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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의료전달체계'라 쓰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읽는다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7.06.09 08:55
  • 댓글 2

[라포르시안] 한국의 의료 환경에서 진리처럼 통용되는 말이 있다. “큰 병은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거다. 이 말은 사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의료자원이 점점 서울에 집중되고 이 때문에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그러다 보니 서울과 지방 병원 간 중증질환 환자 진료경험과 치료 술기의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었을 테지만 의료자원과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큰 병은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추측을 점점 더 사실로 굳히고 있는 셈이다.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라기 보다는 '부재'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전달체계란 의료체계와 의료자원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모든 국민이 적시 적소에서, 적정인에 의해 적정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를 말한다. 처음부터 국내 의료시스템에는 이런 의료이용 체계가 자리잡지 못했다. 아니, 의료전달체계가 들어설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다.

한국은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10여년 만에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완성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긴 힘들만큼 빠르게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완성했다고 자랑처럼 여긴다. 하지만 20~30년의 짧은 기간에 의료기관과 의료인력 등의 핵심 의료자원을 압축적으로 확충하는 데 급급하느라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를 정립하지 못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여기저기서 위기 신호가 울리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지금은 물론 앞으로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동네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증질환 환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지방에서는 응급실과 분만실 등의 필수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환자들이 큰 병을 치료하러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원정진료를 다니느라 연간 수조원을 지출한다. 대형병원들은 끊임없이 병상을 확충하면서 몸집을 부풀리는 식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동네의원의 감기 환자까지 빼앗아오는 지경까지 내몰렸다. 이제는 터무니없이 커진 병원 규모를 유지하기조차 힘든 상황이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규모의 경쟁을 멈출 수 없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병상의 과잉공급으로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의료환경에서 외형성장을 멈추는 순간 생존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의 허리 역할을 맡아야 할 중소병원은 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됐다. 갈수록 줄어드는 환자와 그에 따른 경영난으로 의료인력 확보마저 힘들어졌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경쟁력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지방의 많은 중소병원이 폐업으로 내몰렸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적다는 데 있다. 의료공급의 90% 이상을 민간병원이 책임지고 있고, 민간병원의 경영 논리에 따라 정글처럼 변한 ‘의료시장’ 속에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수많은 당사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른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적극 나서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다양한 정책을 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복지부는 공공의료 확충보다는 민간병원의 병상 확충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의료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수가 가산을 하는 식으로 임시방편을 남발했다. 이런 정책이 그나마 골격만 남아 있던 의료전달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안을 논의해서 답이 없다. 문제가 심각해져 외부로 드러날 때마다 단편적인 대책을 세운 탓에 의료전달체계가 누더기를 걸친 꼴이다. 의료전달체계를 정립하려면 우선 보건의료기본법에 규정된 대로 국가 차원의 중장기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는 ▲보건의료 발전의 기본 목표 및 그 추진 방향 ▲주요 보건의료사업계획 및 그 추진 방법 ▲보건의료자원의 조달 및 관리 방안 ▲지역별 병상 총량의 관리에 관한 시책 ▲보건의료의 제공 및 이용체계 등 보건의료의 효율화에 관한 시책 등을 포함토록 하고 있다. 국가의 책임 아래 보건의료발전 목표와 방향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의료자원의 적정수급과 관리 방안, 지역별 적정병상 관리시스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료전달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앞으로도 계속“00이 아픈데 어느 병원으로 가야하죠?”, “00질환은 어느 병원이 잘 보죠?”라고 끊임없이 물으면서 정글 같은 의료생태계를 헤매야 한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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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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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2017-06-14 13:23:36

    좋은 기사입니다. 모든 문제의 귀결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이지만 복지부는 의지가 없어보이네요.   삭제

    • 멸종공룡 2017-06-12 08:23:21

      지금의 3차 병원은 비만해질대로 비만해진 공룡이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풀까지 뜯어 먹으면서 몸집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과 똑같은 꼴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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