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원정대' 동행기] 작년 한라산 이어 올핸 소백산 올라..."사회의 잘못된 편견·배려없는 의료정책 바뀌길"

[라포르시안] "정말 소백산 정상까지 오를 생각이세요?"

소백산 국립공원 주차장 이쪽저쪽을 우르르 뛰어다니며 장난치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몇 번을 물었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그때마다 "네, 정상까지 등산합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 23일 오전 8시 10분. 소백산 국립공원 주차장에 20명의 선천성심장병 환아들과 가족 48명을 비롯해 소아심장 의료진 5명, 한국철도산악연맹 구조대원 11명과 항공대학교 대학생 자원봉사자 2명까지 66명의 '소백산원정대'가 모였다. 

서진이, 예원이, 주원이, 현준이, 찬율이, 지윤이, 유민이, 승현이…… 원정대에 참여한 아이들은 대부분 다섯 살부터 일곱 살 사이의 또래였다.

모두 좌심형성 부전증, 양방좌심실연결, 폐동맥폐쇄, 우심형성 부전증,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증 등의 복합심장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심장의 왼쪽에 있는 좌심방·좌심실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했거나 폐동맥 판막이 막이나 근육으로 막혀 혈류가 우심실에서 폐로 나가지 못하거나.

적게는 한 번부터 많게는 열 번도 넘게 심장수술과 시술을 받았다. 앞으로 몇 번의 힘든 수술을 더 받아야 할지 모른다. 이번 원정대의 유일한 성인환자로 참여한 30대 중반의 김해진씨는 ‘양대혈관우심실기시’라는 복합심장기형으로 6살 때 첫 수술을 시작으로 20대 초반이던 지난 2004년에 폰탄수술을 받은 것처럼.

한 번도 받기 힘든 수술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받았지만 소백산 등반에 나선 아이들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더 건강한 모습이다. 이미 작년에는 튼튼한 심장으로도 하기 힘든 한라산 정상 등반까지 다녀왔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가 선천성심장병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기 위한 인식개선 운동 ‘달라요, 다르지 않아요’를 시작했다. 선천성심장질환 환아들도  정확하게 진단받고 수술적 치료나 약물을 비롯한 보존적 치료를 받으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지난해 한라산 정상 등반을 통해 다르지 않다는 걸 증명했다.

올해에는 충북 단양에 있는 소백산 비로봉(해발 1439m) 등산에 나섰다.

선천성심장병환우회 '소백산원정대'가 선택한 등산코스는 천동 탐장지원센터를 출발해 천동 쉼터, 고사목 구간을 지나 능선을 따라 비로봉 정상까지 오르는 약 6.8Km 구간이다. 성인의 걸음으로 정상까지 오르는데 약 3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다. 

오전 8시30분. 소백산 정상을 향한 첫 관문인 천동 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 본격적으로 등산이 시작됐다. '정말로 정상까지 오를 생각인가' 속으로 다시 한 번 그런 의문이 들었다.

곧이어 울퉁불퉁 돌투성이 길과 경사가 가파른 길이 잇달아 나왔다. 아이들은 가파른 산길도 아랑곳 없이 엄마 아빠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뛰듯이 산을 올랐다.

 

좁고 가파른 산길에서도 아이들은 앞서가니 뒤서거니 하며 저희들끼리 장난치고 뛰어다니느라 야단법석이었다. 파란 입술에 숨을 헐떡이는 심장병 환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준이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연신 다른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산길을 올랐다. 

안상호 대표는 "저 아이들 중에는 많게는 10여 차례의 수술과 시술을 받은 경우도 있고, 다들 몇 번씩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등산에 익숙한 건 지난해 한라산 등반을 준비하면서 원정대 참가자들이 모여 인왕산부터 시작해 관악산, 도봉산, 북한산, 계양산, 광교산 등 서울과 근교의 산을 오르며 근력운동과 함께 팀워크를 다졌기 때문이다. 올해도 몇 차례 낮은 산을 오르며 소백산 등반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번 원정대에 참여한 여섯 살 성현이도 등산 경험이 많았다. 말없이 산길을 오르는 승현이 옆에 다가가 어디 어디를 등산했는지 묻자 "한라산, 관악산, 북한산도 다 올랐어요"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안상호 대표는 "지난해 처음 한라산 등반을 할 때는 경험이 없다보니 준비도 부족했고, 중간에 비까지 내려 추위에 떨며 울면서 정상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다섯 살 금물결이는 아빠 품에 안긴 채 산을 올랐다. 좌심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물결이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병원 중환자실에 오래 입원해 있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몸집이 작은 물결이는 호흡이 힘들어 아빠 품에 안긴 채 연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물결이 아빠는 산길을 오르던 중 몇 번이나 아이 얼굴이 바닥을 향하도록 엎어서 안고 등을 두드렸다. 기침을 해 가래를 뱉어 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의 '소백산 원정대'가 지난 9월 23일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에 올라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김상기 기자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의 '소백산 원정대'가 지난 9월 23일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에 올라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김상기 기자

그렇게 소백산원정대는 산길을 오르다 숨이 차면 쉬었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오전 8시 30분에 천동산매표소를 출발해 천동 쉼터, 고사목 구간, 비로봉 능선 길을 지나 오후 3시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에 올랐다. 6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정상에서는 구름과 안개와 바람이 합세해 풍경을 다 가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구름과 안개가 조금씩 밀리면서 산 아래 펼쳐진 풍경이 띄엄띄엄 눈에 들어왔다.

내려오는 길은 한결 수월했다. 오후 3시가 넘어 비로봉 정상에서부터 오던 길을 그대로 따라 내려왔다. 등산로 초입의 천동 탐방지원센터까지 내려오니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다.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데 9시간 정도 걸린 셈이었다.

이날 소백산 등반에 동행한 세종병원의 김성호 소아심장과 진료부장과 이창하 소아흉부외과 진료부장은 “작년 한라산 등반 때는 걱정도 조금 되었었는데 이제는 부모들이나 의료진보다 아이들이 산을 더 잘 오른다. 심장이 건강한 아이들도 힘든 소백산 산행을 잘 참고 끝까지 정상까지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흉부외과 의사로서 여러 가지 생각도 들고 또 배우는 점도 많았다"며 "환우회의 인식개선 운동으로 사회의 잘못된 시선이 바뀌길 바라고 이 아이들이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소아심장 의료진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선천성심장병 환아들에게는 등산보다 소아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건강보험제도와 의료공급 시스템이 더 위협적이다.

소아과학 교과서 첫머리에 적혀 있는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성인과는 다른 어린이의 연령과 체형, 심리 등을 고려한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국내 의료환경은 그렇지 못하다.

어린이를 단지 성인보다 신체가 작은 존재로만 인식하다 보니 의료공급 시스템부터 정책,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이르기까지 소아환자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하다.

불합리한 의료환경 탓에 흉부외과가 기피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소아흉부외과의 상황은 더 심각한 지경이다.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8년 동안 배출된 소아흉부외과 세부전문의는 단 6명 뿐이다. 그나마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은 배출된 소아흉부외과 세부전문의가 전무했다. 이러다 보니 심장질환을 가진 환아들의 의료이용 접근성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복합심장기형을 안고 있는 소아 환자의 수술에 꼭 필요한 필수 치료재료인 '인조혈관'의 공급 중단 논란까지 일었다. 국내에 유일하게 인조혈관을 공급해온 글로벌 기업이 의료수가가 너무 낮아 팔아도 수익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번 원정대를 준비한 안상호 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선천성심장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산전 진단 후 소중한 아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파란 입술, 헐떡이는 숨, 잘 뛰지도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불안에 떠는 부모들에게 원정대가 희망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여느 건강한 아이와 다르지 않게 씩씩하게 소백산에 오르는 것을 보여줘 편견을 바로잡고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 치료재료의 공급 중단 사태가 빚어지게끔 한 불합리한 의료공급체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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