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희(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 홍보위원장)

[라포르시안] 2014년 건강문제와 생활고를 못 견뎌 세상을 등진 송파 세모녀의 동반자살사건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3년 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2017년 6월 부산지역에서 연이어 발생된 고독사 소식은 그간 우리 사회는 소외된 계층을 향해 어떠한 대책을 강구해왔는가 반문하게 한다.

필자는 의료사회복지사로 2008년부터 의료현장에서 일하며 치료를 받아야하나 경제적 문제로 고민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왔다. 2008년 처음 현장에 발을 디뎠을 때와 2017년 현재를 비교해보면 한부모가족, 독거노인, 1인 가구 등 가족해체로 인해 돌봄이 부재한 경우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단순히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만이 문제의 초점은 아니다.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그 순간이 이들이 온 몸으로 짜낸 마지막 외침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몸 하나라도 건강하다면 어떻게든 문제를 헤쳐나갈 길을 찾을 수 있겠으나, 건강마저 위협을 받는 순간 환자와 지지체계인 가족은 서서히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 나와 같은 의료사회복지사들은 과부담 의료비가 경제적 부담과 파산, 빈곤화의 원인이라고 지적한 수많은 보고서의 이야기를 매일 만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15일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에서 운영하는 공공보건의료 역량강화 아카데미 중 다양한 취약환자 잘보기 교육에서 '저소득 환자 진료시 생각해야할 10가지'라는 주제로 강의를 부탁받았다. 평소에는 단순히 사회복지 상담 의뢰를 주는 의사분들이 빨리 의뢰해주면 환자와 상의할 시간이 많이 확보될텐데 라는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지만 곰곰이 이 주제를 붙들고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강의의 주제가 던지는 메시지가 앞의 단락에서 언급한 건강문제와 직면한 저소득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취지에서 내가 고민해본 진료 시 의료진이 염두에 두면 좋을 10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세 가지 차원의 무지 또는 무관심에서 탈피해야

저소득 취약계층이 지원받는 프로세스에 있어서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의사, 당사자인 환자, 사회복지사. 이 셋 중 최소 1명이라도 깨어있지 않으면, 2014년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사안이 재발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의사는 진료받는 이가 취약계층인지 모르고, 환자는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할지 모르고, 의료사회복지사는 (의뢰받지 않으면) 취약계층이 왔다갔는지를 모르는 체계 속에서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고 돌릴 수는 없다. 이제라도 취약환자가 쉽게 어려움 토로할 수 있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어떻게 갖출지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는 진료 과정 중에 관여된 그 누구라도 도움요청에 깨어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첫 발을 떼야겠다. 그렇게 하다보면 더 어려운 상황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둘째, 환자가 진료 시 평소 누구와 내원하는가?

저소득 취약환자가 어려움에 대해 보내는 시그널 중 평소 누구와 내원하는가는 때론 말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족해체가 급격히 이뤄지는 사회환경 속에서 질환의 지속적 악화 또는 치료 차도가 좋지 않음에도 꿋꿋하게 홀로 내원하는 환자가 있다면 그것을 환자의 독립적인 성격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꼭 독거노인이 아니더라도 환자가 도움받기 힘든 환경에 처해있다고 판단되면 환자가 말꺼내기에 앞서 먼저 도움이 필요한지 묻고 손길을 내밀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셋째, 환자의 이유없는 No-Show(노쇼)가 반복되는가?

사회 전반적으로 노쇼에 대해서 성토하는 논의가 한창이다. 의료현장도 마찬가지이다.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필요한 환자인데, 예약일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한 두 번의 노쇼라면 그 환자의 불성실함 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태도를 탓해볼 수 있겠으나, 노쇼가 자주 반복되거나, 고가 검사나 고가 진료비가 예상되는 일을 앞두고 반복되었다면 경제적 어려움을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이 반복되는 환자에게는 먼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봐주고 사회복지사 상담에 연계해 준다면 도움받을 방법을 찾아보고 지원을 연결해 진료를 이어갈 방법을 탐색해 보는 게 필요하다.

넷째, 진료 내용보다 진료비에 더 민감한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중요한 가치이다. 그럼에도 건강과 생명의 가치 앞에서는 돈 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진료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의 저소득 취약환자의 입장에서는 치료에 앞서 진료비를 먼저 걱정하기 마련이다. 꼭 저소득 계층이 아니더라도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고 비용이 얼마나 들지 걱정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이를 가족 내에서 이야기하거나 또는 속으로 생각하고 말지 의료진에게 직접 표현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이를 치료하는 의료진에게 직접 표현한다는 것은 그 만큼 어렵고 급박한 처지라는 방증으로 지원에 대해 상의할 수 있는 사회복지 부서로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섯째, 저소득 취약환자가 보내는 시그널에 반응하기

우리는 지금까지 건강상태 나쁨에도 홀로 내원하고, 중요한 치료를 앞두고 노쇼가 반복되고, 진료비에 민감해하는 등 여러 시그널을 읽어내는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이를 읽어주는 것으로 끝난다면 저소득 취약계층의 진료여건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없다. 읽어낸 시그널에 반응을 해야 한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시그널에 반응하고, 환자가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는 데 있다. 그리고 이후의 대처는 여섯 번째를 대응을 통해 진행하면 된다.

여섯째, 사회복지상담으로 빠른 의뢰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6(의료인 등의 정원)에 따르면 「종합병원에는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진 자 중에서 환자의 갱생·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한 상담 및 지도 업무를 담당하는 요원을 1명 이상 둔다.」라고 되어 있으며, 해당 근거에 따라 종합병원 이상 규모의 병원에는 사회복지사가 근무한다. 진료과정에서 저소득 취약환자가 보내는 시그널을 감지했다면, 사회복지사가 근무하고 있는 부서로 의뢰하면 된다.

사회복지사는 의사가 터 준 그 물꼬를 이어받아 환자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적절한 후원처를 탐색하게 된다. 빠른 의뢰가 필요한 이유는 후원금을 찾고, 신청을 위한 서류를 구비하는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먼저 환자가 납부한 금액을 소급해서 지원해주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가능하면 진료비가 발생하기 전 또는 퇴원 전에 방법을 찾아야한다.

일곱째, 저소득 취약환자의 '스티그마'를 고려한 정보접근성 강화

우리 사회가 한창 학생들의 무상급식 시행여부를 두고 사회적 갈등에 처했던 적이 있다. 당시 무상급식을 해야한다는 논의 중에서 급식비를 낼 돈이 없는 아이들의 낙인방지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무리 도와주는 손길이 있더라도 나의 어려움이 타인에게 드러나게 된다면 요청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바로 낙인효과(Stigma) 때문이다. 의료현장 속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이 쉬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도 어쩌면 낙인을 두려워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 외로 나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에게 경제적 어려움 토로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환자분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실제 내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의사가 나를 소홀하게 치료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것을 그냥 환자가 가진 비합리적인 신념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살아오며 어려운 처지로 인해 겪은 크고 작은 차별에 대한 본능적 대응일 수 있다. 큰 용기를 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 작은 용기만 내도 도움을 연계받을 수 있게 정보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료실 곳곳이나 게시판에 도움받을 수 있는 정보를 비치하고, 꼭 의사에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간호사를 통해 의뢰를 할 수 있는 체계 등 사려 깊은 대응이 필요하다.

여덟째, 우리 병원의 사회복지사는 몇 명이나 있을까?

수면 아래에 보이지 않던 저소득 취약환자의 어려움을 찾아냈다면 이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바로 병원의 사회복지사(의료사회복지사)가 환자 상황에 맞는 지원가능한 후원처를 탐색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종합병원 이상에는 1명 이상만 채용하면 법적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의 수는 각 병원 상황에 따라 다르다. 사회복지사의 수가 적으면 어렵사리 발견한 취약계층의 어려움에 즉각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의사가 진료과정에서 환자의 시그널에 반응하여 튼 물꼬를 이어받아 실제 도움까지 연계하려면 지금보다는 많은 수의 의료사회복지사가 필요하다.

아홉째, 우리 병원의 저소득 취약환자 지원을 위한 가용자원(후원처) 살펴보기

저소득 취약환자가 보내는 시그널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사가 필요한 도움에 매칭해서 연결할 수 있는 자원이 있어야 한다. 사회제도와 민간후원단체의 도움 등 여러 자원이 있으며, 우리병원의 내원 저소득 환자의 특성에 따라 자원리스트를 확보해야 한다. 단, 만성질환, 외래진료비, 검사비 등 지원자원이 거의 없거나 비어있는 사각지대에 대해서는 자체 후원기금 조성을 통해 장기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열째, 네트워크 활용하기

우리 병원에서 가진 자원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에 기반한 병원의 경우 지역사회자원 리스트를 확보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병원에는 가용자원이 더 있을 수 있으며, 네트워크를 통해 저소득 환자 대응 방안을 공유할 수 있다.

이상으로 그동안 생각해 본 「저소득 환자 진료시 꼭 생각해야할 10가지」를 제시해보았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미 다 알고 있거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정도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2014년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을 계기로 서울연구원 시민참여 연구모임 프로젝트에 ‘촘촘한 건강안전망 구축 활동’이라는 주제를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안타까운 마음에 무작정 던져본 주제였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어떠한 제도를 새로 만들려고만 하고 갖춰지기를 바라고 기다리고 있다보면, 우리사회는 2014년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갖춘 제도들은 충분하고, 단지 우리가 지금 각자 있는 자리에서 환자들의 어려운 처지에 귀 기울이고 대응하는 민감성이 부족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소득 환자를 진료할 때 꼭 생각해야할 10가지를 염두에 두고, 취약계층이 나지막이 호소하는 어려움에 대응하는 민감성을 키우는 것만으로 지금보다 나은 의료현장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대희는?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하고 연대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병원 의료사회복지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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