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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의사와 환자를 바꾸는 '15분'...동네의원서 더 필요하다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7.08.0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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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1988년 7월 2일, 영등포구의 한 온도계 제조공장에 일하던 노동자였던 15살 소년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문송면은 환기시설도 제대로 안 되는 공간에서 최소한의 보호구도 없이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고, 몸이 급속히 망가졌다. 그런데 원인조차 알 수 없었다. 여러 병원에 다녔지만 왜 그가 갑자기 지속적으로 두통과 어지러움 증상에 시달리고, 불면증을 겪고 허리와 다리에 퉁증이 생겼는지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다. 그러다 서울대병원의 어느 의사가 문송면의 가족으로부터 전해들은 한 마디가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온도계 제조공장에서 일했어요" 아마 의사도 짐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15살 소년이 온도계 공장에서 수은을 주입하는 노동자로 일했으리라고는. 어쩌면 다른 병원에서 의사가 문송면이나 가족에게 아프기 전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봤더라면 좀 더 일찍 수은중독을 진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작년에는 경기도 부천의 휴대전화 부품을 제조하는 공자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메탄올 급성 중독으로 실명하는 사고가 있었다.  CNC 절삭 작업 과정 중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용도로 사용했던 고농도 메탄올에 지속해서 노출됐다고 한다. 메탄올 중독 사고가 난 사업장에는 제대로 된 환기장치도 없었고, 노동자들에게 보호장비도 지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이 사건도 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환자로부터 직업력을 확인한 후 직접 공장을 방문하고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 노동부에 신고하면서 외부로 드러날 수 있었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는 평택성모병원을 등을 거쳐 이 병원 응급실로 내원한 폐렴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메르스 감염을 의심했다. 이 환자의 유전자 진단검사를 통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국내 첫 메르스 확진 판정이었다. 진료 중 환자로부터 확인한 중동지역 여행력이 메르스 감염을 의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의사가 진료실에서 환자의 질병을 진단할 때는 증상과 관련해 환자에게 묻고, 환부를 눈으로 살펴보고, 청진기로 듣고, 환부를 두드려 보고, 만져보는 5가지 진찰 방법을 쓴다. 대형병원에서는 여러 과의 협진이나 첨단장비를 이용한 각종 검사를 통해 질병을 보다 정확하게 진단해 낸다. 첨단 장비와 검사법이 개발되면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그런데도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과정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환경의 변화와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구조로 인해 질병의 원인이 다양해지면서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행위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초진환자를 진료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환자를 꼼꼼히 진찰하고 가족력과 직업력, 여행력, 주거나 생활환경까지 확인한다면 메르스 같은 감염병이나 업무상질병도 일찍 진단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검사를 줄일 수도 있고 환자의 질병을 보다 정확하게 진단할 수도 있다. 충분한 진료시간이 보장된다면 말이다.

요즘 '심층진료'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3분 진료'로 표현되는 시간에 쫓기듯 하는 짧은 진료시간 관행을 깨고 의사가 환자를 꼼꼼히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심층진료 도입의 목적이다. 이미 서울대병원이 일부 진료과에서 초진환자를 대상으로 1년간 '15분 진료'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보건복지부는 아예 대형병원을 대상으로 심층진료를 제도화 할 모양이다. 심층진료 수가를 별도로 마련해 특정 질환군 환자를 대상으로 우선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보다 앞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상급종합병원에 심층진찰료를 도입하는 방안에 모색하기 위해서 연구용역을 냈다.

우선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심층진료가 도입될 모양이다. 심층진료 도입의 목적이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있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에서 중증환자를 대상으로 충분한 진료시간을 보장하는 심층진료를 정착시켜 경증환자 쏠림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심층진료를 대형병원부터 적용하는 게 적절한가 싶은 생각도 든다. 오히려 동네의원에서 먼저 심층진료를 도입할 수 있게끔 제도를 개선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동네의원이야말로 공급과잉과 저수가 환경에서 '박리다매식 3분 진료'로 내몰렸다. 1차 의료기관으로 불리지만 환자들의 의료이용에 있어서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다.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는 '박리다매 진료'와 비만과 성형 등의 비급여 진료에 매달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처지다. 그러다 보니 건강증진이나 질병 예방 서비스 제공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급성기질환을 치료하는 데 급급하다. 이런 상태에서 대형병원 중심으로 외래 심층진료를 도입하면 오히려 환자쏠림은 더 심해지고 진료 대기시간은 더 길어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동네의원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불만을 갖거나 신뢰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더 오래 기다리더라도 대형병원에서 심층진료를 받고 싶어 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동네의원부터 충분한 진료시간을 보장하는 의료환경을 조성해 환자가 몸이 아파 의료이용을 해야 할 때 첫 관문 역할을 하고, 환자의 건강문제 대부분을 진료할 수 있는 포괄성을 지니도록 해줘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경증환자의 불필요한 대형병원 쏠림을 완화하고 자연스럽게 의료전달체계 정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동네의원은 생존을 위해 박리다매 식 '3분 진료'와 비급여 진료에 내몰려 있는데 심층진료 도입으로 대형병원 초진 진료비가 오르면 결국 저소득층의 의료접근성만 떨어뜨릴 뿐이다. 심층진료를 도입하기 전 보다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부 수가를 조정하는 식으로 특정 질환이나 진료과, 환자집단의 의료이용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을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주치의제 도입과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을 통한 전반적인 의료개혁을 모색할 때다. 인구 고령화가 더 심화하고, 의료자원의 지역 간 불균형이 더 심해지면 더는 손대기 어렵다. 이미 지금도 그런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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