건진흥원은 "독서를 통한 보건교육은 관련 도서를 읽은 후 토론이나 역할놀이, 창의적인 문제해결 등 구체적으로 계획된 활동을 하도록 구성함으로써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며 "이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돌아보며 건강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 중고등학교용 창의적 체험활동 지도자료의 목차.

진흥원은 3월 새학기부터 학교 현장에서 독서를 통한 보건교육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이달 26~27일 이틀간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에서'보건교사 일반교육'을 실시했다. 

진흥원에서 독서 보건교육 기획을 주도한 보건지원과 김영숙 교육연구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시대적으로 건강 및 보건교육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학교에서는 국영수 등 진학시험에 필수적인 교과목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학교 수업과정에 별도 보건교육 시간을 두기도 어렵고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연구사는 "독서를 통한 보건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좀 더 제대로 된 건강교육을 받게끔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며 "인성교육 측면에서도 독서가 중요하기 때문에 책읽기와 보건교육을 접목하는 시도가 이뤄졌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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