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위험한 생리대, 다음은?

[라포르시안] 그냥 우연인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책임자를 잘못 뽑았다고 한숨을 쉬는 사이에 문제가 또 터졌다. 이번에는 생리대.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몸에 직접 닿는 것이라 불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전처럼 무슨 사건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사고가 너무 잦다. 사람이 만든 환경이 사람을 공격하는 인공 또는 문명의 ‘역습’. 장담하건대, 이름도 처음 듣는 유해물질이 발견되었다고 뒤늦게 야단법석을 떨 일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그때마다 행정 당국이 원망과 비난, 비판을 들을 것도 뻔하다.

주변에 있는 아무 생활용품을 들고 성분표시를 살펴보라. 따라 읽기도 어려운 처음 보는 화학명이 빼곡하다. 헥산디올, 카프릴릴글라이콜, 소듐벤조에이트...이 글을 쓰면서 우연히 옆에서 집어든 휴대용 물티슈에 표시된 성분 중 일부다. 게다가 ‘편백나무잎 추출물’이라는 ‘문학적’ 성분명이라니.    

일부 성분만, 그나마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밝히지 않으니 효과든 위험이든 알 도리가 없다. 전문가라 해도 언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안심할 수 있을까? 크게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달걀, 오염된 생리대는 단지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일이 생길 때마다 공포가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화학물질이 건강을 해칠 위험은 ‘과소평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세계보건기구 총회가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명시한 화학물질의 건강피해는 보통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크다(관련 링크 바로 가기).

“2012년 기준으로 몇 가지 화학물질 때문에 사망하는 사망자 수가 130만 명에 이르고,...독성물질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이 193,000명으로 추정된다....중독 위험은 여성과 어린이 등 일부 집단에 더 불리하게 나타난다.”

위험을 상세하게 따지는 것은 이 정도로 그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큰 고민이다. 화학물질의 안전은 비교적 새로운 문제인 데다 매우 복잡하다. 일상에 깊게 들어와 있어 ‘회피’와 ‘중단’이 쉽지 않은 것도 대응을 어렵게 한다, 지식과 정보는 크게 부족하다.  

먼저 한 가지 경향, 생태주의적 접근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런 접근이 자본주의적 삶의 한계와 의미를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정책, 기술, 실천 측면에서도 취할 것이 많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근대 이전으로 돌아가는 근본주의적 ‘자연회귀’는 가능하지 않지만 바람직한 해법도 아니다.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으나, 바람직한 삶 또는 인간의 진보에 대한 근본 질문과 관련된 논쟁을 피할 수 없다. 지금보다 인공의 화학물질은 드물었다 하더라도, 35세의 평균수명을 바람직한 삶과 세상, 진보라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관련 기사 바로 가기).

반대편으로 치우친 것은 도구적 이성을 상징하는 국가의 역할에 모든 기대를 거는 방법이다. 가습기, 달걀, 생리대를 가리지 않고, 국가가 위험을 알아차리고 미리 막지 못했다며 책임을 추궁하기 쉽다. 일종의 기술적 실패로 이 문제를 보는 태도다. 국회와 언론, 시민의 비난과 비판은 국가와 정부, 행정에 집중된다.

정부가 가장 중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법률과 행정체계가 미비하고, 소비자와 협력하고 소통하는 노력도 미흡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개별 사안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앞으로도 ‘근본 대책’을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분적으로는 기술적 실패가 맞다.  

우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책임이 중하지만 할 일을 ‘개인화’, ‘기술화’, ‘행정화’는 부분적 설명이자 해법일 뿐이다. 공무원이 더 열심히 하거나 시험항목 수를 늘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지 모르나, 본질이 아니다. 총리의 질책과 현장 방문, 관계 부처 장관과 공무원의 다짐, 단속과 처벌 강화, 예민한 검사장비 같은 것으로 다 해결할 수 없다.

구조와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 아니 이쪽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압력으로 법률상 규제가 무력화하면 공무원 수나 그들의 열심, 시험항목의 정확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 화학물질을 쓰는 쪽에서 굳이 안전을 보증할 필요가 없다면?

정확하게 숫자도 모르는 화학물질을, 매일 새롭게 개발되어 쓰이는 그 속도에 맞추어서, 얼마나 많아야 누구에게 효과가 나타나는지 모르는 채, 정부와 관료와 행정이 관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드러난 안전 관리의 실패가 이런 경로를 거치지 않았을까?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2016년 발표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요구하는 국민선언'이 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특히 사전예방의 원칙(또는 사전 주의의 원칙, Precautionary principle)의 원칙을 환영하고 이를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보건 분야에 적용되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대해서는 다음 <서리풀 논평>을 참조. 서리플 논평 바로 가기).  

이에 포함된 몇 가지 원칙이자 방법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요구하는 국민선언' 바로 가기).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리 책임의 주체, 사전 예방, 민주적 의사결정을 다루는 내용이다. 

첫째, 기업이 안전을 입증하라.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예상되는 피해를 막는 것이 더 본질적인 제조/판매자의 책임이다. 따라서, 사전에 제품의 독성과 용도를 파악하여 그 위험성을 제품의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만약 제품의 독성과 용도가 파악되지 못한 경우 제품은 판매되지 않아야하며, 만약 판매되어 사람과 환경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해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제품의 소비자는 제품의 독성과 안전성에 대해 걱정할 권리가 있으며, 제조/판매자는 스스로 안전성을 입증함으로써 소비자의 걱정을 없애주어야 한다.” 

정부나 소비자 단체, 노동조합이 위험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자가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며, 위험 여부가 확실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입증 책임은 단지 선언이나 규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법과 규제, 사법적 심판으로 뒷받침되어 강제성을 확보해야 한다. 안전이 더 수익성이 좋도록!

둘째, 불확실하면 예방을 우선해야 한다. 화학물질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불확실하면 쓰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의 손해가 엄청나게 크다면? 소비자와 시민, 노동자가 엄청난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어느 쪽 손해가 더 중요한가? 누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전형적으로 권력이 작동하는 장(場), 정치의 문제다.   

셋째, 소통과 참여를 통한 민주적 관리가 중요하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데에 때로 화학물질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은 자동차 사용을 멈출 수 없고 배기가스의 위험에서 해방되기 어렵다. 화학물질로서의 약은 효과만큼이나 독성을 포함한다. 

타협해야 하면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이해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는 것이 시작이니,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주민은 화학물질의 위험을 알 권리를 가진다. 나아가, 단순한 참여를 넘어 의사결정의 거버넌스를 민주화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체제의 민주화!

과거 방식에도 개선해야 할 것이 많고 제대로 하면 (조금은) 효과도 있으리라 믿는다. 문제는 전통적 관료체제로는 식품이나 약품, 화학물질의 안전을 관리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관리 대상이 너무 많고 복잡·다양하며 정보가 부족하다. 숨은 것이 너무 많고 불확실성은 넘친다. 아무리 공무원을 늘리고 감시를 강화해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럴 때 으레 나타나는 해법이 시장이지만, 그도 답이 아니다. 생산자만 알고 소비자, 전문가, 규제 당국이 모두 모르는, 극심한 정보의 불균형 상태에서 시장은 작동할 수 없다. 발암물질처럼 안전과 건강 효과가 한참 뒤에야 나타나는 것이면 시장은 더욱 무력하다(그때 그 시장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유일한 해법이 있을 리 없으니, 원칙에 기초한 여러 방법을 망라한 종합 대책을 궁리해야 한다. 공적 규제(정부)의 품질을 올리고 효과를 높이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특히 비용 대비 효과에 관심을 가지기 바란다. 아무 일이나 많이 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을 잘해서 효과가 있어야 한다.

정부만으로는 되지 않으니,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분산형’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감시, 감독 모니터링 등이 중요한 방법일 터, 시민·사회·소비자·노동 단체와 전문가, 연구자 등이 모두 안전 규제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틀과 동기를 만들어 분산형 규제가 작동하게 하는 일차 책임 주체는 물론 정부이다.  

자가 규제를 강화할 제도 환경을 만드는 것도 늦출 수 없다. 앞서 말한 화학물질의 정보 공개와 알 권리가 핵심이다. 영업 기밀을 앞세워 정보 공개를 피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급하다. 생산자와 기업 책임을 높여 규정하고 징벌적 손해배상도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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