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암환자들, 급여화 후 오프라벨 처방 제한에 반발..."환자들 절박한 처지 악용해 돈벌이 눈먼 병원도"

[라포르시안] 요즘 암환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는 면역항암제다. 면역항암제는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게 아니라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 암세포와 싸울 수 있도록 해 기존 항암제에 비해 부작용이나 내성발현이 덜하고 치료효과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와 '옵디보'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시작되면서 암환자와 가족의 관심은 더 커졌다. 

아직까지 국내에 출시된 면역항암제의 종류는 제한적이고, 보건당국에서 허가한 적응증 범위도 좁은 편이다. 

건강보험 편입으로 급여기준에 맞춰 처방토록 하면서 암환자들 사이에서 면역항암제의 접근성이 더 떨어졌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옵디보주와 키트루다주의 보험적용 대상은 PD-L1 발현율이 일정수준 이상인 비소세포폐암 환자로 제한하고 있다. 옵디보는 PD-L1 발현율 10% 이상, 키트루다는 PD-L1 발현율 50% 이상인 비소세포폐암 환자는 급여 적용을 받아 약값의 5%만 부담하면 된다.

문제는 지금까지 위암이나 유방암 환자 등이 오프라벨(허가외 사용) 처방으로 면역항암제를 사용해 왔는데 급여화가 되면서 적응증 허가외 사용이 엄격하게 제한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심평원은 급여화 이후 허가사항을 초과해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으려면 다른 항암제의 허가초과요법과 동일하게 다학제적위원회가 구성된 병원에서 사전승인을 받은 후 투약토록 급여기준 지침을 제시했다.

다만 면역항암제의 급여 등재 이전에 옵디보와 키트루다의 오프라벨 처방을 통해 반응을 보인 환자는 등재 이후에도 올해 12월 31일까지는 기존 병의원에서 계속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고, 그 이후에는 다학제위원회가 구성된 의료기관으로 전원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심평원의 이러한 급여기준 지침에 면역항암제의 급여 등재 이전부터 오프라벨 처방을 받아온 암환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암환자에게 면역항암제 오프라벨 처방을 해온 병의원 중 상당수가 더는 처방을 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면역항암제의 급여화 이전에는 높은 약값 부담으로 경제적 접근장벽이 있었다면 이제는 엄격한 급여기준 적용까지 더해져 접근성이 훨씬 더 떨어졌다는 게 암환자들의 불만이다.   

암환자와 보호자들이 지난 8월 29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사무소 앞에서 면역항암제 의‘오프라벨’처방 금지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암환자와 보호자들이 지난 8월 29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사무소 앞에서 면역항암제 의‘오프라벨’처방 금지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암환자들은 지난달 29일 심평원 서울사무소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고 "기존 오프라벨 환자들은 연말까지 유예기간을 둬 투약 중단이 없을 것이라는 심평원의 대책은 기존 병원들이 투약을 중단하고 예약 취소와 환불 사태를 불러일으켰다"며 "다학제위원회가 설치된 대학병원에서도 오프라벨 처방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더는 치료법이 없는 말기암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말기 암환자와 가족들의 절박한 처지를 악용해 일부 동네의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면역항암제의 오프라벨 처방을 오남용하는 일도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환자와 가족들이 많이 찾는 온라인 카페에는 면역항암제 오프라벨 처방을 하는 병원의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전이성유방암환우회(HPBCF)는 "기존 오프라벨 처방 병원에서 향후 심평원으로부터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는 위험부담 하에서 처방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일부 병원은 고가의 시술을 함께 받아야한 오프라벨 처방을 할 수 있다며 환자들의 절박한 처지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환자들은 기존에 치료받던 병원 의료진에게 면역항암제 복용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한 암환자카페 관계자는 "더는 치료할 방법이 없는 말기 암환자와 가족들이 면역항암제의 극적인 일부 치료 사례에 주목하고 지나치게 높은 기대감과 환상을 품게 되는 경향이 있다"며 "어떤 암환자는 기전에 치료받던 병원 의료진에게 숨기고 다른 병원에서 면역항암제 처방을 받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심평원이 면역항암제의 오프라벨 처방을 제한한 이유는 국민의 안전한 약제 사용을 위해 허가초과약제 사용에 대한 관리기전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럼에도 이를 제한하는 게 암환자의 치료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비난을 제기하는 건 과다하는 지적도 적지 않다.

암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 전문의들도 이런 상황에 대해 우려가 높다.

한 종양내과 전문의는 "아직까지 면역항암제에 대한 장기 임상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투여에 신중해야 한다"며 "임상현장의 전문가들도 면역항암제에 정말로 '드라마틱'하게 반응하는 암환자도 있지만 오히려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치료효과를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법이 없는 말기 암환자들이 마지막으로 면역항암제에 기대를 거는 절박한 심정을 무시할 수도 없다"며 "지금처럼 환자와 그 가족이 입소문으로 오프라벨 처방을 하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고가의 비용을 부담하면서 치료를 받는 상태를 방치하지 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암환자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보다 적극적인 치료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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