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수술기구 멸균 실태 파악도 안돼...명확한 가이드라인·합리적 수가보상 체계 필요

[라포르시안] 올해 초 대구의 한 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70대 여성이 패혈증으로 숨졌다. 지난 2008년에도 무릎 인공관절 삽입술을 받은 60대가 패혈증으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환자는 수술 부위에 슈퍼박테리아가 감염된 사실을 확인하고 인공관절 보형물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사망했다.

수술 부위 감염 의료사고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수술 부위 감염은 전체 수술 건수의 약 1~2%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병원이 자체적으로 파악해 보고하는 시스템이어서 정확한 통계를 집계하기는 어렵다.  

수술부위 감염은 환자의 사망률, 이완율, 재원 기간과 진료 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의료분쟁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2012~2017년 2월까지 접수된 수술 감염 의료분쟁 조정·중재 신청은 238건으로 전체 감염 관련 분쟁 신청(528건)의 45.1%를 차지했다. 

현재 수술실 감염관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인 수술기구 세척과 멸균에서부터 허점이 많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수술기구의 멸균은 매우 중요한데, 우리는 멸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대한 현황 파악도 안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회용 수술기구를 재활용하는 문제가 있고, 화학적 소독 시간을 철저히 지키느냐에 대한 모니터링도 필요하다"며 "화학적 소독은 적어도 15분 이상 담그라고 하는데, 수술이 밀리면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강동경희대병원 외과 이석환 교수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이석환 교수는 "수술기구는 일반적으로 화학적 소독과 증기멸균 두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대부분의 병원들이 갖추고 있는 장비에 비해 수술을 많이 한다. 수술이 밀리면 한 단계를 생략하고 화학적 소독을 하거나 증기 멸균만 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소형 병원들은 멸균 장비 노후화가, 대형병원은 재활용이 수술기구 감염 사고의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질병관리본부가 국내 193개 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병원의 74.9%는 멸균·감염과 관련해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멸균공정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기계적·화학적·생물학적 지표로 확인하는 것이 의무인데도 30%는 멸균확인을 빠뜨리거나멸균확인을 하더라도 확인주기를 권고안대로 준수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에서 멸균 등 수술기구 소독이 부실한 건 의료기관의 감염관리에 대한 의지와 정책적 뒷받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브란스병원 외과 이강영 교수는 "수술기구의 소독 등은 원칙대로만 하면 되는데, 지키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수술기구의 멸균은 의료감염을 예방하는 기본 사항인 만큼 병원이 의무적으로 소독·멸균과 멸균확인을 하도록 지침을 강화하고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내리는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멸균품 관리와 멸균 감시에 대해 전문 단체의 가이드를 근거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며 예고 없는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전에 예고된 날짜에 표본 기관에 한해서만 조사를 진행한다. 

이재갑 교수는 "단속과 규제를 해야 하는데 방법도 없고,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내벼려 두는 상황"이라며 "실태점검이나 표본조사를 하더라도 기구마다 소독 방법과 규정이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면 적발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 인증제도에서 감염관리 부문은 따로 분리에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술방을 운영하는 의료기관들은 반드시 평가를 받고 개선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특히 모니터링 제도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문제를 발견해야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의 간이식 수술 모습.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의 간이식 수술 모습. 

의료계 "수술기구 멸균 등 별도 수가 가산 필요"

복지부 "감염 등 환자안전관리 수가 로드맵 준비 중" 

관련 지침을 지키지 않는 병원에 페널티를 가하고 잘하는 병원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석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운영하는 감염관리 관련 지침은 미국 등 선진국 수준이지만 이행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이 문제"라며 "수술기구나 수술실 멸균에 대해 등급제를 적용해 잘하는 병원은 인센티브를 주고, 못하는 병원은 끌어올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이 보다 자발적으로 감염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끔 수술기구 세척과 멸균 관련해 별도의 수가 산정을 통해 보상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강청희 기흥구 보건소장(흉부외과 전문의)은 "고압증기 소독기나 EO gas 소독기의 경우 매우 고가이고 유지비가 많이 들어간다. 별도의 수가 산정이나 가산이 필요하다"면서 "기준을 만들어 등록하도록 하고 가산 수가를 신설하면 보다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필요하다고 지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속해서 개선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손주영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사무관은 "우리나라의 수술기구 소독 등과 관련한 지침은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마련했다. 그러나 어떤 기구는 어느 기구에 넣어 어떻게 소독해야 하는지 매뉴얼은 부족한 상황이라 관련 메뉴얼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향후 전문가 단체 등에서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부분은 수정하고 보완해 소독을 강화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 사무관은 "감염 등 환자안전관리 수가 로드맵 등 수가 정책과 관련한 정책도 준비하고 있다"며 "의료기관의 감염 관리가 미비한 것이 수가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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