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민간병원, 올해 교섭서 인력확충·정규직화 잇따라 합의…"정부도 수가 개선 등 지원책 적극 펴야"

지난 9월 20일 열린 한 고대의료원 노조의 파업전야제 모습. 고대의료원은 올해 노사간 교섭에서 임금인상분 중 0.2%(5억원)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지난 9월 20일 열린 한 고대의료원 노조의 파업전야제 모습. 고대의료원은 올해 노사간 교섭에서 임금인상분 중 0.2%(5억원)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라포르시안] 올해 병원 노사간 교섭을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인력확충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중요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이 보건의료 부문에서 먼저 성과를 낼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무엇보다 적정 인력확충이 이뤄지면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이 향상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노사가 인력확충을 위해 손을 맞잡고 노력하기로 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병원이 적정 의료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수가 개선과 지원정책을 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전국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지난 5일 96개 병원 사업장이 산별 집단 쟁의조정신청에 돌입한 가운데 조정기간 만료일인 지난 21일까지 62개 사업장이 극적으로 교섭 타결을 했다.

나머지 34개 사업장은 밤샘 조정과 교섭을 진행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조정기간을 연장해 다음 주 초까지 집중교섭을 진행하기로 했다.

당초 노사 교섭이 결렬될 경우 2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교섭 타결과 조정기간 연장이 이뤄지면서 현재 파업에 돌입한 병원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62개 병원 노사간 교섭 타결 내용을 보면 상당수 병원에서 인력확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13개 병원에서 인력확충 1,300여명,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520여명 등을 합의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건의료노조는 "이 수치는 합의 당시 인력확충 규모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규모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13개 사업장의 숫자만 집계한 결과"라며 "간호등급 상향에 따른 구체적인 인력확충 규모를 산정하지 않은 경우와 '지부별로 세부사항 추후 논의',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에 정규직으로 전환', '공공병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추진' 등에 합의한 나머지 49개 사업장의 추후 구체적인 합의내용까지 포함해 집계하면 인력확충 규모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규모는 대략 1만명 가까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교섭에서 인력충원에 노사가 합의한 병원들의 경우 간호등급 상향을 통한 인력확충이 눈에 띈다.

민간병원 가운데 한양대의료원은 응급의료센터 간호등급 1등급으로 상향 및 구리병원 일반병동 1등급 상향을 통해 75명을 확충하기로 했다. 이화의료원은 중환자실 간호등급 1등급으로 상향을 통해 21명을, 아주대의료원은 간호등급 1등급으로 상향해 62명의 인력을 확충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공공병원에서는 부산대병원이 병동 간호인력 118명 충원 및 2019년까지 간호등급 1등급 상향을, 전남대병원은 응급실 간호등급 2등급으로 상향 및 중환자실 1등급으로 상향을 통해 105명의 간호인력을 충원하기로 합의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병동 확대와 부족인력 충원 등을 통해 81명 확충에 합의했다.

산별 집단교섭을 진행한 18개 민간중소병원지부도 산별중앙교섭 합의와 지난달 23일 있었던 보건의료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에 기반해 오는 29일 전까지 구체적인 인력확충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신규 인력확충과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합의도 이뤄졌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무기계약직 28명, 기간제 101명, 상시지속업무의 파견용역직 280여명 등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고, 서울대치과병원은 비정규직 1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서울시동부병원의 경우 비정규직없는 병원을 선포하면서 4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부산대병원, 전남대병원, 보훈병원, 지방의료원 등 대부분의 공공병원은 지난 18일 공공병원 T/F에서 확정된 '공공병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병원에서도 노사 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이어지고 있다.

경희의료원이 비정규직 없는 병원을 선포하면서 5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고, 고대의료원(40명), 조선대병원(34명), 이화의료원(30명), 한양대의료원(16명) 등의 민간 대형병원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합의가 속속 이뤄졌다.

특히 경희의료원은 산별 임단협 교섭에서 임금인상분 일부를 인력확충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기여하기로 한 보건의료노조의 방침에 따라 임금인상분 중 0.5%(6억원)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재원으로 사용하기로 합의를 봤다.

고대의료원도 노사간 임금인상분 중 0.2%(5억원)를, 전남대병원은 임금인상분 중 0.6%를 인력확충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사용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산별방침에 따라 인력확충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통해 보건의료분야 일자리혁명을 이룩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며 "1차로 병원노사 교섭에서 의미있는 타결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보건의료분야 노사정이 다양한 초기업적 정책협의를 통해 인력확충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통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충분한 공감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월 23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보건의료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식'이 열렸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로노조
지난 8월 23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보건의료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식'이 열렸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로노조

"보건의료 인력확충, 국가가 책임"...'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해야

한편 지난달 23일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해 일자리위원회,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정부부처 관계자와 병원협회 등 병원계 대표, 한국노총 의료산업노조 등 노동계 관계자 등이 참석해 '보건의료분야 노사정 공동선언'을 한 바 있다.

보건의료분야 노사정은 이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내에 '보건의료분야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에서 간호인력 수급종합대책,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보건의료분야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등 근로안정화 방안 등을 심도 있게 검토키로 약속했다.

특히 일자리위원회 산하에 설치될 보건의료분야 특위에서 ▲간호인력수급 종합대책 수립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를 위한 인력수급 지원 방안 ▲취약지 및 공공의료 인력 확충 방안 ▲보건의료인력 모성보호 및 일-가정 양립방안 ▲보건의료분야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등 근로안정화 방안 ▲보건의료인력 관리체계 구축 ▲의료기관의 일자리 창출 환경 조성 등의 핵심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도 보건의료분야 적정 인력확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올해 하반기 핵심정책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향후 5년간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등의 정책을 추진해 10만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박 장관은 "다양한 정책 개입으로 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소득수준 증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보건의료 분야 성장을 통한 일자리 증가분 약 10만 개를 포함하면 오는 2022년까지 20만명까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복지부 계획대로 보건의료 분야에서 적정 의료인력 확충이 이뤄지면서 정부가 중장기 보건의료 인력수급 계획을 수립하고, 병원의 인력확충을 지원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

현재 상당수 병원이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과 노동조건 악화로 인한 '구인난과 환자안전 위협'이 심화되는 악순환 구조에 빠졌다.

인력이 항상 부족해 1명의 간호사가 4~5명이 해야 할 몫을 담당하고, 업무부담이 가중되면서 노동조건은 악화된다. 간호사의 이직률은 치솟고, 인력이 부족한 병원은 근무여건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간호사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노동조건은 더 악화되는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안' 제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은 개별 의료기관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적정인력 확보 문제에 대해서 국가에 책무를 지우고, 정부가 병원의 인력확충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끔 법적 근거를 담았다.

특히 ▲보건의료기관 고용확대 지원, 우수 보건의료인력 지원, 세제 지원 등 각종 지원 조치 ▲보건의료인력의 보건의료기관 취업 촉진을 위해 고용장려금 지급 ▲보건의료기관의 구인 활동 및 구직자의 취업 지원 보건의료 인력지원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보건의료인력의 원활한 수급 및 지원을 위한 재정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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