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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복지법 오늘부터 시행...배제와 격리의 ‘F코드’ 변할까[뉴스&뷰]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규정 엄격하게, 복지서비스 지원 강화...사회적 지지체계 태부족
지난 2월 14일 서울대병원 후문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여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강제입원 규정 강화로 정신질환자 퇴원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는 신경정신의학회에 강력히 항의했다. 사진 출처: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페이스북 페이지.

[라포르시안] 정신과 진료를 받을 경우 국제질병분류 기호에 따라 F로 시작되는 병명이 진단서에 기록된다. 지난 수십년 간 우리나라에서 'F코드'(정신 및 행동장애)는 사회적 낙인과 다를 바 없었다.

1996년 12월 정신보건법이 시행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국내 정신보건정책은 F코드 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보호자의 동의를 근거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고, 강제입원된 환자를 상대로 인권침해가 자행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지난해 5월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 등의 규정을 전면 개정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곧이어 작년 9월 29일에는 헌법재판소가 보호자 동의에 의한 강제입원을 규정한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과 2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마침내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격리하는 정신보건정책의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확인한 것이다.

편견과 차별로 가득한 '퇴원 대란' 우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정신건강복지법이 오늘(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제하던 방식의 한국의 정신보건정책을 '탈원화'와 '환자 인권 보호' 중심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라는 데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의 핵심 내용은 강제입원 제도 개선을 통한 정신질환자 인권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복지서비스 지원 근거 마련, 전 국민 대상 정신건강증진사업 근거 마련 등이다.

그러나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정신질환자 퇴원 대란' 우려가 끊이질 않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상 비자의입원(강제입원) 절차가 엄격해지기 때문이다. 

기존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새로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은 비자발적 입원의 경우 2주간 기간을 정해 입원을 한 후 국공립병원 소속 전문의 등을 포함한 소속이 다른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이 일치된 소견을 보여야 입원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강제입원 필요성에 대한 진단은 ▲정신질환자가 정신의료기관등에서 입원치료 또는 요양을 받을 만한 정도 또는 성질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정신질환자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위험)이 있는 경우 등 두 가지 모두 해당할 때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비자발적 입원 규정이 강화되면서 강제입원 치료를 받던 정신질환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퇴원 조치되면서 사회적으로 혼란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쏟아졌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12월 기준으로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중인 환자는 총 6만9,232명이며, 이 중 강제입원 환자가 4만2,684명(61.6%)에 달한다. 

이를 놓고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 강제입원 환자 중 절반인 2만여명 정도가 사회로 나오는 '퇴원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법석을 떤다.  

정신질환자의 '퇴원 대란'을 우려하는 시각에는 정신질환자를 '예비 범죄자'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깔려 있다.

대검찰청의 2011년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정신질환자의 범죄율과 비교해 1/10도 되지 않는다. 2010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전체 범죄 110만8,307건 중 비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는 53만2,929건이고,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는 4,136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의자가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자라는 점을 유독 강조해 F코드의 낙인을 은연 중에 새긴다.

보건복지부가 5월 30일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취지와 내용을 홍보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민의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제작한 정신질환 인식개선 광고 영상에 직접 출연한 환자들. 옆의 숫자는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기간이다. 복지부가 제작한 광고영상은 기사 하단에서 볼 수 있다.

의료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의 인권 개선과 '탈원화'라는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사회적 돌봄체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법이 시행되면 오히려 정신질환자가 진료받을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탈수용화는 법 개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어야만 한다"며 "하지만 법 개정에 따른 지역의 정신보건센터나 주거시설에 대한 투자는 전혀 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가 정신건강복지법의 강제입원 규정을 충족하지 못해 퇴원 조치될 경우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해 방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자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탈수용화 정책이 추진돼 자칫 준비 없이 퇴원한 정신질환으로 사고가 발생하고 사회적 편견만 강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개정 정신보건법은 논의와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지난 19대 국회 회기 말에 졸속으로 심의 및 통과되면서 법 개정의 원래 취지인 환자의 인권보장을 구현하지도 못하면서,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강권을 침해하는 법이 되었다"고 비난했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2016∼2020년)을 통해 정신질환자를 위한 사회복귀시설을 단계적으로 확충해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 충분한 재활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신질환 당사자의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을 장려해 다른 정신질환자의 회복과 재활 등을 지원하고, 관련 생활시설과 지역사회 재활시설, 직업 재활시설, 중독자 재활시설 등 317개소를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신건강복지법에도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프라를 활용해 정신질환자의 탈원화를 유도하게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신질환자들의 지역사회 거주와 치료를 위해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도록 명시해 놓았다. 특히 정신건강증진시설에서의 퇴원 및 퇴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에 대해 지역사회 재활서비스 지원 등 지역사회 통합 지원을 위한 노력도 규정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자를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확충은 크게 미흡한 편이다.

정신병원 폐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바살리아법' 시행 초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위 캔 두 댓'의 한 장면. 정신장애인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경기연구원이 개정 정신보건법의 쟁점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으로 전국 중증정신질환자 수는 51만5,293명에 달하는 반면 국내 사회복귀시설의 수용정원은 7,000여 명으로 1.4%에 불과한 실정이다.

시설 뿐만 아니라 정신보건 관련 의료인 등 전문인력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2015 보건의료 통계'에 따르면 정신보건 전문인력 중 한국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6.64명)와 정신보건간호사수(13.7명)는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정신보건시설 및 재활기관에 종사하는 정신보건 관련 인력은 인구 10만 명당 42.0명(2015년)으로 영국 318.9명(2013년)이나 미국125.2명(2013년)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경기연구원은 "탈원화로 지역사회에 유입되는 정신질환자들을 지역사회 인프라와 연결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담당할 국가적 체계구축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지역사회로 유입되는 정신질환자들을 상태에 따라 분류하고 환자에게 맞는 적정 지역사회 인프라와 연결해주는 기능을 하는 조직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지지체계 구축과 편견 해소 시급

시민사회는 정신질환자의 탈원화 정책과 인권보호하는 법개정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탈원화를 위한 사회적 지지체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시행되면서 자칫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만 더 강화되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강제입원 환자들이 퇴원하게 되면 아직 이들에게 치료와 케어를 제공할 수 있는 지역사회 복지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 돌봄의 몫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들 가족과 가족이 없는 환자들은 질병보다 더욱 가혹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어린 시선과 마주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지역사회 내에 정신질환 환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돌봄인프라와 환자 및 가족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건강세상은 "질병을 이유로 환자를 차별하고 또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어 인신을 구속하는 것은 반드시 엄격하게 경계해야 할 사안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며 "정부는 환자에 대한 인권보호를 위해 엄격한 법률적 보호장치와 함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인프라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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