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위주로 응급의료시스템 구축 필요성 제기돼...복지부 "지역불균형 문제가 걸림돌"

[라포르시안] 중앙집권적인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를 지방자치단체 중심 운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4일 서울대병원 의학혁신센터에서 열린 '제2차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가과제 심포지엄'에서 신상도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교수가 "우리나라 공공의료체계는 보건복지부의 주도로 선진 외국에 비해 단기간에 비교적 잘 갖춰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응급의료기관의 지정 및 평가, 응급의료기금 운용 등을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어 지자체의 책임과 권한은 전혀 없는 구조"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 교수는 "경북대병원의 장중첩증 소아 환자 사망사건과 전북대병원의 중증 소아 외상환자 사망사건을 계기로 응급의료에 관한 권한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자체가 응급의료체계를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시를 꼽았다. 

서울시는 지난 2007년 중앙정부 주도 발전계획에서 탈피해 자체적으로 응급의료 시행 계획을 수립해 발전시켜왔다. 

신 교수는 "지난해 전북대병원 사건만 봐도 복지부는 중앙응급의료위원회를 열어 전북대병원 등의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을 취소했다"며 "그러나 해당 지자체인 전북도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응급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율이 떨이진다. 적정시간에 적정한 치료를 제공해야 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지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한 권역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권역화 전략으로 지방정부 주도의 응급의료체계 개발을 제안했다. 

신 교수는 "외상체계, 심뇌혈관 응급의료체계, 심정지 치료체계 등을 지자체 주도로 수립하여 시행하고, 관련 응급의료기관 지정과 평가 업무도 맡겨야 한다"며 "응급의료기금의 50%를 지방정부가 편성할 수 있도록 재정 권한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앙정부의 역할은 국가 응급의료 중장기계획 수립, 중앙정부 응급의료기금 등 재정 운영계획 수립, 시도응급의료 평가, 소아응급의료체계 등 특수목적 응급의료 개발을 주도하는 일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벤치마킹할 모델로 미국 보건부(HHS)를 꼽았다. HHS는 응급의료 관련 업무는 모두 주정부에 이관하고 재난의료 위기 대응 업무만 총괄하고 있다. 일본 역시 도와 현 중심으로 응급의료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신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지방분권화' 등을 공약했는데, 응급의료 패러다임의 전환은 새 정부의 공약과도 부합한다"며 "지자체 위주로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지역응급의료 운영 책임 맡아 수행해야"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는 류현욱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와 이선식 복지부 응급의료과 사무관이 참석했다.  

류현욱 교수는 "지역마다 인구 구조가 다르고 지리적 환경에도 차이가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응급의료 인프라와 응급의료기관의 역량에도 차이가 있다. 이처럼 지역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 지역에 걸맞는 옷을 걸쳐야 한다"며 지방 분권화에 찬성했다. 

류 교수는 "장중첩 소아 사망사건, 중증외상 소아환자 사망사건 등이 발생하면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며 "혹자는 시스템은 잘 구축되어 있는데 의료진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방기하는 태만과 부주의가 사고를 불렀다고 질타한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역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지역에 적합한 응급의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 교수는 "암환자는 자신이 어디서 치료를 받을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러나 응급환자는 사정이 다르다"며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지역별로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장중첩 소아 사망사건, 중증외상 소아환자 사망사건 전개 과정을 복기해보면, 미리 대책을 마련했더라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며 "지역에서 취약한 부분을 사전에 점검하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동 대응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의 활동이 있었다면 문제는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분권화의 핵심 요소로 인력과 재정을 꼽았다.  

류현욱 교수는 "대구는 그나마 장중첩 소아 사망사건 이후 보건행정과 안에 응급의료계를 신설하고 3명의 인력을 배치했지만 다른 시도는 1명이 고작이다. 아예 일부 시도는 다른 업무와 겸직하고 있어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결국 행정관리에 업무가 국한되어 리더십을 형성하고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이제는 중앙과 지방정부가 역할을 분담할 시기가 됐다. 중앙은 국가차원의 응급의료 아젠다를 만들고 의료기관 등의 평가 기준과 모니터링 지표, 지침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지방정부는 지역응급의료 운영의 책임을 맡아 수행하고, 잘못됐을 때는 지자체장이 책임을 지는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지부도 응급의료 관리체계의 분권화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복지부 이선식 사무관은 "응급의료 관리체계를 분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맞는 것 같다"며 "지역에서 어떤식으로 응급의료를 제공할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고, 방법론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환자의 흐름(이송)은 어찌보면 지방정부 소관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 정책이 개발되면 응급의료 전달체계가 향상될 것"이라며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이나 응급상황 대비 훈련도 지방 주도로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응급의료기관의 지정이나 평가 문제는 쉽게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관은 "평가나 지정에 관한 문제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의료기관이 많은 서울, 경기 등은 지자체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의료기관이 드문 곳은 해당 지자체가 관리감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지역불균형 문제는 지자체에 자율성과 권한을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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