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항생제 '카바페넴'도 듣지 않는 내성균 유행..."보건당국 차원 적극적 대책 세워야"

[라포르시안] "CRE는 그야말로 '악몽의 박테리아(Nightmare bacteria)이다. 가장 강력한 항생제도 전혀 효력이 없어 환자들이 전혀 치료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2013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톰 프리던(Thomas Frieden) 소장이 한 말이다. 미국 내 병원에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CRE) 의 유행이 잇따르면서 많은 감염환자가 사망하고 있지만 적절한 대응법을 찾을 수 없다는 답답함이 담겨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내 대학병원 등을 중심으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CRE) 감염환자 발생이 잇따르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보건당국 차원에서 적극적인 감염관리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자칫 CRE의 토착화와 함께 관리가 힘든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부 감염관리 전문가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미 토착화 단계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의견도 보인다. 거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인 CRE가 토착화되면 감염관리가 크게 어렵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26일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에 따르면 수년 전부터 CRE 발생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보고됐으며, 2016년 하반기부터 종합병원 중환자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돼 수십개 병원 이상에서 CRE '아웃브레이커(Outbreak)' 상황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카바페넴'은 장내세균에 의한 감염시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하는 항생제다.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장내세균에 의해서 감염이 발생하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환자 치료가 힘들어지고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CRE 감염은 대부분 외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홍보이사인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내 CRE는 대부분 외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년 전부터 CRE 발생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보고됐으나 2016년 하반기부터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40개 이상 병원이 CRE유행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행 관리에 있어서 숙련된 감염관리 인력을 둔 대학병원은 자체적으로 유행을 관리 할 수 있지만 감염관리 인력이 부족하거나 없는 중소병원의 유행의 경우 질병관리본부나 보건소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유행 조절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내 E병원은 지난 2013년 3월 인도의 한 병원에서 입원 중 한국으로 전원된 환자로부터 CRE 감염이 시작돼 한달 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13명의 감염환자가 발생하는 아웃브레이크 상황을 겪었다.

특히 요양병원에서 대형병원으로 전원된 환자를 중심으로 CRE 유행이 시작된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CRE 감염이 요양병원에서 이뤄졌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대부분의 요양병원이 감염관리를 위한 인력이나 프로그램이 취약하고 감염예방이 미흡한 탓에 이 문제에 속수무책이다.

이 이사는 "대학병원과 요양병원 간 전원 환자를 중심으로 대학병원 중환자실 내 유행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며 "보건당국의 개입의 개별병원의 감염관리 노력으로 대개의 병원에서 유행이 조절되지만 전원환자로 인한 CRE 유행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반코마이신내성황색포도알균(VRSA)과 CRE 등 2종류의 병원성 세균 감염증이 제3군 감염병으로 지정돼 오는 6월 3일부터 기존 표본감시에서 전수감시 체제로 전환한다. 전수감시로 전환되면 VRSA와 CRE 감염 환자를 진단한 모든 의료기관은 의무적으로 지역보건소에 보고해야 한다.

감염관리 전문가들은 전수감시 조치로 전환되면 보다 효과적으로 감염 확산에 대응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정책이사인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CRE가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사이의 환자 전원을 통하여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3군 법정감염병 지정은 의미가 있는 정책 변화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CRE, 6월부터 전수감시 체계로 전환..."일부 병원은 토착화 수준"

문제는 전수감시로 전환되더라도 보건당국이 이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력과 조직규모를 갖추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엄 이사는 "질병관리본부내 의료관련감염관리를 담당하는 부서가 올해 5월에 독립했고 전체 인력이 9명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국적인 CRE유행에 대한 대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관련 부서에 대한 인력, 예산에 대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RE 감염환자가 발생했을 때 병원 내부적으로도 대응이 쉽지 않다.

감염자가 발생하면 1인실로 전실 조치를 해야 하고, 중환자실의 입원 환자 제한과 병원 전체의 감염관리를 대폭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감염내과와 타과 의료진 간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아직까지 감염관리 인력이나 활동, 일회용 물품 등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 보상체계가 낮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재갑 교수는 "병원 내에 내성균이 유입되면 이를 해결할 때까지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내부격리 과정이 쉽지 않다"며 "그 과정이 길면 몇 개월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내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환자 제한과 감염관리 조치 강화 등으로 비용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영 차원에서도 손해가 발생하니 병원 경영진의 압박이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CRE의 토착화가 현실화 될 수 있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MRSA)과 반코마이신 내성 장내구균(VRE)의 사례를 보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질병관리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감염관리실을 보유한 전국 의료기관 100곳에서 MRSA 감염 건수는 3,376건에서 2014년에는 4만1,725건으로 12배 이상 급증했다. VRE 병원내 감염건수도 2011년 891건에서 2014년 9,150건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차기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회장을 맡게 된 김미나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CRE중에서도 카바페넴 분해 효소를 분비하는 장내세균(CPE)은 내성 유전자를 다른 장내세균에게 전달할 수 있고 병원내에서 환자 간 빠르게 전파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일부 병원에 한정해서는 이미 CRE 토착화가 이뤄진 게 아니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유진홍 회장(가톨릭의대 감염내과)은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CRE 토착화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전에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며 "CRE의 3군 법정감염병 지정과 함께 질병관리본부 차원에서 CRE 유행의 조절 문제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의료관련 감염병 감시체계의 운영, 취약한 중소병원 감염관리 지원과 같은 산적한 정책요구에 대해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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