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정부·보험자·연구기관 등 재정추계 큰 편차..."중장기적인 수치전망 무의미"

[라포르시안] "건강보험 재정은 2016년 흑자규모 최대를 기록한 후 2022년 적자가 발생, 2025년 고갈될 전망" (2015년 12월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2060년 장기재정전망' 추계 결과)

"건강보험 재정 당기수지가 2018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누적적립금이 2023년경 소진 전망" (2017년 3월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8대 사회보험 중기 재정추계 결과')

"오는 2019년부터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1조1,898억원 적자로 돌아서 2020년에는 누적적립금이 17조1,752억원으로 감소" (2017년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보고한 '건강보험 중기 재정전망')

"오는 2020년에는 19조원, 2030년에는 141조원의 건강보험 적자가 발생할 것" (2017년 7월 공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인구구조 변화와 사회보험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이 2016년 말 기준 20조원을 넘어섰고, 2017년에도 당기수지 흑자가 예상. 4년 후인 2020년 적자가 19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 전망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 추계" (2017년 7월 23일 보건복지부의 보도해명 자료)

최근 3년간 기획재정부와 건강보험공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부 등에서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 전망 추계가 들쑥날쑥하다. 

재정전망 추계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전망치 차이가 너무 크다. 최근 개그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아무 말 대잔치'를 보는 것 같다.

기재부의 사회보험 중기 재정추계는 대체로 2020년대 중반 쯤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이 모두 고갈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보사연은 오는 2020년에는 무려 19조의 건강보험 적자가 발생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치를 제시했다.

반면 보험자인 건보공단은 2020년까지 누적적립금이 17조원 정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복지부는 보사연의 재정추계가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재정추계 차이가 너무 커 어느 쪽 전망치가 맞는지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정부부처나 기관에 따라 건강보험의 중장기 재정추계가 이렇게 큰 편차를 보이면서 향후 5년간 30조6,000억원의 을 투입해 추진할 예정인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재부 등의 재정추계를 인용해 보장성 강화를 위한 30조6,000억원의 재원마련이 힘들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반면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 보험료율 조정, 재정의 효율적 사용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복지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이 제시한 재정추계를 상급기관인 복지부가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황당한 상황도 벌어졌다.

앞서 지난 7월 공개된 보사연의 ‘인구구조 변화와 사회보험 장기 재정전망’은 2020년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1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계했다. 

이 연구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에 이뤄진 것으로, 지난달 그 내용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이례적으로 복지부가 산하 출연연구기관에서 작성한 보고서 내용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보사연 홈페이지에 등록된 해당 보고서 파일이 삭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9일 오후 건강보험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9일 오후 건강보험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재정추계가 이렇게 들쑥날쑥 하는 이유에 대해서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보건복지 분야의 투자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고, 그에 맞춰 재정추계가 편향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보건복지 부문의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임기 4년간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계획을 빼고는 공공의료 강화나 보다 적극적인 보장성 확대 계획을 제시하지 않은 채 건강보험의 누적적립금을 불리는 데만 관심을 보여 '긴축재정 정책'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그러다 보니 재정고갈론을 통해 복지부담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투자 축소를 정당화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다.

참여연대는 지난 3월 기재부가 발표한 '8대 사회보험 중기 재정추계 결과'에 대해서 "건강보험은 지난 수년간 대폭의 흑자였음에도 이것이 반영되지 않은 채 재정이 악화되리라는 결과만 제시됐다"며 "'2060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한 지 1년 4개월 여 만에 발표된 재정추계에서 이처럼 전망치가 수정된 이유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이번의 사회보험 중기재정추계 발표는 지난 번 '2060 장기재정전망'을 조금 더 과장된 상태로 발표함으로써 복지 부담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건강보험 재정추계의 신뢰가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추진하는 데 건보재정 누적적립금 21조원 가운데 10조원을 투입하더라도 나머지 약 10조원 규모의 적립금을 2022년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재정운영 계획을 밝히고 있다.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운영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강보험은 당해연도 보험료 수입으로 당해연도 급여비 지출을 충당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현재의 조건을 전제로 중장기적인 수치전망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은 "엉터리 추계로 국민 불안을 조장할 게 아니라 법에 정해진 대로 적정한 국고지원과 불공평한 보험료 부과체계의 개편, 적정 보험료 부과를 통해 안정적으로 재정을 확충해 보장성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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