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 전공자 갈수록 줄어…연구비 지원도 임상연구 등 돈되는 쪽에만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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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대 의학전문대학원생인 A씨는 요즘 혼란스럽기만 하다. 자신과 함께 입학한 동기들은 지금 4학년이 되어 내년 의사국가시험 준비로 골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심란하다. A씨는 입학동기 가운데 유일하게 기초의학을 전공하겠다는 마음으로 '복합학위과정(MD-PhD)'을 밟고 있다.  A씨가 PhD 과정을 지원한다고 하자 주위에서 기초의학은 임상의학에 비해 수입도 낮고 일자리도 부족해 장래가 불확실하다며 만류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 때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은게 후회가 되기도 한다. A씨는 기초의학자가 될지, 임상의사로 진로를 수정해야할 지 종잡지 못하고 있다.

의학과 생명공학의 원천인 기초의학이 좀처럼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초의학이 침체된 가장 큰 이유는 연구 영역과 교육 영역에서 갈수록 설 자리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초의학협의회 안덕선 총무이사(연세의대)는 "연구영역에서는 연구비 배분에 문제가 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같은 연구를 하더라도 기초의학보다는 자연과학 연구자들에게 더 많은 연구비가 지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나 투자자들의 연구비 지원이 단기간에 산업화로 연계되거나 수익이 나는 쪽에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구개발비 중 의학 분야에 투자되는 연구비는 약 4~5%에 불과하다.  게다가 의학 분야에서도 임상의사들의 영역인 중계연구나 임상연구 쪽에만 연구비가 집중되는 등 기초의학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세다.

교육 영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문제기반학습(PBL, Problem-based learning) 도입 등 의과대학 교육과정의 개편 바람이 불면서 기초의학 강의와 실습시간이 크게 줄었다. 지난 20년간 약 30% 가량 줄었다는 게 기초의학계의 주장이다.

안덕선 이사는 "의과대학의 대부분이 병원과 함께 있다보니 기초희학 교육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기초의학 교수는 임상교수에 비해 월급도 적다. 보통 임상교수보다 30~40% 가량 급여 수준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의대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임상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의전원 졸업생 중 기초의학 전공 거의 없어…"의대 교육에도 악영향" 특히 '기초의학을 토대로 한 의학발전'을 모토로 의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됐지만 기초의학자 증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의전원 졸업생 약 3800여 명 중 기초의학을 전공한 학생은 10명도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의학 지원자 감소는 기초의학 교수 가운데 의사(MD)의 비율이 감소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2010년 기준으로 전국 41개 의과대학의 기초의학 교수는 약 1400여 명으로 과거에 비해 늘었지만 의사 비율은 약 64%인 90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5년 70%에서 약 7%p가 감소한 셈이다.

문제는 양질의 임상진료를 뒷받침하는 병리학, 생리학, 약리학, 해부학 등 반드시 의사가 필요한 기초의학 분야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연세대의대 윤주헌 학장은 "이들 과목에서조차 임상의사를 구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의사 양성교육은 물론 의학의 발전도 커다란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위기의식에 따라 최근에는 의료계를 중심으로 기초의학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 협의회 산하 연구위원회는 올해 주요 사업계획으로 기초의학과 의과학 연구 활성화를 내걸었다.

기초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 불균형, 기초의학 연구인력 부족 등으로 저변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서울시의사회도 매년 기초의학활성화기금을 기초의학협의회에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 자체적인 노력으로는 기초의학을 활성화하는데 한계가 있다. 정부의 인식개선과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게 의학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대한의학회 김동익 회장은 최근 의학회 뉴스레터 1월호에 게재한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란다'는 글에서 기초의학 분야의 지원을 당부했다.

김 회장은 글에서 "국내 의과학연구 발전 추세를 볼 때 향후 10년 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을 후보자가 한국에서 나올 수 있고 그 주인공이 기초의학 연구자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초의학이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연구 토양을 배양해 주는 것이 정부와 우리 모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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