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저수가 기조 40년째 유지...'비급여 전면 급여화'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의료계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와 의료제도 정상화를 위한 비상연석회의'는 지난 26일 300여 명의 의사와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와 의료제도 정상화를 위한 비상연석회의'는 지난 26일 300여 명의 의사와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라포르시안]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이 시작도 하기 전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벌써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 구호가 의료계 안에서 커지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일부 의사단체 주도로 광화문 인근에서 집회도 열렸다.

의사들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이유는 '저수가 기조' 때문이다. 기존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해 건강보험에 편입하면서 기존 비급여행위의 관행수가(일반수가)보다 턱없이 낮은 보험수가를 책정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그동안 늦은 의료수가에도 불구하고 비급여 진료를 통해 수입을 보전하고 병원경영을 유지해 왔는데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가 추진되면 그마저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해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 26일 열린 의료계의 광화문 집회에서는 "비급여가 있어서 의사의 직업자유권과 환자의 선택권이 보호받고 있다"면서 "보건의료 시스템 붕괴를 부를 것이 뻔한 비급여의 국가 통제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의료수가부터 먼저 적정 수준으로 현실화 한 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추진하라는 게 의료계의 요구다.  

그렇다면 의료수가는 얼마나 낮게 책정돼 있을까.

의료계는 현행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의 의료수가가 원가의 70%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금과 공단 부담금을 합해서 의료기관이 받는 진료비 총액이 의료행위 원가의 70% 수준이라는 의미다.

이런 주장은 지난 2006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실시한 진료비와 조제료의 원가분석 결과, 진료수가의 원가 보전율이 73.9%로 나온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건강보험의 의료수가는 언제부터 이렇게 저수가로 책정됐을까. 1977년 처음으로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당시 군사정권은 1977년 7월, 공무원과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처음 도입하면서 당시 관행수가보다 약 45% 낮은 수준에서 의료보험수가를 책정했다.

경향신문 1977년 6월 9일자 기사
경향신문 1977년 6월 9일자 기사

의료보험 도입을 20일쯤을 앞둔 1977년 6월 8일, 당시 보사부(현 보건복지부)는 의료보험의 수가를 확정해 발표했다. 당시 언론에서도 이 내용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보사부는 이번 수가조정에 앞서 실시한 현행수가 조사에서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진찰료나 관리료는 받지 않거나 헐값인 대신 투약, 주사행위와 각종 수술, 검사료 등이 엄청나게 비쌌던 것을 밝혀내고 이번 수가조정에서는 투약, 주사부문에서 약 24%, 기술행위(검사, 수술)에서 약 22% 등 모두 약 57.46%를 사게 한 대신 관리료와 진찰료 부문에서 12.46%를 증액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현행 일반수가보다 약 45% 절감된 선에서 의료보험수가 기준을 정했다" <경향신문 1977년 6월 9일자 기사 중에서>

"보사부는 오는 7월1일부터 시행하는 의료보험의 보험료지급기준이 되는 진료비 기준점수표와 약값기준액표를 마련해 8일 발표했다....이번에 정한 의료보험진료비는 76년 관행수가보다 45% 내린선을 기준으로 삼았으며, 이 기준에서 최고 20%까지를 상한선으로 잡고 하한선은 없앴다." <동아일보 1977년 6월 9일자 기사 중에서>

의료보험의 낮은 수가로 인해 보험가입자가 상대적으로 질 낮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또 하나는 현재 확정고시된 의료보험수가의 적정선 시비라 할 수 있다. 일반수가에 비해 45%나 낮게 책정되어 그렇지 않아도 의료계로부터 불평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낮게 책정한데에는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정할 수 있으나 의료수가의 상대적저위로 진료가 소홀해질 우려가 없지 않다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1977년 7월 4일자 기사 중에서>

낮은 의료보험수가에 대해서 의료계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가 적정 수가체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며 의료계를 달랬다.

"천명기 보사부장관은 29일 대한병원협회의 정기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현재 평균 45%가량의 격차를 보이고 있는 일반수가와 보험수가의 차이를 점차 해소해나가는한편 보험수가의 지역별 차등제도 없애 의료시설의 지방개업을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1981년 4월 30일자 기사 중에서>

그러나 이런 저수가 정책은 계속 이어졌다. 정권이 바뀔 때나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정책을 펼 때마다 '적정수가'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저수가 기조가 계속되는 가운데 1990년대 들어서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이른바 '재벌병원'의 등장으로 대형병원간 몸집 부풀리기 경쟁이 본격화됐다. 병상수 확대에 나선 대형병원이 적극적인 환자유치에 나서면서 중소병의원의 몰락이 도미노처럼 잇따랐다.

대형병원에 감기 등 경증환자까지 빼앗기고, 저수가로 건강보험 진료만 해서는 도저히 병원 경영이 힘들어지자 비급여 진료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1996년 11월16일자 동아일보 기사.
1996년 11월16일자 동아일보 기사.

1996년 11월 16일자로 동아일보에서 보도한 '운영난에 꺾이는 히포크라테스의 꿈'이란 제목의 기획기사는 당시 의료계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발비도 1만원인데 근육주사비가 주사기값을 포함해 하루 3백원, 초진료가 2천8백원입니다. 의사가 이발사만큼도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환자들의 외면과 의료보험 저수가 체계속에 적자 경영으로 허덕이다가 문을 닫거나 폐업 또는 전업하는 의원들이 속출하고 있다....(중략) 중소병원의 도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전체 병원수는 6백93개로 1994년보다 43개소가 늘어났고 병상수도 1만여개가 늘어났다. 이는 한편에서는 대형병원과 대학병원 분원이 잇따라 설립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소병원이 잇따라 무너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이런 식으로 의료보험 도입 초기의 저수가 체계가 40년간 이어졌다. 그 결과, 비급여와 박리다매식 진료를 통해 의료기관이 손실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료전달체계는 사라지고, 환자한테 높은 의료비 부담을 지우는 기형적인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유지해 올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병원이)비보험 진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적정한 보험수가를 보장해 의료계와 환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의료제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후 유지해온 저수가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의료계의 불신은 40년의 세월만큼이나 그 뿌리가 꽤 깊다.

의사들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정책에 반발하고 나서는 사정을 이해하고, 정부가 먼저 의정간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정책과 자세를 보이는 게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둘러싸고 엄청난 사회갈등 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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