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경희대병원 박창범 교수, 관련 연구결과 발표..."억울한 노동자 없게끔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6월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잇따른 집배원 과로사 관련 실태조사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장시간·살인적 업무 강도의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 출처: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6월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잇따른 집배원 과로사 관련 실태조사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장시간·살인적 업무 강도의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 출처: 공공운수노조

[라포르시안] 한국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장시간에 속한다.

지난해 OECD가 발표한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이 2,113시간으로 OECD 평균(1,766시간)보다 347시간 더 길었다.

장시간 노동은 업무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산업재해 발생 위험을 높인다. 최근 들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우체국 집배원의 과로사도 장시간 노동과 무관치 않다.

이처럼 과다한 업무량 및 직무스트레스와 관련해 과로사나 심뇌혈관 질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관련 산재 신청도 늘고 있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본인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고 있어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심뇌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노동자가 산재 인정을 받기가 어려운 게 국내 현실이다.

실제로 심뇌혈관 질환의 산재 승인율은 약 2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과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업무상 재해 기준의 상당 부분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미흡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현직 대학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가 여러 임상연구 문헌 고찰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3일 강동경희대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심장혈관내과 박창범 교수는 최근 국내 법학 분야 학술지인 <외법논집>에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심뇌혈관 질환과 업무상 재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강동경희대병원 박창범 교수.
강동경희대병원 박창범 교수.

박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및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업무상 재해 기준의 상당 부분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고용노동부의 관련 고시(제2016-25호)에서 정하고 있는 주당 평균 60시간 이하의 근로시간에서도 심뇌혈관 질환 발생이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노동부의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고시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 기준은 '발병 일주일 전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 등이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종의 근로자라도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 관련 고시 바로 가기>

박 교수는 "막연히 '발병 일주일 전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하였다'는 식의 정량적 표현은 업무의 양이나 시간에 한정되는 것으로 스트레스의 강도를 평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관련 고시에서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규정한 기준도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란셋(Lancet)’지에 게재된 메타분석 연구를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표준근로시간(35~40시간)을 일한 근로자에 비해 주당 41~48시간을 근무한 노동자의 뇌경색 위험도는 10% 증가했다. 또 49~54시간은 27%, 55시간 이상은 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주당 48시간 이상에서도 심뇌혈관 질환이 증가했기 때문에 주당 60시간 이상을 기준으로 한 고용노동부 고시는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또 "업무와 심뇌혈관 질환과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명백하면’이란 단서를 달고 있는데 의사들도 판별하기 어려운 문제를 근로자 스스로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명백하면’ 이란 표현 대신에 좀 더 완화된 문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노동자가 업무수행으로 겪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심뇌혈관 질환과의 인관관계를 인정하는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현재 법령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심뇌혈관 질환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여러 임상연구를 통해 스트레스가 주요한 요인임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좀 더 면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업무상 스트레스·과로가 심뇌혈관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최근의 많은 연구 결과로 볼 때 현행 산재보상보험법 시행령 및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하는 업무상 재해 기준의 상당 부분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국가가 현재까지 발표된 여러 임상연구를 바탕으로 좀 더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 근로자들이 억울하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출처: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의 TV 공익광고 화면 갈무리.
이미지 출처: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의 TV 공익광고 화면 갈무리.

심뇌혈관질환 산재 인정, 합리적 기준 재정립 필요

한편 심뇌혈관 질환의 산재 인정 기준이 노동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정치권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근로기준법상 법정 노동시간은 주당 52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심뇌혈관계질환에 대해서는 산재인정 기준을 주당 평균 60시간 이상으로 규정한 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은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 국정감사에서 "중공업과 같이 고강도 노동이 필요한 현장에서 주당 60시간 이상을 일한다면 뇌심혈관계질환이 문제가 아니고 집중력 저하로 인한 중대재해 발생으로 이어진다"며 "심뇌혈관계 질환의 특성상 대부분 사망 또는 장기간 중환자실 치료를 받아야 하며, 이로 인해 가정생활이 파탄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뇌혈관계질환의 산재 승인 관련 기준을 근로기준법에 맞게 '주당 52시간 이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국감에서 "현재 심심혈관 질병으로 산재 신청을 해도 인정 조건이 까다롭고, 현장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법정 근로시간(주 당 52시간)을 넘게 일한 신청자 중 산재 인정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며 산재 인정기준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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