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에 직접 진료비 청구·심사" 여론전…심평원도 업무성과 홍보하며 맞불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업무영역 다툼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양 기관간 갈등에 먼저 불을 지핀 것은 건보공단이다.

보험자 역할 강화를 앞세워 요양급여비 청구·심사 업무를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앞서 건보공단은 지난해 1월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 모색과 공단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쇄신위원회’를 출범했다.

쇄신위는 ▲보험료 부과기준 개선 연구 등 보험자기능 정상화 ▲서비스 확대 및 질 향상 등 장기 요양 개선 ▲업무환경 개선과 직원 사기진작 등 조직문화 및 복리개선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미래발전 전략 등을 위한 4개의 추진단을 구성해 약 6개월간 활동해왔다.

이를 통해 지난해 8월 실천적 건강복지플랜을 제시하고 ▲지속가능한 보장성 강화 방안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 방안 ▲평생 맞춤형 통합 건강서비스 제공방안 ▲급여결정 구조 및 진료비 청구·심사·지급체계 합리화 방안 ▲노인 장기요양보험 보완․개선방안 등을 마련해 보건복지부에 제안했다.

실천적 건강복지플랜 내용 중에서 급여결정 구조 및 진료비 청구·심사·지급체계 합리화 방안의 핵심은 요양기관이 공단에 직접 진료비를 청구하고, 심사가 필요할 때만 심사기관에 요청하는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실천적 건강복지플랜을 복지부에 제안한 이후 아직 구체적인 활동계획은 없다”며 “최종 정책결정의 권한은 정부에 있으니 두고 보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결정권한을 가진 복지부의 입을 바라보는 한편으로 건보공단은 심평원이 독점하고 있는 급여비 청구․침사 업무를 보험자인 공단에서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여론전에도 나섰다.

▲ 건보공단이 국민토론방에 올린 자료 내용 중 일부.

건보공단은 최근 한 무가지에 실천적 건강복지플랜을 소개하는 전면광고를 게재했다. 

광고는 건보공단이 주장하고 있는 보장성강화, 부과체계 단일화, 평생 맞춤형 통합건강서비스, 장기요양보험 개선방안 등과 함께 청구․심사․지급체계 합리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청구․심사․지급체계 합리화의 핵심은 공단이 급여비 청구․심사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건보공단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진료비 청구․심사․지급체계 개선 방안을 주제로 지난달 29일부터 온라인 대국민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공단은 대국민토론을 제안하면서 “의료기관에서는 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하고, 공단은 무자격자 진료 여부 등을 먼저 확인한 후 심사가 필요한 경우만 심사기관에 요청하는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자 심평원도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심사평가 업무를 통한 건강보험 재정절감 효과를 홍보하고 나선 것이다.

심평원은 지난 13일 ‘2012년 재정절감 효과분석 결과’를 공개하며 작년 한 해 심사․평가 업무를 통해 총 2조1,5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절감 효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심평원에 따르면 외래처방 인센티브를 통해 약제관리비 425억원, 수가개선 559억원, 심사조정 3,486억원, 적정급여 자율개선 2,799억원, 기등재 의약품 목록정비 2,488억원 등의 절감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파악됐다.

심평원 기획조정실 관계자는 “서로 간의 업무 영역을 뺏어 오겠다기보다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겠다”며 “심평원이 건강보험 재정에 기여하고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심사업무의 건보공단 이관에는 반대하지만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심사평가업무를 가치중심으로 발전시키고 의료계와 협력해 의료소비자가 최대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민에게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의료계, 공단 주장에 부정적…"선수가 심판 역할까지 하겠다는 것" 

▲ 공단의 실천적 건강복지플랜 소개 광고.

의료계는 심평원 심사업무의 건보공단 이관 주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단일 보험자인 공단이 심사업무까지 가져갈 경우 너무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는 점을 경계했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우리나라는 단일 공보험체계로 외국과 달리 국민에게 보험자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권력화돼 있다”며 “공단이 심사권까지 가져간다면 보험자 역할과 더불어 공급자의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슈퍼갑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만약 건보공단이 심사업무까지 담당한다면 누가 견제할 것이냐”면서 “보험자로서의 역할을 뛰어넘어 다른 기능까지 수행한다면 건강보험이란 개념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건보공단에 심평원의 심사업무가 이관된다면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이 전무해 월권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이상주 보험이사도 “축구경기에 비유하자면 선수가 심판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심평원은 공정한 심판의 역할, 건보공단은 그 나름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건보공단과 심평원 양 기관의 통합 방안도 제기됐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지난 2009년 9월 국가재정운용계획 보건복지노동분야 토론회를 통해 건강보험 관련 결정의 책임성 확립을 위해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기능정비를 제안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KDI 윤희숙 연구위원은 건강보험 관련 집행업무는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집행부서들을 한 기관으로 통합해 사회보험 주무기관 산하의 준공공기관에서 담당토록 하고 공단과 심평원의 기획기능은 정부 산하 ‘사회보험청’을 신설해 이관시키고 복지부와 수평적 협의 관계를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양 기관의 통합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의사 입장에서는 양 기관의 통합은 서로 내가 공급자를 더 많이 괴롭히고 있으니 나를 인정해달라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일각의 생각만으로 통합하는 것은 아무래도 다뤄지기 힘든 사항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사협회 이상주 보험이사도 “양 단체의 통합은 절대 반대”라며 “통합은 논리상 맞지 않다. 한 단체가 모든 역할을 다 한다는 것은 민주국가 체제 아래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복지부에 종속된 보험자로서 공단의 역할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부원장은 “건보공단이 보험자라는 법적 명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복지부가 보험자의 역할을 하고 있어 발생된 일”이라며 “공단이 갖고 있는 보험자라는 법적 명분을 삭제하던지 보험자 권한을 완전히 건보공단으로 넘겨주던지 해야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